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파사드처럼 마음을 열 수 있다면...

입력 2026-03-18 14:03
수정 2026-03-18 14:04
이마 손

최소한의 상비약만 챙겨 간 여행에서, 아픈 아이의 이마를 짚었을 때 속상하면서도 참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체온을 잴 때 당연한 듯 손은 이마로 향하는데요. 이마는 열을 배출하기에 가장 적합한 신체 부위입니다. 그러니 아마도 수천 년 전에 살았던 부모들도 열이 오른 아이의 이마를 만졌을 것입니다.

이마는 틀림없이 우리 신체 중 드물게 ‘아무런 꾸밈없이 정직하게 밖으로 드러낸 곳’에 해당합니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가 아이들에게 “이마를 훤히 열고 다녀라.”라고 말하는 것도 괜한 소리는 아닐 터이죠. 이마는 인물의 첫인상을 결정할 때가 많고, 어쩌면 그 첫인상은 ‘첫사랑’처럼 특별한 관계를 형성하게 해주니 어머니들의 말씀은 여러모로 참 맞는 말입니다.

때때로 우리의 이마는 마치 파사드(Facade, 건축의 정면)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중에서도 감추지 않고 속내를 솔직하게 드러내 시원하게 뚫린 파사드에 가깝습니다. 보통은 ‘파사드’라고 하면 조각가 호세 마리아 수비라치가 장식한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정교한 정면, 또는 르코르뷔지에가 설계한 유니테 다비타시옹의 차양판(Brise-soleil, 브리즈 솔레이유)처럼 근사한 격자무늬를 떠올릴 것입니다.

그런데 여행 중이라는 특별한 상황 때문이었는지, 이마에 손을 짚었을 때 속을 훤히 들여다보는 것과 같은 투명하고 따뜻한 파사드가 떠올랐습니다. 새벽 내내 ‘이마 손’을 하며 아이의 열이 내렸던 순간까지 말이죠.

창경궁 대온실과 철근콘크리트

19세기의 건축양식에 따른 창경궁 대온실의 파사드는 훤히 드러낸 이마처럼 내부가 잘 보입니다. 철골과 목재, 유리로 쌓은 이 건축은 사계절 내내 특유의 초록을 뿜어냅니다. 바깥의 극심한 날씨 변화에 맞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해야만 하는 온실의 특성상 유리를 많이 사용했을 터인데, 그 구조물은 자연스레 스스로를 감추지 않고 드러내도록 한 것이죠.

그래서 대온실은 우리의 이마처럼 항상 특유의 온기를 품고 있습니다.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서울식물원을 비롯해 전국 곳곳의 대온실도 유사한 모습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쩌면 우리는 도시마다 커다란 온기의 장소를 마련해두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에는 식물원이나 온실도 아니면서 훤히 드러내는 상업 건축물도 하나둘씩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커튼월 방식의 마감을 통해 존재감을 강조했던 빅테크기업 애플의 매장이 대표적입니다.

이제는 건축의 골조만 남긴 채 파사드를 아예 비워내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서울 성수동에 위치한 한 화장품 브랜드의 플래그십스토어는 원래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에 붉은 벽돌을 두른 전형적인 옛 건축이었습니다. 건축가는 기존의 벽과 바닥을 모두 비워내고 골조만 남기면서 마치 브루탈리즘 건축처럼 솔직하고 개성 넘치는 모습을 완성했습니다. 마치 앞머리를 과감하게 드러낸 이마처럼 말입니다.



이마 손처럼 따뜻함으로 공동체를 연결하는 주택

일본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야마모토 리켄 선생은 이웃 간의 소통과 공동체의 형성을 중시하기로 유명합니다. 『탈 주택: 공동체를 설계하는 건축』, 『마음을 연결하는 집』 등 그의 대표적인 저서를 읽어보면 잘 알 수 있는데요.

한국에 지은 판교 타운하우스와 세곡동 아파트도 그의 신념에 따라 설계됐습니다. 공동주택이며 집합주택의 형식을 띠면서도 투명한 현관문으로 서로의 삶을 공유하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주택이 지어진 초기엔 주민들도 혼란을 느꼈다고 전해집니다.

그런데 공동체의 따뜻함과 소통을 경험한 주민들이 나중에 야마모토 리켄 건축가를 직접 초대해 마을 잔치를 열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이마에 손을 짚듯 다 드러낸 마당과 현관을 통해 서로를 들여다본 이웃들이 건축가의 뜻을 헤아렸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야마모토 리켄 건축가나 관련 학회에 따르면, 현대 사회에서 당연시되는 ‘개인이나 가족 단위의 보장된 공간’이 발명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산업화 이전에는 개별 가족보다 공동체의 삶이 더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야마모토 리켄 건축가는 여전히 ‘공동체의 어울림’을 강조합니다. 개인의 삶은 보호하면서도 투명한 현관과 마당을 통해 커뮤니티가 상부상조하기를 바라는 것, 바로 야마모토 리켄이 주창한 ‘지역사회권’의 핵심 개념입니다.

야마모토 리켄 선생은 초고령화 사회, 1인 가구의 증가 시대에 서로 개방하고 나누며 고립되지 않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우리의 전통가옥에서 볼 수 있는 마당과 사랑채도 같은 관점에서 조명했습니다.

우리에겐 여전히 야마모토 리켄의 ‘지역사회권’이 낯설지만, 어쩌면 공유주택의 진화와 다양한 형태의 대안 공동체가 늘어나는 것을 보면 그의 꿈이 머지않은 것 같기도 합니다. 앞으로 야마모토 리켄 특유의 투명한 파사드는 서로의 마음까지 위로할 것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사생활이 노출되어 불편하게 느껴질 그의 건축이 꼭 이렇게 이야기하는 듯합니다. “이마 손”



한여름밤의 꿈 서곡과 책의 서문

음악에는 서곡이 있고 책에는 서문이 있습니다. 펠릭스 멘델스존(Jacob Ludwig Felix Mendelssohn Bartholdy)의 오페라 ‘한여름 밤의 꿈’, 리하르트 바그너(Wilhelm Richard Wagner)의 ‘박쥐’, ‘탄호이저’ 등 고전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작품 전체를 감상하는 대신 대막을 여는 ‘서곡’만으로 감동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서곡’에 작품 전체의 분위기를 요약했기에 가끔은 그 강렬한 선율에 마음을 빼앗기기가 일쑤입니다.

뮤지컬(또는 뮤지컬 영화)의 경우에는 이 서곡의 투명함과 친절함이 더욱 명백해집니다. <사운드오브뮤직(1969)>의 서곡을 듣자 하면 오스트리아의 미라벨 정원과 알프스, 마리아와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뮤지컬 ‘오페라의유령’의 경우도 마찬가지죠. 앤드류 로이드 웨버(Andrew Lloyd Webber)가 작곡한 ‘오페라의 유령’ 서곡에는 팬텀의 은신처부터 오페라 가르니에의 샹들리에, 가면무도회까지 명장면이 모두 담겼습니다.



어렵지 않고 친절하게 작품 전체의 분위기를 설명해주는 서곡은 따뜻한 이마를 손으로 짚는 것과 닮았습니다. 서곡처럼 친절한 안내는 책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보통 서문에는 저자의 가장 솔직한 심정이 담깁니다.

왜냐하면 서문은 책을 쓰기 시작할 때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맺을 때 완성하기 때문입니다. 독자에게는 시작이지만 저자에게는 맺음인 것이죠. 물론 그런 면은 서곡도 마찬가지일 것일 터이죠.

사카모토 류이치와 후쿠오카 신이치의 대담집 『음악과 생명』에는 두 인물의 서문이 담겼습니다. 작곡가와 생물학자가 주거니 받거니 쓴 서문에는 사실상 책이 건네려 한 화두가 모두 녹아 있습니다. 두 대가는 줄곧 로고스(logos, 언어, 이성)와 피시스(physis, 자연, 직관)의 대립을 중심에 두고, 그야말로 ‘음악’과 ‘생명’을 연결 짓습니다.

『음악과 생명』에서 두 거장은 궁극적으로 ‘인공지능 만능론, 관리사회 등 로고스에 지나치게 편중된 세상의 폐해’에 맞서 ‘피시스의 풍요로움을 회복하기 위한 새로움’을 추구하자며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어쩐지 이 서문은 열병을 앓고 있는 우리 시대의 이마를 살포시 어루만지는 것 같습니다.

좀처럼 쉽지 않겠지만 따뜻한 손, 따뜻한 말, 따뜻한 문장으로 누군가의 이마를 짚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따뜻한 계절에 새로운 생각을 해봅니다.

김현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