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 수험생 시절 기대한 대학 생활의 가장 큰 로망은 도서관이었다. 수십만 권(현재는 수백만 권)의 책에 파묻혀 4년을 보낼 생각에 가슴이 설렜다. ‘하버드대학의 공부벌레들’이라는 미국 드라마가 키운 환상도 한몫했다. 하지만 막상 입학 후 대학 도서관은 만남의 장소로 주로 이용했을 뿐, 그곳에서 책을 빌리거나 읽은 기억이 별로 없다. 지금이야 간편해졌지만 당시만 해도 도서 카드를 일일이 찾아내 대출 신청을 해야 했는데 늘 대부분이 ‘대출 중’이었다. 폐가식 도서관의 가장 큰 단점이다. 변명 같지만, 도서관과 멀어진 결정적인 이유다.
반면 열람실은 늘 만원이었다. 고정석을 차지하고 고시 공부를 하는 학생부터 전공 서적을 쌓아놓고 과제를 하는 학생까지. 다만 책을 읽는 공간이라기보다 독서실에 가까웠다. 가방을 던져놓고 온종일 ‘알박기’를 하는 얌체족이 적지 않아 빈자리를 찾기도 어려웠다. 당시 대학 도서관은 책을 읽으려는 학생에게 그리 친절한 공간은 아니었다. 하지만 바꿔 생각해 보면 예전 도서관은 어쨌거나 대학 생활의 중심이었다는 얘기도 된다. 자리 경쟁, 대출 경쟁이 항상 치열했던 것만 봐도 그렇다.
예전에 비해 친절해진 요즘 대학 도서관이지만 학생들이 찾는 발길은 오히려 줄어들었다는 소식이다. 서울대 재학생의 중앙도서관 방문 횟수 급감은 충격적이다. 2019년 135만 회에서 지난해 80만 회로 6년 새 40%나 줄었다. 같은 기간 도서 대출자 수는 아예 반토막이 났다. 인공지능(AI)이 지식을 간편식처럼 떠먹여 주는 시대에 긴 시간과 집중력을 투자해야 하는 독서는 비효율적인 일이 돼버려서일까. 전자책과 유튜브 등 도서관의 경쟁자가 늘고 독서실 기능조차 24시간 이용할 수 있는 스터디카페에 빼앗긴 영향도 클 것이다.
“대학 도서관은 독서실이 아니다”는 기치 아래 복합 교육·문화공간으로 변신을 꾀하는 대학이 적지 않은 듯하다. 어차피 방대한 장서만 자랑하는 ‘죽은 도서관’은 떠난 학생들의 발길을 되돌리지 못한다. 학생들이 다시 즐겨 찾고 책 읽는 즐거움까지 얻을 수 있는 공간으로 대학 도서관이 거듭나길 바란다.
김정태 논설위원 in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