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환 칼럼] PBR 분석이 말하는 증시의 진실

입력 2026-02-19 17:39
수정 2026-02-20 00:13
이번 설 명절, 밥상머리 대화의 풍경이 사뭇 달라졌다. 그동안 단골 메뉴이던 정치나 부동산 이야기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후끈 달아오른 국내 증시였다. 불과 1년여 전만 해도 2400선에서 고군분투하던 코스피지수가 전인미답의 5600 고지를 밟았으니 그럴 만도 하다. 1·2차 상법 개정 등 자본시장 선진화 정책의 결실이라며 자화자찬하는 여당의 모습도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하지만 숫자의 이면을 냉정히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경제학에는 특정 정책의 순수한 효과를 추정할 때 쓰이는 ‘이중차분법(DID)’이라는 잣대가 있다. 만약 한국 증시의 비상이 오롯이 정책의 산물이라면 우리 증시는 글로벌 시장을 압도하는 초과 수익을 올렸어야 한다.

각국 주가순자산비율(PBR) 추이는 다른 진실을 말한다. 2024년 말 0.9배이던 PBR이 코스피지수 5000을 넘어선 지난달 1.6배까지 오른 건 분명 고무적이다. 하지만 같은 기간 신흥국 평균 PBR 역시 1.8배에서 2.2배로 동반 상승했다. 여러 정책을 시행한 한국과 그렇지 않은 신흥국 간 격차가 0.9배에서 0.6배로 소폭 좁혀진 것이 그나마 위안일 뿐이다. 선진국 평균과의 격차(2.5배→2.4배)는 별 차이도 없었다. 결국 우리만의 특별한 요인이라기보다 ‘인공지능(AI) 시대 도래’라는 거대한 글로벌 조류에 몸을 실은 결과라는 뜻이다.

증시를 견인한 엔진의 정체는 더 명확하다. AI 반도체 관련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이 두 종목이 이 기간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 증가분의 약 60%를 차지했다. 정책이 내세운 ‘거버넌스 혁신’이 동력이었다면 지배구조 개선이나 소액주주 권리에 민감한 중소형주와 코스닥 종목이 더 뜨겁게 반응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실적 개선이 뚜렷한 반도체, 조선, 방위산업 등 수출 대형주가 지수를 이끌었다. 이는 ‘정책의 힘’이 아니라 명백한 ‘업황의 힘’이다.

정부·여당의 정책적 노력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기업 가치 제고(밸류업)를 위한 주주 환원 정책이 신흥국과의 PBR 격차를 다소나마 좁히는 계기였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문제는 이런 성과를 근거 삼아 기업 경영권을 위협하는 규제 도입에 속도를 낸다는 점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핵심으로 한 ‘3차 상법 개정안’을 거세게 밀어붙이고 있다. 최소한의 경영권 방어 수단은 보장해달라는 상장사들의 호소는 뒷전이다. 주무 부처인 법무부가 포이즌필(신주인수선택권), 차등의결권 같은 보완책 도입을 건의해도 요지부동이다. 오히려 한 여당 의원은 이런 요구에 대해 “다시 코스피지수 2500으로 가자는 거냐”며 질타한다. 여기에 ‘주가 누르기 방지법’이라는 정체불명의 법안까지 강행할 기세다. 오너가 상속세를 줄이려고 고의로 주가를 누른다는 극소수 사례를 전제로 징벌적 세금을 물리겠다는 발상이다.

정치권이 호황에는 정책 효과를 내세우고, 불황에는 대외 여건을 핑계 삼는 것은 동서고금의 익숙한 레퍼토리다. 1980년대 ‘3저 호황’을 치적이라고 홍보한 전두환 정권이나 1990년대 닷컴버블을 신경제의 승리로 자평한 빌 클린턴 미국 행정부도 그랬다. 지금의 여당 역시 증시 상승의 원인을 두고 주객을 전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코스피지수 5000시대는 정책보다는 AI라는 시대적 파도가 만들어낸 흐름 속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 경영권을 위협하는 강제적 자사주 소각이 지속 가능한 주가 상승을 담보할지 제반 여건을 다시 검토해봐야 한다. 기업 지배구조의 근간이 흔들린 상태에서 주가 하락기가 도래하면 우리는 ‘정책의 역습’이라는 대가를 치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