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은 화가의 붓놀림에서 피어나고, 음악은 작곡가의 펜 끝에서 시작된다. 흙과 물, 불의 기운이 필요한 도예는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불을 때는 날의 온도와 습도, 기류와 산소 등 모든 요소가 제 역할을 해야 완벽한 기물을 얻을 수 있기 때문. 도예가는 이 분위기를 조성하는 사람일 뿐이다. 티끌 하나 없이 맑은 순청자는 난도가 더하다.
하지만 도예가 유수연에게는 청자의 낮은 성공률과 희소성이 오히려 강한 이끌림으로 작용했다. 3월 국내에서 열리는 전시 2개와 5월 미국 전시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유수연 작가를 아르떼가 만났다.
“왜 굳이 힘든 청자 작업을 하냐고요? 호락호락하지 않아서요. 모두가 얻을 수 있는 건 제 성에 안 차거든요. 청자를 하는 도예가도 드문데, 여성 작가는 더 없어요. 순 청자의 성공률이 정말 낮거든요. 저도 너무 힘들어서 매일 이쯤에서 만족하자는 생각도 들어요. 그런데 형태와 비례가 완벽한 이 매끈한 청자를 손끝으로 훑다 보면 그냥 이게 나의 길이구나 싶어요.”
흘러 흘러 당도한 길
슈퍼카를 타고 다니는 도공들의 도시, 무협지에 등장하는 전설 속 명검의 고장, 세계 버섯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버섯 재벌들의 성지. 별천지가 따로 없는 중국의 산속에서 스물여섯의 유수연은 흙으로 삶의 곳간을 채우는 법을 배웠다.
유수연은 차 도구를 만드는 도예가다. 중국의 4대 미술대학인 루쉰미술대학교에서 도예를 전공하고 청자의 발명지인 중국 저장성 용천시(룽취안시) 산자락에서 실습하며 자신만의 도예 언어를 구축했다. 작가의 도자기는 전형적인 한국 도자기도, 그렇다고 중국의 그것 같지도않다. 이를 두고 작가는 말한다. “유수연의 것이기 때문”이라고.
그가 처음부터 도예에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어쩌면 모든 게 우연처럼 이어졌다. 이전까지 도예라곤 한국에서 응용미술을 공부하며 잠깐 경험한 게 전부. 마오쩌둥이 소설가 루쉰의 예술 정신을 받들어 설립한 루쉰미술대학교의 학풍에 반한 그는 주저 없이 중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당초 조소과를 졸업한 후 장난감 회사에 취업할 계획이던 그의 인생은 중국에 도착하자마자 조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행정상 이유로 등록이 잘못돼 조소과가 아닌 도예과로 입학해야 한다는 공지를 받은 것.
중국어를 전혀 구사할 줄 모르는 데다 중국 문화 자체도 낯설던 그로서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유수연은 현실을 받아들였다. 흙을 만지면 기분이 좋았다는 감상만으로 도예를 시작하기로 했다. “일단 해보고 안 되겠다 싶으면 그만두겠다”는 마음이 도예가로의 여정에 시동을 걸었다.
요지경 ‘용천’에서 만난 은인 진단근
도예가 유수연의 여정은 또 한 번 예기치 못한 국면을 맞이한다. 은인과의 만남을 통해서다. 청자에 관심이 생긴 작가는 실습을 위해 청자의 발명지인 용천시로 향한다. 지금이야 가는 길이 쉬워졌지만, 당시만 해도 상하이에서 13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비포장도로를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곳이었다.
“기절할 것처럼 지독한 기름 냄새를 맡으면서 산 고개를 넘어가야 용천시가 나와요. 새벽에 출발해 저녁 7~8시에 도착하면 사람들이 다 초죽음이 돼 있죠. 그 괴로움을 감내하며 17년 동안 용천시를 오갔어요.”
작가는 왜 이 고난의 길 위에 자신을 끊임없이 내몰았을까. 거기엔 배움이 있었다. 어디서도 보지 못한 깊은 배움. 작가는 중국 청자대사 1호 진단근??根 대사 밑에서 청자 만드는 법을 익혔다. 기진맥진하며 도착한 용천시는 그야말로 요지경이 따로 없었다. 깊은 산속 마을이지만 도처에 슈퍼카가 다니고, 5성급 호텔에 영화관까지 최신식 인프라가 조성돼 있었다. 이 도시에서 나는 고부가가치 특산품 덕에 가능한 풍경이었다.
용천시는 청자토가 풍족하기로 유명하다. 청자가 유명한 것은 물론이고, 중국 최고의 명검 생산지로도 꼽힌다. 춘추전국시대의 전설적 대장장이 구야자(歐冶子)가 이곳에서 검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나무에 피는 검은 다이아몬드라고 할 정도로 귀중한 버섯 역시 800년 넘는 재배 역사를 자랑한다. 하지만 이곳에 터를 잡는 것은 그리 쉽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실습생을 반기지 않아 포기하려던 찰나, 눈앞의 누군가에게 말을 걸었다.
“담배 피우던 어떤 할아버지에게 저희를 실습생으로 받아달라고 하니까 그분 작업실은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거예요. 차로 1시간을 더 달려 도착한 곳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어요. 오후 6시만 되면 누가 눈을 손으로 꽉 막은 것처럼 어둡고 기후도 매우 습했죠. 온 몸이 퉁퉁 부어서 아플 정도로요. 그런데 그 할아버지가 중국 청자 무형문화재 진단근 선생님이었어요. 정말 운이 좋았죠.”
더함 없어 아름다운 청자 정신
열악한 접근성과 거친 기후 탓 에 7 명이던 실습생은 얼마 지나지 않아 1명으로 줄었다. 남은 사람은 유수연 작가뿐이었다. 우유를 먹던 아이들이 학교에 입학하는 것까지 볼 정도로 오랜 시간 마을 사람들과 함께한 작가는 어느덧 그들과 가족이 됐다. 진단근 대사는 지치지도 않고 때가 되면 마을을 찾는 작가를 어여삐 여겼다. ‘한국에서 온 어린 아가씨(샤오구냥小姑娘, xi?og?niang)’라는 애칭으로 부르며 작가의 가마 생활 10주년 기념 잔치를 열어줬을 정도다. 유 작가는 대사에게 ‘직업으로서의 도예’와 ‘겸손함’이라는 큰 가르침을 얻었다고 했다.
“제가 처음에는 에스프레소 잔과 머그컵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너무 안 팔리는 거예요. 당연한 일이었죠. 중국에는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사람이 없으니까요. 머그컵에 담아 마시는 문화도 존재하지 않고요. 그 사실을 깨닫기가 정말 어려웠어요. 그저 ‘왜 안 팔리지’라는 생각만 했죠. 작업하면 할수록 더 가난해진다고 저희끼리 우스갯소리로 말할 정도였어요.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대사님과 제가 똑같은 금액의 흙 한 덩이를 쓰는데, 작품에 따라 도예가가 얻는 수익은 하늘과 땅처럼 차이가 나는 거예요. 대사님이 제 작품의 가치를 높일 방법을 생각해보라고 조언해주시더라고요. 그때 결심했죠. 가장 작고, 비싼 걸 만들겠다고요.”
유수연 작가는 주로 차(茶) 도구를 만든다. 차를 마실 때 필요한 잔과 주전자, 차 친구까지 차 마시는 순간을 함께하는 것이다. 20년 넘게 차를 즐겨 마시고, 대접한 팽주(烹主)로서 자연스럽게 차 도구를 만들게 된 것도 있지만, 시중에 나와 있는 차 도구 그 이상을 원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한국, 중국, 일본 할 것 없이 차를 마시는 사람 대부분이 자사호(紫砂壺, ‘자사’라는 광석으로 만든, 차를 우리는 주전자의 일종)를 사용해요. 사용하기도 편하고 차 맛을 제일 잘 우려내거든요. 우리나라에서도 자사호만큼, 아니 자사호를 뛰어넘는 주전자가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AI와 3D 프린터의 등장으로 인간의 영역이 빠르게 대체되는 시대에 유 작가는 공예의 가치를 더 높게 평가한다. 사람의 혼을 불어넣은 공예품과 대량생산되는 공산품은 눈으로 보기엔 같은 듯해도 만져보면 그 차이가 확연하다. 작가는 돌고 돌아 결국 사람이 만든 것을 최고로 여길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렇기에 그는 오늘도 물레 앞에 앉는다.
“차를 마신다는 건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가 아니에요. 내 안팎의 분주함을 정리하기 위함이죠. 그래서 저는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차 도구를 만들고 싶어요. 보기에 아름다운 것은 물론, 쓸모도 있게요. 차 맛을 잘 우러나게 하면서, 차 마시는 순간에 내가 뭘 사용하고 있는지 잊게 할 정도로 편한 차 도구를 만들 거예요.”
유수연 작가는 바쁜 한 해를 앞두고 있다. 3월에만 국내 두 곳의 갤러리에서 전시가 예정돼 있고, 5월에는 미국 LA 관객과 만나기 위해 떠난다. 서울 종로구 갤러리 모순에서는 파도를 모티브로 제주도 화산석과 흑자로 만든 티웨어 신작을 선보이고, 서대문구 오브젝티파이에서는 청자와 유약으로 만든 신작을 소개할 계획이다.
강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