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이 올해부터 2030년까지 5년간 사상 최대 규모인 125조2000억원을 국내에 쏟아부어 로봇 혁신 생태계를 조성한다고 22일 밝혔다. 완성차(현대차·기아)부터 철강(현대제철) 부품(현대모비스) 물류(현대글로비스) 방위산업·철도(현대로템)까지 다양한 제조 현장에서 축적한 데이터를 활용해 피지컬 인공지능(AI)에서 글로벌 선두 기업으로 발돋움한다는 계획이다.
현대차그룹은 국내 투자금 125조2000억원 중 71.1%를 미래 신산업(50조5000억원)과 연구개발(38조5000억원)에 배정했다. 여기에는 로봇, AI, 전기차, 수소, 소프트웨어중심차량(SDV) 등 현대차그룹이 미래 성장동력으로 꼽은 기술이 포함됐다. 모두 로봇 생태계 조성과 연계돼 있다. 단순한 로봇 제조를 넘어 제품 구독, 파운드리(수탁생산), 훈련 거점 구축, AI 데이터 학습 등 로봇산업 전 과정을 아우르는 밸류체인을 갖추겠다는 것이 현대차그룹의 목표다. 현대차 "韓, 로봇 산업 최적의 장소…핵심은 DESIGN"
로봇 메타플랜트, 조지아 검토…AI 데이터센터는 전남·북 고려현대자동차그룹은 로봇 시장이 성능이 아니라 현장에서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승부가 갈릴 것으로 보고 있다. 성능이 뛰어나도 실제 제조 현장에서 데이터를 쌓지 못하면 상품성 개선이 되지 않아 시장에서 도태될 것이라는 판단이다. 현대차그룹이 피지컬 인공지능(AI) 시장에서 승산이 있다고 보고 5년간 125조2000억원 투자를 결정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대차그룹은 자동차, 로봇, 제철, 물류 등 산하 기업들이 쏟아내는 방대한 현장 데이터에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 역량을 앞세워 시장을 선점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따라 현대차그룹은 로봇 전용 훈련 거점인 ‘로봇 메타플랜트 응용센터(RMAC)’를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전용공장 메타플랜트아메리카(HMGMA)가 있는 조지아주 사바나 인근에 조성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동시에 데이터를 학습하기 위해 저장하고 내보낼 AI 데이터센터를 전남·북 등 서남해안 벨트에 세우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 이 지역은 태양광과 풍력 등을 활용한 전력 조달에 유리하다.
현대차그룹은 2028년까지 포함해 연간 3만 대 규모의 로봇 양산 체제를 구축해 글로벌 로봇 시장을 선점한다는 계획이다. 경쟁사인 테슬라는 올해 말 양산을 시작해 장기적으로 연 100만 대 규모 생산 체제를 구축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상태다.
현대차그룹이 테슬라와 다른 점은 보스턴다이내믹스가 휴머노이드 ‘아틀라스’, 로봇개 ‘스폿’ 등과 같은 로봇 완성품을 생산하고, 현대모비스가 여기에 들어가는 액추에이터(구동장치)와 헤드 모듈을 공급하며, 현대오토에버는 로봇 관제 시스템 운영을 맡고, 현대글로비스는 물류 및 유통을 책임지며 로봇 생태계를 구축한다는 점이다.
현대차그룹은 22일 “한국 로봇산업을 글로벌 핵심 거점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디자인(DESIGN)’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수요(demand), 운영 경험(experience), 공급망(supply chain), 인프라(infrastructure), 정책(government), 산업 네트워크(network)의 앞 글자를 땄다. 저출생과 고령화로 2034년까지 122만2000명의 추가 인력이 필요한 상황으로 수요가 충분하다고 봤다. 운영 경험에선 2023년 한국 제조업 로봇 밀도가 근로자 1만 명당 1012대로 2위인 싱가포르(730대)를 압도한다는 점을 내세웠다. 부품 공급망 역시 스타트업부터 대기업까지 촘촘하게 연결돼 있고, 세계 최고 수준의 초고속 통신망과 클라우드를 결합한 인프라는 수많은 로봇을 실시간 관제하고 AI를 학습시키는 핵심 토대로 작용한다는 설명이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