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들이 지난해 예측한 것보다 실제 보험금 지급액이 훨씬 많아 수조원대의 ‘예실차(예상치와 실제 수치 간 차이) 손실’을 본 것으로 나타났다. 단기 실적 확대를 노린 출혈 경쟁과 낙관적 가정이 부메랑이 돼 대규모 손실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5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삼성생명, 한화생명, 미래에셋생명, 동양생명, 삼성화재, DB손해보험, 현대해상, 메리츠화재, 한화손해보험 등 주요 9개 보험사의 지난해 보험금 예실차 손실 규모는 총 1조6417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회사마다 보험금 예실차를 집계·발표하는 기준이 상이해 ‘예상보험금-실제보험금(발생보험금+발생사고요소조정)’ 식으로 산출한 수치다.
지금까지 실적을 발표한 상장 보험사 기준으로만 취합한 것으로, 비상장사까지 포함한 업계 전체의 예실차 손실 규모는 수조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2023년 도입된 보험회계기준(IFRS17)에서는 보험사가 해지율, 손해율 등의 계리적 가정을 바탕으로 이익을 추정한다. 보험사 예상보다 실제 보험사고가 많이 발생하면 보험금 지급액이 늘어나 예실차 손실이 발생하는 구조다. 반대로 예측보다 실제 보험금 지급액이 적으면 예실차 이익이 생긴다.
회사별로 보면 한화생명(-3799억원), 삼성생명(-3702억원), 현대해상(-3498억원) 등의 예실차 손실액이 컸다. 보험금 예실차를 예상손해액으로 나눈 지표인 ‘예실차율’은 한화생명(-15.2%), 동양생명(-11.8%), 삼성생명(-7.7%), 현대해상(-6.7%) 순으로 마이너스(-) 값이 컸다. 9개 보험사 중 메리츠화재만 유일하게 7억원의 예실차 이익을 거뒀다.
최근 몇 년간 벌어진 업계 출혈경쟁이 예실차 손실을 키웠다는 분석이 나온다. 보험사들은 상급종합병원 1인실 입원비 일당, 운전자보험 변호사 선임비용 특약, 독감보험, 간병인 사용일당 특약 등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를 유발하기 쉬운 담보를 두고 과당경쟁을 벌여왔다. 추후 회사가 감당해야 할 재무적 위험이 큰 데도 당장의 신계약 실적을 위해 보장 한도를 높이고 보험료는 낮게 책정한 것이다.
일각에선 보험업계가 수익성 지표인 보험계약마진(CSM)을 키우기 위해 낙관적 가정을 쓰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보험부채 평가 과정에서 미래에 지급할 보험금이 적을 것이라고 가정하면 CSM이 크게 인식돼 실적이 개선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예측보다 실제 보험사고가 많이 발생하면 그 차이는 고스란히 예실차 손실로 반영돼 순이익을 갉아먹는 요인이 된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일부 보험사들이 의료 파업 등의 여파로 일시적으로 보험금 청구가 줄었던 2024년의 이례적 통계를 바탕으로 낙관적 가정을 쓰고 있다”며 “지난해 보험금 청구가 정상화되자 대규모 예실차 손실을 본 것”이라고 꼬집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금융당국도 칼을 빼 들었다. 당국은 고무줄 회계와 출혈 경쟁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지난 1월 손해율 가정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경험 통계가 5년 이하인 신규 담보에 대해서는 90%(손해보험 91%)와 상위 담보의 실적손해율 중 더 큰 값을 적용하도록 규제를 강화했다.
일부 보험사들은 단기 실적 충격을 우려하며 신규 담보 적용 범위 축소나 적용 시기 유예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권 관계자는 “당국이 발표한 가이드라인은 시장을 정상화하기 위한 최소한의 수준”이라며 “가이드라인이 후퇴하면 업계 출혈 경쟁과 고무줄 회계 문제가 재차 심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서형교 기자 seogy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