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심제 도입되면 재판 10년 걸릴수도…부자들만 유리해져"

입력 2026-02-20 23:15
수정 2026-02-20 23:18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4심제'(재판소원법)가 도입되면 재판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10년~20년간 지속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소송에 능한 법률가와 소송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부자들에 유리한 사법 환경이 조성될 것이란 전망이다.

민주당이 오는 24일 국회 본회의 강행 처리를 예고한 4심제와 대법관 대폭 증원, 법왜곡죄 신설 등 사법개정 3법이 시행되면 사법부 독립과 삼권분립의 근간이 흔들려 국민 인권이 크게 훼손될 것이란 지적도 나오고 있다.

20일 국회에서 나경원·조배숙·곽규택·신동욱 등 국민의힘 법제사법위원회가 주최한 ‘사법파괴 3대 악법’ 저지 긴급토론회에선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지성우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정재기 변호사, 문수정 변호사 등 전문가들이 참여해 이 같은 우려를 쏟아냈다."꼬리에 꼬리를 무는 재판...소송비용 감당 가능한 자가 유리" 이날 문수정 한반도인권과통일을위한변호사모임 정책실장(변호사)은 4심제가 시행될 경우 "개인의 재력이 곧 소송의 종결을 의미하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문수정 실장은 3심제인 지금도 "소송이 어느 정도 걸릴까요"라는 질문에 3심까지 간다면 최소한 2년 반은 감내해야 한다고 안내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4심제가 된다면 상고심에 대한 헌법소원 끝에 헌법소원이 받아들여져 다시 법원에서 재판하게 되고, 다시 상고심을 거친다 해도 또다시 헌법소원을 할 수도 있어 결국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재판이 이어진다"며 "재력이 뒷받침된다면 끝나지 않는 소송을 10년이고 20년이고 끌 수 있다는 맹점이 있다"고 했다. 그는 "엉뚱하게도 당사자가 얼마나 소송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지가 권리 구제 여부, 또는 권리 구제 범위를 결정하는 핵심 요소가 될 수도 있다"고 꼬집었다.

지성우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전 헌법학회장)는 "4심을 하면 좋을 것 같지만 2심, 3심 등 심급당 수천만원이 들고, 1~2년이 더 걸린다"며 "국민의 기본권과 재산권에 관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소송 상대방이 이 재판소원제도를 악용해 소송을 진행하면 몇 년이 걸릴지 모르고 만일 재판소원심사 결과 대법원 판결이 취소되면 다시 몇 년 동안 재판을 반복해야 한다는 점을 우려한 것이다. 한국은 독일과 달리 상소를 제한하지 않는다. 지 교수는 또한 독일 사례에서 4심의 인용률이 0.23%밖에 안 된다는 점도 언급했다."법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시 권력의 사법부 장악 우려" 지성우 교수는 민주당이 추진하는 법왜곡죄 법안이 시행되면 정치적 사안에 대한 법관의 소신 있는 재판에 대해 반대 정치세력에서 법 왜곡죄 혐의로 고소·고발하게 되면 독립적인 사법권 행사를 저해하고 결국 권력이 사법부를 장악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크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법관의 단순한 판단상 과오나 소수적 견해까지도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어 법관의 직무 수행을 지나치게 위축시킬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법왜곡죄가 도입되면 고소·고발 남발 등 사법방해 수단으로 악용되고, 절차 지연에 따른 국민들에게 피해가 전가될 소지가 높다는 지적이다.

그는 독일 도입 사례를 들며 "특수한 상황에서 만들어진 특별한 악법"이라고 평가했다. 독일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패배와 1990년 통일 이후 국민 인권을 유린한 법조인들을 단죄하기 위해 ‘법왜곡죄’를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판사나 검사가 법왜곡죄로 처벌당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 사문화한 규정이라는 게 지 교수의 진단이다. 그는 "우리나라는 독일과 달리 촘촘하게 판·검사를 처벌할 규정이 있어 법왜곡죄 법안이 필요가 없다"며 "미국, 프랑스, 스위스, 일본 등 형법에서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법왜곡죄 규정이 없다"고 했다. 그는 "역사적으로도 독재 정권하에서 법관 통제 수단으로 활용된 전례가 있으므로 도입에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대법관 증원 시 22명 코드인사로 장악 가능..베네수엘라, 헝가리 독재국가 수법"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변호사·헌법학)는 여당이 추진하는 대법관 증원에 대해서도 "코드인사로 사법부 독립성을 크게 훼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차 교수는 "이재명 대통령 임기 내에 임기 만료로 인해 퇴임하는 대법관 수와 증원되는 대법관 수(12명)를 합하면 총 26명"이라며 "이 중에 이 대통령이 22명을 코드인사로 임명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차 교수는 대법관의 급격한 증원은 베네수엘라, 헝가리처럼 대법원을 포함한 법원 전체가 정치권에 종속돼 권력의 시녀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고 우려했다. 그는 미국에서 민주당 조 바이든 정부가 대법관 증원을 시도한 사례도 들었다. 차 교수는 "바이든 정부도 공화당이 임명한 대법관이 다수인 상황에서 9명의 대법관을 13명으로 4명 증원하는 방안을 추진했다"며 "하지만 사법부 독립에 대한 국민적 여론이 강해 결국 포기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것이야말로 미국이 베네수엘라, 헝가리와 달리 선진국의 시민의식을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대법원의 과중한 사건부담을 덜고 재판 지연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각 정권에서 대법원의 소부를 구성하는 4명씩만을 순차적으로 증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언했다. 즉 이재명 정권에서는 1년에 1명씩 증원해 4명만을, 그다음 정권에서도 1년에 1명씩을 증원하여 4명만을 증원하는 식이다.

차 교수는 법왜곡죄 법안에 대해서도 "수사기관과 재판기관을 마음대로 조정해서 정권의 시녀로 전락시키는 법"이라며 "독일, 스페인, 러시아, 중국 등 전체주의 국가, 독재국가, 내란의 역사가 있는 나라에만 있는 법"이라고 말했다. 또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돼 위헌 소지가 명백한 법안"이라고도 했다.대법원 李 재판 파기환송 이후 한 달만에 쏟아진 사법개정 법안정재기 변호사는 "검찰청 폐지, 4심제, 법왜곡죄, 대법관 증원 등과 관련된 법안이 모두 2025년 대법원의 이재명 재판 유죄취지 파기환송 이후 한 달여만에 민주당에서 쏟아진 법안들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 변호사는 헝가리와 베네수엘라 모두 대법관 증원으로 정권이 사법부를 장악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헌법 101조 1항에서 사법권이 법원에 속하게 돼 있고, 헌법재판소법 규정을 감안해도 4심제법은 위헌"이라고 했다. 그는 "2008년 도입된 국민참여재판이 현재 사문화됐다"며 "영미권과 미국처럼 배심제를 확대해서 사법부 권한을 정치로부터 보호하고 시민에게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대법관 대폭 증원, 재판소원 도입, 법왜곡죄 신설 등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법 체계의 변화 이후 사법부는 민주화 이전의 사법부와 유사한 것으로 전락할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치권의 압력에 굴복하는 사법부, 굴복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진 사법부가 사법의 본질에 부합하는 사법부, 국민들이 공정한 재판을 기대할 수 있는 사법부라고 볼 수는 없다"라고도 했다.

재판소원의 경우 독일 사례에서 보듯이 헌법재판소의 업무량 폭증으로 이어지며, 이를 막기 위해선 독일처럼 헌법재판소 재판부를 2개로 늘려 사건 처리 능력을 확대하는 것이 전제돼야 한다고 언급했다. 또 법왜곡죄 도입은 기존 직권남용죄 등과 체계상 혼란을 야기하며 그 대상인 판·검사 등에 대한 압력 수단이 될 우려가 크다고 했다. 그는 "정말로 법왜곡죄 도입이 필요하다면, 직권남용죄 등의 폐지가 선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사법부 독립성이 훼손되는 것은 삼권분립 파괴와 인권 보장 파괴로 이어질 수 있다며 이는 독재국가를 의미한다고 꼬집었다.나치 정권 시절 법철학자 라트브루흐의 '합법적 불법'비판도 회자 한편 조배숙 의원은 민주당이 추진하는 사법개정 3법에 대해 "피고인 이재명 대통령 구하기 입법"이라고 평가했다. 조 의원은 "원래 사법권은 대법원에 속했고 헌법재판소 출범할 때, 법원의 재판은 헌법소원에서 제외하도록 법에 명시했다"며 "위헌적 요소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독일의 법철학자이자 형법학자인 구스타프 라트브루흐가 나치 정권 시절 제정된 유대인차별법 등 반인권적 법률을 두고 "합법적 불법"이라고 평가한 것을 인용했다. 그는 "입법독재가 이렇게 무서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도 했다.

이날 나경원 의원은 "민주당이 추진하는 4심제는 국민에게 큰 피해를 주고, 대법관 증원은 편향된 대법원을 만들 것"이라며 "사법개정 3법은 이재명 죄 지우기를 통해 헌정 가치를 파괴할 것"이라고 했다. 특히 마무리 발언에서 "1987년 헌법은 대통령의 권한을 제한하고 의회의 권한을 강화했는데, 의회 안에서 견제와 균형이 있을 것이라고 여긴 것"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이 다수당을 차지하면서, 입법의 외피를 씌운 입법 쿠데타의 장으로 삼고 있는 것이 문제"라며 "사법 파괴를 통한 삼권분립을 무너뜨리는 현실에 처했다"고 우려했다. 그는 최근 유시민 작가가 민주당 의원들이 이재명 대통령 수사에 대한 공소 취소 의원 모임을 만든 것을 보고 "미친 짓"으로 평가한 것을 언급하며 "삼권분립의 정신을 파괴하는 민주당의 시도에 대한 평가도 이와 같다"고 일갈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