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현대사는 ‘불가능’이라는 세계적 확신을 ‘기적’이라는 실체로 바꿔온 역동적인 여정이였다. 1960년대 현대자동차 설립과 삼성전자의 반도체 진출, 포항제철 건설과 경부고속도로라는 산업 대동맥의 구축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 내부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조차 한국의 계획을 비현실적인 망상으로 치부했다. 자본도 기술도 자원도 전무했던 그 시절 우리가 가진 유일한 자산은 국가의 강력한 리더십과 가난하지만 의지가 충만했던 국민 그리고 국가 성장을 위해 기꺼이 공대로 향했던 최고 엘리트들의 헌신뿐이었다.
당시 한국은 피터 드러커가 평했듯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벤처 국가였다. 조선 500년의 사농공상 굴레를 깨고 국가 성장의 핵심 동력인 이공계에 인구 대비 세계 최고 수준의 인재를 투입한 결과가 오늘날의 산업 강국을 만든 것이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 사회는 급격한 각자도생의 길로 들어섰다. 엔지니어들이 성장의 부품으로 소모되었다는 좌절감은 인재들을 다시금 직업적 안정성이 높은 공무원과 의료계로 회귀시켰고 국가 역량은 미래 성장보다는 포퓰리즘적 분배에 매몰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위기 국면에서 우리는 과거 가나와 북한이 우리와 동일선상에 있었으나 왜 지금은 극명하게 다른 길을 걷고 있는지 주목해야 한다. 경제성장의 결정적 차이는 부존자원이 아니라 ‘자유’와 ‘시장경제’라는 제도적 선택, 그리고 파괴적 혁신을 수용하는 국가적 태도에 있었다. 이제 대한민국은 다음 계단으로 건너뛰어야 할 중대한 분기점에 서 있다. 만약 여기서 성장의 엔진을 멈춘다면 우리는 다시금 강대국의 하청 기지로 전락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가져야 한다.
현시점에서 새로운 혁신의 아이콘은 단연 ‘K-방산’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도래한 신냉전 시대에 안보는 곧 경제의 핵심이자 본질적 가치가 되었다. 과거 자동차와 철강이 산업화의 꽃이었다면 이제는 우리가 보유한 세계적 반도체 제조 기술과 IT를 바탕으로 방위산업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국부를 창출해야 한다. 국가의 임무는 개인의 인센티브를 자극하고 역량을 한곳에 집중시키는 ‘얼라인먼트’에 있다. 방위산업을 단순히 정부 통제하의 보호 산업으로 두지 않고 적극적인 글로벌 전략 산업으로 육성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특히 지속가능한 경쟁력을 위해 ‘D-PMS(방산형 생산성경영체제)’를 도입하여 중소·중견기업과 체계기업 간의 상생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시급하다. 과거의 생산성 혁신이 개별 기업 내부의 효율성에 집중했다면 방산형 생산성경영체제 인증제도는 가치사슬(Value Chain) 전체의 생산성에 주목한다는 것이다. 이는 체계기업(모기업)과 협력사(부품기업)가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여 전체 공급망의 경쟁력을 높였는지를 확인하는 제도이다. 웨어러블 로봇, 2차전지, 3D 적층 가공, 항공우주 등 미래 전장의 핵심 기술들을 민간 산업 전반으로 확산시켜 산업 구조를 고도화해야 한다. 아일랜드가 영국의 오랜 지배와 기근을 극복하고 작지만 강한 경제 대국으로 거듭났듯 우리 역시 안보와 경제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산업보국의 정신을 되살려야 한다.
결국 국가의 부는 본질적 가치인 안보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도구적 가치인 혁신과 생산성을 얼마나 멈추지 않고 가동하느냐에 달려 있다. 일론 머스크나 독일, 일본의 사례처럼 강대국일수록 더 치열하게 일하고 혁신하는 이유는 그들이 설정한 본질적 가치가 높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이미 검증된 반도체와 IT라는 훌륭한 두뇌가 있다. 이제 K-방산이라는 강력한 몸통을 통해 한국형 혁신 제조 시스템을 완성함으로써 독일 전차군단의 몰락과 같은 전철을 밟지 않고 당당한 부국강병과 산업보국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김홍유 경희대 교수(방위산업협회 정책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