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콘텐츠가 동남아 시장에서 일상 문화로 자리 잡은 가운데,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K팝 공연을 계기로 온라인 갈등이 확산하고 있다. 일부 현지 누리꾼들이 한국 제품 불매 촉구 움직임을 보이는 데 이어, 한국 누리꾼들의 과격한 대응까지 더해지며 감정 대립이 격화하고 있다.
23일(현지 시각) 인도네시아 일간지 자카르타포스트는 “’SEAbling’ 회원들이 한국 누리꾼의 공격에 맞서 온라인에서 단결했다”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동남아시아인들 사이에서 강한 공동체 의식이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해당 매체는 이 같은 정서가 동아시아 일부 지역에서 오랫동안 겪어온 차별 경험과 맞물려 형성됐다고 분석했다.
'SEAbling'은 동남아시아(Southeast Asia)와 형제·자매를 뜻하는 'sibling'을 결합한 신조어다. 동남아 국가 간 연대를 강조하는 온라인 구호로 쓰인다. 최근 X(엑스) 등 소셜미디어(SNS)에서 #SEAbling 해시태그와 함께 확산하고 있다.
논란의 발단은 지난달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DAY6 공연이다. 일부 한국 팬이 반입이 금지된 대형 망원렌즈 카메라를 사용하다 현지 보안요원들과 충돌을 빚었다. 해당 장면이 SNS에 공유되면서 현지에서 비판 여론이 형성됐다.
이후 온라인상에는 한국을 겨냥한 비난 게시물이 빠르게 늘어났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베트남 등 여러 국가 이용자들이 한국 브랜드 불매를 촉구하는 글을 공유하고 있으며, 일부는 “K드라마와 K팝 소비를 중단하자”는 주장까지 제기하고 있다.
문제는 논의가 특정 사건을 넘어 한국 사회 전반에 대한 비난으로 확장됐다는 점이다. 낮은 출산율, 높은 자살률, 성형 문화 등을 거론하며 자극적 표현을 사용하는 게시물이 확산했고, 일부 게시물에서는 과거사와 관련된 이미지가 조롱성 맥락에서 활용되기도 했다.
반대로 한국 누리꾼 사이에서도 동남아인을 향한 외모·인종차별적 표현이나 문화·경제 수준을 비하하는 게시물이 올라오며 갈등을 키우고 있다. 상호 비난이 반복되면서 갈등은 지역 정체성과 감정 문제로 번지는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안을 단순 팬덤 간 충돌로 보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빅데이터 컨설팅 회사 드론 엠프리트의 디지털 분석가 리잘 노바 무자히드는 자카르트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사건은 동남아인들의 연대로 이어지며 초국가적 운동으로 발전했다”고 말했다.
그는 “모니터링 결과 X에 게시된 관련 글이 동남아시아 지역에서만 1만8000건을 넘었고, 참여도는 수백만 건에 달한다”며 “이 문제가 팬덤 간 다툼을 훨씬 넘어 확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리잘은 과거 홍콩·대만·태국 누리꾼들이 연대한 '밀크티 동맹'을 언급하며, 온라인 공간에서 지역 정체성을 매개로 집단 행동이 형성되는 흐름이 재현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김민주 기자 minj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