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한 금융 스타트업이 증권업에 진출하겠다며 호기롭게 모바일 주식매매시스템(MTS)을 만들었다. 그런데 내놓고 보니 증권업계에서 보면 황당할 만큼 빈약한 수준이었다. 주가 창에는 주가만 있을 뿐 호가를 찾을 수 없었다. 호가를 보지 않고 주식 투자를 하라고? 다들 고개를 갸웃거렸다. 주식 차트도 마찬가지였다. 봉 차트도, 이동평균선 같은 보조지표도 없이 달랑 선 차트만 선보였다. 이 만들다 만 것 같은 MTS는 여의도 증권가의 조리돌림감이 됐다.
그런데 이 MTS가 공개된 뒤 3개월간 무려 300만 명이 다운로드하고 계좌를 깔았다. 일반적으로 대형 증권사는 연간 20만~30만 건의 신규 계좌 유치를 목표로 삼는다. 갓 생겨난 증권사가 대형사들의 10년 치 목표 물량을 3개월 만에 채운 것이다. 토스증권이 처음 생겨났을 때 이야기다.
토스증권이 지난주 발표한 작년 성적은 그 놀라운 스토리가 진행형임을 보여준다. 한 해 동안 매출 8829억원, 순이익은 3400억원을 거뒀다. 출범한 지 5년이 채 안 된 증권사가 수십 년 업력을 쌓은 중견 증권사를 제치고 국내 50여 개 증권사 중 단숨에 9위로 도약했다.
토스증권 사례를 꺼내 든 것은 이 회사 성과가 전례를 찾기 힘든 수준이기도 하지만 그간 여정이 여러모로 업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세상에 없던 기술과 서비스로 뜬 게 아니다. 오히려 국내 금융·투자 분야 중 가장 경쟁이 치열하고 수익성이 낮은 브로커리지(주식 매매 중개)에서 한 우물을 파서 낸 성과다. 다른 증권사들이 이 레드오션을 벗어나 투자은행(IB), 자산관리(WM) 같은 블루오션을 찾는 동안 이 회사는 레드오션을 블루오션으로 바꿨다. 기존 증권사들이 서로 개인 고객을 빼내기 위해 쟁탈전을 벌일 때 토스증권은 새로운 고객을 만들었다. 최근 4~5년 사이 본격적으로 늘어난 서학개미가 대표적이다. 토스증권은 국내 증권사 중 가장 많은 서학개미 고객을 보유하고 있다.
이 회사는 무거운 것을 덜어내는 법을 알았다. 남들이 MTS에 더 많은 정보를, 더 많은 데이터를 넣으려 할 때 ‘더 뺄 게 없는지’를 고심했다. 다른 증권사들이 작은 모바일 화면에 더 많은 글자를 욱여넣는 동안 토스는 초보 투자자를 위해 글자 크기를 키웠다. 종목명을 모르는 투자자가 MTS에 ‘새우깡’을 검색하면 ‘농심’을 보여줬고, ‘매수’ ‘매도’라는 말이 어려울까 봐 ‘구매하기’ ‘판매하기’ 같은 단어를 썼다.
토스증권은 투자 패러다임도 바꿨다. 이 증권사가 초기 성공을 거둔 데는 두 가지 마케팅의 효과가 컸다. 하나는 매일, 매주 정기적으로 주식을 사도록 도와주는 ‘주식 모으기’, 또 한 가지는 해외 고가 주식을 1000원 단위로 쪼개서 살 수 있게 해주는 ‘소수점 투자’다. 주식이 거액을 붓고 단기간에 대박이 나는 상품이 아니라 소액으로 꾸준히 투자하는, 그래서 쉽게 누구나 할 수 있는 상품이라고 정의한 것이다. 차트를 체크하고, 호가를 따져가며, 각종 보조지표를 보며 매매하는 전문 투자자들은 이 ‘만들다 만’ MTS를 외면했지만, 막 주식 시장을 기웃거리던 청년들은 뜨겁게 호응했다. 청년들은 SNS에 1000원짜리 테슬라, 엔비디아 주식을 매주 사며 자랑했고 그게 바이럴을 탔다.
토스증권은 최고경영자(CEO)가 네 번 바뀌는 동안 한 번도 증권사 출신이 맡은 적이 없다. 개발자와 기획자도 증권사 경험이나 주식 투자 경험이 미미했다. 비슷한 시기 똑같은 스타트업 DNA로 출발한 카카오페이증권은 기존 증권사를 인수하고 대형 증권사 전문가를 대거 수혈해 시스템과 MTS를 개발하고 증권업의 조직 체계와 문화를 이식했다. 그런데 증권업도 잘 모르고 위아래도 없는 이 토스증권 초짜들은 “왜 안 돼?”라는 질문을 계속 던졌고 수십 년간 이어져온 관행을,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깼다. 그렇게 새로운 고객을 만들고, 데이터를 장악하고, 패러다임을 바꿨다.
토스증권이 앞으로도 계속 잘나갈지는 지켜봐야 한다. 회사가 커지다 보니 직면한 어려움도 만만찮다. 하지만 익숙함을 의심하고 비트는, 그럼으로써 업을 재정의하는 이런 당돌한 회사의 출현은 언제나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