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오의 안식을 방해하는 자, 죽음의 날개에 닿으리라.”
‘투탕카멘의 저주’ 이야기는 이런 무시무시한 경고로 시작됩니다. 사건은 1922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3000년 전 이집트의 파라오, 투탕카멘의 무덤을 발견한 발굴단. 무덤 입구에 섬뜩한 경고 문구가 적혀 있었지만 욕심에 눈이 멀어 무덤을 파헤칩니다. 어마어마한 보물을 얻었지만 대가는 컸습니다. 발굴에 참여한 사람들이 하나둘씩 의문의 죽음을 맞이했던 겁니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흥미로운 소재, 자극적인 스토리에 그럴듯한 근거까지 있습니다. 실제로 발굴단 운영 비용을 대준 핵심 인물(카나번 경)이 투탕카멘 무덤이 발굴된 후 얼마 되지 않아 사망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1920년대부터 전세계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한국에도 수입돼 공포 만화나 미스터리 서적, TV 프로그램 등의 단골 소재로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국내에도 잘 알려진 것처럼, 투탕카멘의 저주는 사실과 거리가 먼 허구입니다. 가장 큰 증거는 지난해 11월 개관한 이집트대박물관(GEM). 전 세계 관람객이 하루 2만명 가까이 몰리는 이곳의 주인공은 단연 투탕카멘의 유물입니다. 그의 황금 마스크와 관을 비롯해 5000점이 넘는 유물이 이곳에 모여 있지요. 파라오의 안식을 방해하는 이들이 저주를 받는다면, 이미 전 세계 수백만 명의 관람객이 봉변을 당했을 겁니다. 2주 전 이곳을 방문한 저도 그중 하나일 테고요. 다행히 아직은 멀쩡합니다.
오늘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에서는 무서운 전설과 화려한 유물 뒤에 숨겨진 소년 왕의 진짜 얼굴을 들여다보려 합니다. 그는 어떤 사람이었고, 왜 그토록 많은 유물을 품고 잠들었는지, 저주의 진실은 무엇인지를 차근차근 풀어 보겠습니다. 죽으면 영원히 산다, 이집트의 사후세계고대 이집트 사람들만큼이나 ‘죽음 이후의 삶’에 집착했던 민족은 또 없을 겁니다. 살아있을 때 준비를 잘 한다면 사후세계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게 이집트인들의 믿음이었습니다. 삶은 잠시 스쳐 지나가는 것뿐, 죽음이라는 새로운 시작 뒤에는 영원한 삶이 있다는 게 그들의 상식이자 신앙이었지요.
이런 신앙을 만든 건 이집트의 특이한 환경입니다. 이집트의 ‘생명줄’인 나일강은 매년 일정한 시기에 딱 정해진 만큼만 넘쳤다가 다시 원상태로 돌아갑니다(규칙적인 범람). 강물이 빠진 자리에는 비옥한 흙이 남았고, 여기서 다시 새로운 생명이 싹텄습니다. 이런 현상이 수천 년에 걸쳐 매년 똑같은 시기에 반복되면서 이집트 사람들은 ‘모든 것은 죽고 나서 새로 태어난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매일 동쪽에서 떠올라 서쪽으로 지고, 다음날 다시 어둠을 뚫고 부활하는 태양도 이런 생각이 옳다는 증거로 여겼지요.
이집트인들은 여기서 한 발 나아갔습니다. ‘사람도 적절한 절차만 거치면 죽은 뒤 사후세계에서 다시 태어나 영원히 살 수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한 거죠. 그 ‘적절한 절차’ 중 가장 중요한 게 바로 미라였습니다. 안 그래도 이집트의 건조한 사막은 시신이 자연적으로 미라가 되기 쉬운 환경이었습니다. 이런 자연 미라를 보고 이집트인들은 ‘몸만 있다면 죽은 뒤에도 살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됐습니다.
이집트의 내세관을 만든 또 다른 주인공은 폐쇄적인 지형입니다. 이집트는 북쪽의 지중해, 남쪽 나일강의 급류, 동서의 거대한 사막으로 둘러싸여 있어 침략이 쉽지 않습니다. 덕분에 고대 이집트는 다른 고대 국가들에 비해 큰 변동을 겪지 않고 수천 년간 왕조와 사회 시스템을 유지할 수 있었지요. 그래서 이집트인들에게는 ‘죽은 뒤에도 이런 질서가 이어질 것’이라는 생각이 자연스러웠습니다. 이는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대조적입니다. 메소포타미아인들은 탁 트인 지형 때문에 자주 침략과 학살에 시달렸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내세관 대신 현실적인 세계관을 발달시켰고, 이 덕분에 법전(함무라비 법전) 등 선진적인 제도를 마련하게 된 거지요.
파라오의 무덤에 온갖 종류의 유물이 묻혀있었던 것도 이런 이집트 특유의 세계관과 연결됩니다. 이집트 신앙에 따르면 죽은 뒤 행복하게 영생을 누리기 위해서는 여러 준비가 필요합니다. 미라를 만드는 건 기본 중의 기본. 죽은 뒤 사후세계에 펼쳐진 황량한 길을 몇 날 며칠씩 여행하기 위해 채비도 해야 하고, 죽은 뒤 신을 만나 일종의 ‘면접시험’을 볼 준비도 해야 합니다. 시험을 통과한 뒤에 쓸 여러 물건, 영원한 삶에서 나를 도와줄 하인도 필요하지요.
이집트대박물관(GEM)에서는 그 방대한 유물의 종류와 수량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나온 5000점 넘는 유물이 한데 모여있거든요. 황금 관과 마스크, 생전에 썼던 물건과 찬란한 황금 장식품을 비롯해, 저승길을 여행할 때 사용할 일종의 접이식 캠핑 의자, 음식, 투탕카멘을 지켜줄 동물(의 조각상), 타고 다니던 전차, 수많은 옷과 속옷, 신발, 사후세계에서 파라오를 모실 하인(의 인형) 등이 빽빽하게 전시실을 채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중에서는 평범한 나무 지팡이들도 있습니다. 인간 투탕카멘의 이야기는 130개가 넘는 이 지팡이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일찍 떠난 소년 왕의 비극투탕카멘이 살았던 시대는 지금으로부터 3300년 이전인 기원전 1341년에서 기원전 1323년. 세상을 떠날 때 그의 나이는 불과 18~19세였습니다. 이집트 유물관광부 장관을 지낸 권위 있는 이집트학자 자히 하와스는 투탕카멘이 단명한 이유를 ‘유전병 때문’으로 설명합니다.
이집트 왕가는 혈통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가족·친척끼리 결혼하는 근친혼을 선호했습니다. 근친혼이 반복되다 보면 유전병 발병 확률이 극도로 높아집니다. 투탕카멘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하와스의 미라 및 DNA 연구에 따르면 투탕카멘은 생전 유전 질환인 골괴사증과 내반족(발이 안쪽으로 굽는 기형)을 앓아 지팡이 없이는 제대로 걷기 힘든 몸이었다고 합니다. 무덤에 지팡이가 이렇게 많은 건 그 때문이었지요. 투탕카멘의 사망 원인 역시 다리 때문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허약한 다리뼈가 사고로 부러졌고, 여기에 질병 감염(말라리아 등)이 겹치면서 패혈증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는 게 하와스의 주장입니다.
살아있을 때도 투탕카멘은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투탕카멘은 선대 파라오인 아케나톤과 그의 친누이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입니다. 그런데 투탕카멘의 아버지인 이 아케나톤이라는 사람이 이집트 역사상 가장 특이한 사람 중 하나였습니다. 수천 년 동안 이집트의 신앙이었던 다신(多神)교를 폐지하고, 태양신 하나만을 믿도록 하는 일종의 ‘종교 개혁’을 시도했거든요. 이 밖에도 아케나톤은 수도를 옮기고 새로운 예술을 시도하는 등 여러 파격적인 일을 벌였습니다. 하지만 기득권은 물론 국민들도 이런 개혁을 싫어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죽은 뒤 ‘역적’ 취급을 받게 되었지요.
투탕카멘이 파라오에 즉위한 건 그가 열 살 무렵. 아무리 파라오라지만, 투탕카멘은 ‘역적’의 아들인데다 나이까지 어렸습니다. 그 탓에 정치적 입지가 최악이었습니다. 투탕카멘은 꼭두각시에 가까웠고, 힘센 신하들이 대신 국정을 주도했습니다. 신하들의 틈바구니에서 투탕카멘은 자신의 아버지를 부정하는 비석을 세워야 했습니다. “아버지의 시대, 신들은 이 땅을 버렸다. 나는 다시 이집트를 올바른 길로 이끌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안타까운 일이 많았습니다. 투탕카멘의 아내는 이복누나인 안케세나멘. 부부 사이는 꽤 좋았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하지만 투탕카멘과 아내의 사이에서 얻은 두 아이는 모두 사산됐습니다. 투탕카멘 부부는 두 아이를 모두 미라로 만들었다가 자신의 무덤에 함께 묻었습니다. 저승에서라도 함께 하려는 마음이었겠지요.
투탕카멘이 후사를 얻지 못하고 요절한 탓에 그의 사후 파라오의 자리는 결국 힘센 신하들에게 넘어갑니다. 투탕카멘의 아내인 안케세나멘은 생존하기 위해 옆 나라(히타이트) 왕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나의 남편이 죽었습니다. 우리 사이엔 아들이 없습니다. 저는 두렵습니다. 아들을 보내주십시오. 그는 저와 결혼해서 이집트의 파라오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히타이트의 왕자는 이집트로 넘어오다가 의문의 죽음을 맞게 됩니다(암살로 추정됩니다). 그 이후 안케세나멘은 역사책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학자들은 그녀가 아마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을 거라고 추측합니다.
여기까지가 하와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구성한 투탕카멘 이야기입니다. 물론 100% 확실한 사실은 아닙니다. 아무리 분석하고 연구해도 수천 년 전 이야기를 완벽하게 되살리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니까요. 여전히 학계에서는 투탕카멘의 사인 등 여러 사실을 놓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동의하는 확실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역적의 아들로 왕위에 올라 일찍 죽은 투탕카멘은, 이집트 역사 전체를 놓고 봤을 때 별 존재감 없는 파라오였다는 점입니다. 역설적으로 그 덕분에 투탕카멘은 오늘날의 명성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투탕카멘의 저주? 진실은일반적인 이집트 파라오들의 무덤은 도굴꾼들에게 깡그리 털린 지 오래입니다. 왕이 유명하고 무덤이 클수록 더 그렇습니다. 가장 큰 피라미드이자 파라오의 무덤인 ‘쿠푸 왕의 피라미드’는, 마지막 먼지 한 톨까지 전부 털렸습니다. 그래서 쿠푸 왕과 관련된 유물 중 현존하는 건 다른 무덤에서 나온 7cm 남짓한 조각상 하나가 전부입니다.
그런데 투탕카멘은 존재감이 없는 파라오였습니다. 그 사실이 투탕카멘의 무덤을 지켰습니다. 투탕카멘의 사후 얼마 안 돼 몇 번 도둑이 들긴 했지만, 반지나 장신구처럼 작고 값나가는 것만 조금 훔쳐 갔을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기적 같은 행운이 일어납니다. 후대 파라오(람세스 6세)의 무덤을 공사할 때, 여기서 나온 흙과 폐자재가 무덤 위에 쌓이면서 입구가 봉인된 겁니다. 덕분에 투탕카멘은 도굴꾼들의 기억 속에서도 잊힐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1922년, 영국 출신의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가 이끄는 발굴팀이 투탕카멘의 무덤을 발굴해냈습니다. 3000년의 침묵을 깨고 무덤을 열었을 때, 그곳에는 수천 년의 시간을 그대로 간직한 보물창고가 있었습니다.
다만 ‘투탕카멘의 저주’는 사실이 아닙니다. 소문과 달리 무덤에는 저주를 경고하는 문구가 아예 없었습니다(기사 첫 부분의 문구는 누군가가 그럴싸하게 지어낸 말이었습니다). 자금을 댔던 카나번 경이 얼마 안 돼 세상을 등진 건 맞지만 발굴 당시 이미 건강이 매우 안 좋은 상황이었고, 발굴 소식을 듣고 급하게 이집트로 가느라 건강이 악화됐습니다.
발굴 현장에서 일했던 사람 수를 합치면 1000명 이상. 이 중 대부분이 건강하게 오래 살았습니다. 무엇보다도 발굴의 주인공인 카터가 17년을 더 살다 64세의 나이에 눈을 감았습니다. 당시 평균 수명을 생각하면 천수를 누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투탕카멘의 저주는 전혀 근거 없는 가십거리에 불과하다는 얘깁니다. 영원한 안식, 지상 최대의 구경거리로그렇게 투탕카멘은 지상 최대의 구경거리가 되었습니다. 3000년 만에 깨어난 소년 왕은 이제 이집트 신화의 신이 아닌 ‘박물관의 신’이 되었습니다. 이집트 정부가 막대한 돈을 쏟아부어 만든 GEM은 그의 새로운 피라미드와도 같습니다. 이곳에 있는 수많은 화려한 유물들은 해외 관광객들의 감탄을 자아냅니다. 하지만 정작 그의 미라는 발굴 과정에서 심하게 훼손돼 아직 무덤 속에 홀로 남아 있습니다.
그의 무덤에 묻혀있던 수많은 유물은 거의 100년간 전 세계를 떠돌아다니며 많은 관객을 만났습니다. 부활과 영생을 꿈꾸며 묻혔던 파라오는 완전히 잊혔고, 덕분에 무덤은 살아남아 3000년 후 발견됐고, 다시 현대에 부활해 그의 데스 마스크는 이집트를 상징하는 얼굴이 되었습니다. 기묘한 아이러니입니다.
개인적으로 찬란한 황금빛 유물보다 눈여겨 본 것은 평범한 생활용품들이었습니다. 화려한 유물이나 '저승 필수품' 말고, 투탕카멘이 내세에서도 곁에 두고 싶었던 것들. 어린 시절 즐기던 게임(세네트)의 판과 말, 어릴 때 쓰던 의자, 자신을 예뻐했던 할머니를 추억하며 생전 소중하게 간직하던 할머니의 머리카락 같은 것들 말입니다. 그 유물들에서는 소년 투탕카멘의 평범함, 그리고 죽음을 앞둔 불안과 두려움, 슬픔이 읽혔습니다.
우리가 쓰던 물건도 언젠가 먼 훗날 발견되면 이런 유물 취급을 받게 될까요? 지금의 우리의 모든 행동과 말이,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는 전혀 다른 뜻으로 해석될 수 있는 걸까요?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변치 않을 듯합니다. 3000년 전 투탕카멘의 시대든, 지금 우리 시대든, 수천 년 후든, 인간이라는 종(種)이 계속되는 한, 사람 사는 건 어디나 비슷할 거란 사실입니다.
<i>이번 기사는 Joyce Tyldesley의 'Tutankhamun: Pharaoh, Icon, Enigma'(Headline 출판), Jo Marchant의 'The Shadow King: The Bizarre Afterlife of King Tut's Mummy'(Da Capo Press 출판), Zahi Hawass의 'Discovering Tutankhamun: From Howard Carter to DNA'(American University in Cairo Press 출판) 등을 참조해 작성했습니다.</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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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