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부담 낮아진 中…韓 배터리·태양광은 '긴장'

입력 2026-02-22 17:55
수정 2026-02-23 01:11

미국 연방대법원의 상호관세 위법 판결로 한국 기업이 일제히 제품 생산 전략 재점검에 들어갔다. 스마트폰, TV, 가전 업체의 주요 생산 기지인 인도, 베트남 관세율이 낮아진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관세율이 ‘최혜국대우(MFN) 관세+무역법 122조에 따른 15% 관세’로 바뀌면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한국에서 생산한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질 것이란 기대도 크다. 하지만 중국산 제품 관세율이 낮아진 건 미국 시장에서 경쟁을 벌이는 한국 배터리·태양광 기업엔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인도·베트남 관세율 하락 ‘긍정적’22일 산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전자 등 국내 대표 수출 기업은 미국 대법원의 상호관세 위법 판결 이후 대책 회의를 열었다. 제품 생산 전략과 관련한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향후 시나리오별 대응 전략을 세우는 데 주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 LG전자 등 스마트폰·TV·가전업체는 인도, 베트남 등의 관세율이 각각 18%, 20%에서 15%로 낮아지며 미국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이 더 높아질 전망이다. 인도와 베트남은 세계 최대 규모 스마트폰·가전 공장이 있다. 멕시코산 제품 대상 펜타닐 관세 부과 가능성이 사라진 점도 현지에 TV·가전 공장을 두고 있는 TV·가전 기업이 한숨 돌릴 수 있는 요인으로 평가된다.

한국무역협회는 이날 “미국 관세 구조가 ‘최혜국대우 관세+무역법 122조에 따른 15% 관세’ 구조로 전환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기존 구조에선 한국이 FTA 체결국인데도 일본, 유럽연합(EU)과 같은 관세율 15%를 적용받았지만 향후 ‘FTA 효과’를 볼 여지가 생겼다는 것이다. 무협은 “한·미 FTA로 인한 관세 면제 효과만큼 가격 경쟁력 우위를 일부 회복할 여지가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산과 경쟁 불리해져중국산 제품 관세율이 기존 대비 5%포인트 낮아진 것은 변수다. 이번 판결로 미국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에 근거한 펜타닐 관세 10%와 상호관세 10%는 무효화됐고 15%의 글로벌 보편 관세로 대체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미국에서 중국산 제품과 경쟁하는 한국 배터리·태양광 등 업계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중국산 에너지저장장치(ESS)용 배터리 완제품의 실질 관세율은 기존 48.4%에서 43.4%(무역법 301조 등에 따른 관세 28.4%+보편 관세 15%), 중국산 태양광 모듈 관세 역시 84.2%에서 79.2%로 내려간다. 한국 기업이 우려하는 건 5%포인트 관세 하락이 가져올 중국 제품의 가격 경쟁력 개선이다. 43.4%와 79.2%는 여전히 절대적으로 높은 수치지만 중국산은 생산 단가가 워낙 낮아 이 정도 인하 폭만으로도 시장 파급력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ESS와 태양광 모듈로 전력 단지를 조성하는 미국 에너지 기업 상당수는 지금도 관세를 부담하며 중국 제품을 쓰고 있다. 아이폰 생산량 절반 정도를 중국에서 제조하는 애플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는 점도 삼성전자에 불리해진 환경이다. ◇“정책 불확실성 너무 크다”반도체와 자동차 산업은 이번 판결로 큰 변화를 겪지 않을 것으로 분석된다. 자동차는 IEEPA가 아니라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라 품목관세를 적용받고, 반도체는 품목관세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다만 상호관세가 사라진 빈자리를 미국 정부가 품목관세율 인상으로 채울 가능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국회의 대미투자특별법 처리 무산을 이유로 한국산 자동차 관세율을 15%에서 25%로 다시 올리겠다고 압박했다. 금융투자업계에선 자동차 관세율이 25%로 인상되면 현대차와 기아의 올해 관세 부담액이 전년 대비 4조원가량 늘어난 11조원대로 치솟을 것으로 예상한다.

황정수/양길성/성상훈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