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은 진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라 정보를 빠르게 전달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탈중앙화 신원인증 프로젝트 휴머니티(Humanity)는 19일(현지시간) 발표한 선언문을 통해 인터넷을 이같이 정의했다. 인터넷이 '정보 공유'에 최적화돼 허위 정보가 빠르게 확산되고 이용자의 신원이 악용되는 사례가 늘었다는 게 휴머니티의 진단이다.
인공지능(AI) 기술의 발전으로 인터넷의 구조적 결함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휴머니티는 "인터넷은 진실을 검증하기 위해 설계되지 않았고, AI 시대에 이런 결함은 구조적 문제가 됐다"며 "검증 가능한 신뢰 모델이 없다면 고객인증(KYC) 시스템이 무너지고 소셜 플랫폼은 AI 봇에 잠식될 것"이라고 짚었다.
휴머니티는 이같은 현상에 대해 "필연적인 결과"라고 강조했다. 휴머니티는 선언문을 통해 "(신뢰에) 필요한 인프라가 부재했기 때문"이라며 "현실 세계에서 신뢰는 매번 새롭게 협상되지 않고, 인터넷도 달라선 안 된다"고 밝혔다. "신원인증 새로운 표준될 것"휴머니티는 이날 자사의 무게중심을 기존 '인간성 증명(Proof of Humanity)' 모델에서 '신뢰 증명(Proof of Trust)' 모델로 전환했다. 신뢰 증명은 기관이 개인정보를 수집·저장하지 않고 이용자 정보를 검증하고 증명할 수 있도록 설계된 프레임워크다. 휴머니티는 "신뢰 증명은 기존 인간성 증명을 확장한 개념"이라며 "신뢰 증명을 활용하면 원본 데이터를 노출하지 않은 채 여러 서비스에서 한 번 검증된 결과를 재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휴머니티는 신뢰 증명이 AI 시대에 인터넷에서 신원을 입증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 표준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휴머니티는 "신뢰 증명을 통해 차세대 플랫폼과 애플리케이션(앱)은 현재 빅테크 기업보다 빠르고 저렴하게 정보를 검증할 수 있다"며 "(신뢰 증명은) 신원인증 분야 사용자경험(UX)의 새로운 글로벌 스탠다드를 제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신뢰 증명이 확산될 경우 데이터의 과도한 중앙화도 일부 해소될 전망이다. 휴머니티의 신뢰 증명은 데이터를 별도로 보관하지 않으면서 신뢰 검증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기존 신뢰 검증 방식은 신원 데이터를 저장하는 소수의 대형 플랫폼에 집중돼 이용자의 프라이버시를 보장한 신원인증은 사실상 어렵다는 게 휴머니티 측의 설명이다.
'데이터 탈중앙화' 강조휴머니티는 신뢰 증명의 가치도 '데이터 탈중앙화'를 통해 커진다는 입장이다. 휴머니티 관계자는 "현재 신원인증 시스템은 고객확인(KYC) 제공업체, 자격증명 저장소, 규제 준수 업체, 계정 데이터베이스(DB) 등에 분산돼 있다"며 "(반면) 신뢰 증명은 데이터가 아닌 데이터 검증을 통합해 기업은 비용이 많이 드는 데이터 관리 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신원인증 시스템의 탈중앙화는 중장기 목표다. 당초 휴머니티는 웹3 기술 확산에도 데이터는 물론 신뢰의 중앙집중화도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휴머니티가 자사를 '인터넷의 신뢰 레이어(Trust Layer of the Internet)'로 규정한 배경에도 이런 맥락이 있다. 회사 측은 "휴머니티는 개인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자신을 증명하는 일종의 '디지털 신분증'"이라며 "이를 통해 신뢰 검증을 위해 설계되지 않은 인터넷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했다.
테런스 곽(Terence Kwok) 휴머니티 설립자는 “AI가 인터넷을 기존 사람 중심 네트워크에서 사람과 에이전트가 공존하는 네트워크로 전환시키고 있다”며 “누가 실제 인물인지, 어떤 주장이 신뢰할 수 있는지 검증하는 능력은 결제·클라우드·사이버 보안 등에 준하는 핵심 인프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AI를 활용한 가짜 신원 등이 확산될수록 개인정보를 보호하면서 신뢰를 입증하는 시스템에 대한 수요는 수십억명의 이용자와 수조 달러 규모의 경제 활동 전반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자체 투자도 추진휴머니티는 탈중앙화 신원인증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AI가 기존 신원인증 시스템을 무너뜨리고 있지만 모든 디지털 거래에는 신뢰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또 신원인증 관련 사기를 방지하고 규제를 준수하기 위한 기존 시스템의 비효율성은 매년 수천억 달러 규모의 비용 부담을 발생시킨다는 게 회사 측의 진단이다.
적용 가능한 분야는 다양하다. 우선 기존 KYC 시스템, 금융권의 신원 기반 결제 서비스 등이 대표적이다. 실사용자 검증이 필요한 소셜 플랫폼, 사기 방지 기능을 추가하려는 인증 시스템 등에서도 해당 기능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티켓팅 분야에서도 활용 가능성이 있다. 휴머니티의 신뢰 증명 모델을 활용하면 자동화 프로그램을 활용한 티켓팅을 방지할 수 있어서다. 휴머니티가 최근 온체인 티켓팅·자격증명 플랫폼 ‘문게이트(Moongate)’를 인수한 것도 이 때문이다.
신뢰 증명을 채택한 기업에 투자하기 위해 자체 펀드 '휴머니티 인베스트먼트(Humanity Investments)'도 조성했다. 휴머니티는 "투자를 하는 건 보다 많은 기업이 신뢰 증명 모델을 채택할수록 표준으로서 가치가 커지기 때문"이라며 "(신뢰 증명의) 확산, 표준화, 네트워크 효과를 가속화하기 위해 투자를 하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한편 휴머니티는 기존 애플리케이션(앱)을 위한 개발자용 응용프로그램 인터페이스(API)도 공개했다. API는 블록체인에 대한 전문적 지식이 없어도 인증 절차, 접근 통제, 자격증명 워크플로우에 휴머니티 프로토콜의 신뢰 검증 기능을 통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한경닷컴 뉴스룸 o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