세계 곳곳에서 과학기술 분야 '인재 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고급 인재 양성과 대우에 국가의 모든 역량을 투입하는 나라가 바로 중국입니다. 중국은 과학기술을 단순한 산업이 아니라 '국력'이자 '애국심'의 상징으로 여깁니다.
중국 대학의 기술 논문 생산량은 이미 미국을 압도하고 있으며, 질적 경쟁력의 격차도 점차 좁혀지고 있습니다. 2024년 '네이처 인덱스' 기준 중국은 고품질 논문 3만2122편을 발표하며 세계 1위에 올랐습니다. 이는 매년 580만 명에 이르는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졸업생과 715조원 규모의 천문학적 연구·개발(R&D) 투자가 낳은 결과입니다.연구 논문이 국가 전략의 무기가 되다네덜란드 라이덴대 연구소가 발표하는 과학기술학연구소(CWTS)의 세계 대학 순위는 학문의 중심축이 이미 중국으로 이동했음을 보여줍니다. 라이덴랭킹 상위 10위권 중 8곳이 중국 대학이었습니다. 저장대학교가 1위, 상하이교통대가 2위에 오르며, 하버드·메사추세츠공대(MIT)로 대표되던 미국 명문대의 상징적 우위를 흔들었습니다.
중국이 이번 평가에서 세계의 최우수 대학을 제친 이유는 단순합니다. 중국 대학의 압도적인 논문 생산력과 함께 질적 수준이 크게 향상됐기 때문입니다. 중국 전체로 보면 연간 SCI급 논문이 40만 편 이상으로 이미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중국 논문은 '양은 많고 질은 낮다'라는 과거의 평가는 이제 설득력을 잃었습니다. 오히려 상위 1% 피인용 논문에서도 중국은 미국을 바짝 추격하고 있습니다. 하버드가 여전히 선두지만, 칭화대와 저장대는 각각 2위와 4위에 올라 ‘양(量)에서 질(質)'로의 전환을 입증하고 있습니다.'국가 주도형 연구 시스템'의 완결된 형태중국 대학의 약진은 단순한 학문 경쟁이 아닙니다. 국가가 설계한 '연구 산업 전략'이 본격 가동된 결과입니다. 중국 정부가 반도체, 통신, 인공지능(AI), 양자, 소재, 에너지 전환 등 전략 산업을 지정하고, 대학을 이 산업의 R&D 거점으로 편입한 결과입니다.
중국 대학은 더 이상 지식의 생산기관이 아니라, 국가 전략의 엔진룸입니다. 대학과 연구 기관에 대한 막대한 연구비 지원, 귀국 인재 파격 대우, 중국 대학을 국가 전략 산업 과제를 소화하는 '국가형 연구 기관'으로 전환한 성과입니다.
이는 '국가 주도 산업화'의 과학기술 버전입니다. 중앙정부는 대학 중심으로 혁신 생태계를 구축하고, 국유·민영 대기업이 그 결과물을 흡수·상용화합니다.
지방정부는 이를 이어받아 하이테크 파크와 창업 단지를 조성하며 연구 결과를 사업화하는 데 사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대학·연구기관·산업단지'가 촘촘히 엮인 국가혁신망(National Innovation Chain)이 구축됐습니다. 중국 대학의 논문이 산업의 토대가 되고, 산업이 다시 국가의 전략 자산으로 전환되는 구조입니다.논문이 곧 산업 전략, 지식이 곧 무기중국은 논문을 이제 '성과'가 아닌 '자산'으로 취급합니다. 논문에서 파생된 기술은 특허 포트폴리오로 연결되고, 이것이 국제표준화기구에서 산업 규격으로 변환됩니다. 지식의 산업화, 학문의 무기화입니다.
중국의 국가 주도 '지식 무장' 구조는 미국과 한국 등 서방 국가들에 위협적 압박으로 작용합니다. 중국의 연구지표, 논문 수, 논문피인용률, 특허 수, 기술표준 기여도는 이미 세계 학계의 경쟁 패러다임을 바꿔놓았습니다. 미국식 자유 연구 중심 모델이 중국의 국가 동원형 시스템과 맞붙는 국면이 된 것입니다.인재 전쟁의 제3전선중국 대학의 부상은 글로벌 인재 이동의 질서도 흔들고 있습니다. 이제 우수한 연구자는 반드시 미국으로 가지 않아도 됩니다. 중국의 연구 자금, 시설, 그리고 정책적 뒷받침은 세계적 두뇌를 끌어들이는 충분한 매력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경직된 공산당 독재와 권위주의 나라이며 자유나 민주 그리고 언론의 자유 같은 서방의 가치관과는 거리가 있는 나라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미국이나 한국 대학에서 국가 및 기관으로부터 연구비를 지원받는 것보다 중국 대학에서 조건 없이 연구비를 지원받기가 훨씬 수월합니다. 이것이 중국이 과학기술이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는 데 핵심 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중국 대학의 약진은 단순한 순위 경쟁이 아닙니다. 그것은 지식의 생산·활용·산업화를 하나로 엮은 전략적 혁신 시스템의 결과이며, 중국 대학을 국가 무기화하는 기술 패권 경쟁의 새로운 전략입니다.
미국과 한국 그리고 서방은 유물론을 신봉하는 중국의 과학기술이 혁신과 실용주의와 거리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오히려 중국이 더 혁신적이고 효율적으로 과학기술을 발전시키고 있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한국과 중국의 논문 양·질 격차의 근본 원인은 인구·재정 규모 차이, 성과 평가 규칙, 연구비 배분 구조, 학계 문화와 네트워크, 그리고 정책 도입 시점·속도에서 비롯된 전략적 차이 때문입니다. 중국 대학의 질주를 보고만 있을 게 아니라 우리 대학도 중국을 넘을 수 있는 대비책 마련이 시급합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조평규 경영학박사 / 장보고글로벌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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