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시험과 바이오 투자가 중국으로 몰려가고 있다.”
미국 의회 자문기구인 신흥바이오기술국가안보위원회(NSCEB)가 최근 펴낸 보고서에 담긴 내용이다. NSCEB는 작년부터 중국 바이오산업의 약진을 경계하는 보고서를 다수 펴냈다. 한국바이오협회는 “세계에서 나오는 신약 후보물질(파이프라인) 가운데 중국 기업의 파이프라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10년 전에는 6%에 불과했지만 현재는 약 30%에 달한다”고 평가했다.
◇‘퍼스트 무버’ 된 中 바이오중국 바이오산업의 수준이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퍼스트 무버’ 단계에 들어섰다. 22일 바이오업계에 따르면 중국 국가의료보장국이 허가한 자국 기업의 혁신 신약은 지난해 59건에 달했다. 같은 기간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허가한 자국 기업의 혁신 신약 29건을 훌쩍 넘어섰다. 이 수치는 2021~2022년 미국과 중국이 비슷한 수준이었으나 2023년 중국 34건, 미국 25건으로 중국이 크게 앞섰다. 2024년에는 중국 39건, 미국 26건으로 격차가 더 커졌고 지난해에는 중국이 미국의 약 두 배에 이르렀다.
상황이 이렇게 된 건 중국 바이오 기업이 무서운 속도로 기술력을 발전시켰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과거 중국은 검증된 기존 작용기전을 적용한 치료제 개발에 집중했다면 현재는 독자적인 표적을 기반으로 한 혁신적 치료제를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글로벌 임상 자체 수행중국은 자국 인구는 물론 외국인 거주자가 많아 자국에서 글로벌 임상 데이터를 확보하기도 수월하다. NSCEB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은 세계보건기구(WHO) 국제 데이터베이스에 7100건 이상의 임상시험을 등록해 미국(약 6000건)을 능가했다. 기술수출은 임상 데이터 규모에 따라 금액이 결정된다.
여기에 해외에서 교육받고 경험을 쌓은 바이오 인재의 리쇼어링(국내 복귀)도 중국 바이오산업 발전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 수년간 미·중 갈등이 격화하고 중국이 바이오산업을 육성하면서 미국 등지에 있던 중국 바이오 인력이 고국으로 돌아오는 추세다. 글로벌 헤드헌팅 플랫폼 링크트인이 지난해 낸 보고서에 따르면 귀국 중국 유학생(박사학위 소지자)의 선호 산업으로 생명공학·제약·헬스케어가 3위에 올랐다. 중국 교육부에 따르면 2024년 귀국한 중국인 인재는 49만5000명에 달했다.
허혜민 키움증권 혁신성장리서치팀장은 “중국 내 임상 비용은 미국의 3분의 1 수준으로 저렴한 편”이라며 “여기에 글로벌 제약사 근무 경험 등이 있는 인재가 많아져 데이터의 신뢰성이 높아진 것도 큰 도움이 됐다”고 언급했다.
중국 바이오 기업의 개별 기술이전 규모(선급금과 단계적 수수료 합계) 역시 빠르게 커지고 있다. 이 규모는 2021년 1억7400만달러(약 2500억원)에서 지난해 8억4800만달러로 커졌다. 2021년에는 한국 바이오 기업 평균 기술이전 규모의 49.1%에 그쳤으나 지난해에는 90.3%로 확대돼 격차가 좁혀졌다.
글로벌 빅파마가 중국 파이프라인을 공급망처럼 여기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맥쿼리캐피탈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다국적 기업들은 중국에서 유망한 파이프라인을 도입해 자사의 연구개발(R&D) 비용을 아낄 수 있다”고 했다. ◇AI 신약 개발에서 美 넘어서인공지능(AI) 활용 신약 개발에서도 중국 기업의 경쟁력은 이미 세계적인 수준이다. 중국 바이오테크 마인드랭크는 지난달 자국에서 먹는 비만약 ‘MDR-001’의 임상시험 3상을 시작했다. 지난달 출시된 노보노디스크의 먹는 위고비는 임상시험 과정에서 구토, 설사 등 부작용 사례가 많았지만 MDR-001은 경미한 위장 이상 반응만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마인드랭크는 이 파이프라인의 기전 설계에 AI를 활용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 따르면 중국에서 2024년 발표된 AI 신약 개발 논문은 2486건으로 같은 기간 미국(1888건)보다 많았다. 이 수치는 2022년까지는 미국(1236건)이 중국(1163건)보다 많았으나 2023년 중국(1562건)이 미국(1476건)을 역전했고 격차는 이듬해 더 벌어졌다.
미국 머크(MSD)의 마크 혼 중국지사장은 “올해 중국은 AI로 설계한 신약을 승인하는 최초의 국가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양병훈/오현아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