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음색은 물리학이 설계한 마법"

입력 2026-02-19 17:22
수정 2026-02-20 01:15

피아노는 88개 건반, 수천 개 부품으로 이뤄진 정교한 기계다. 하지만 이 ‘물건’이 예술가와 만나 감정을 전달하는 ‘악기’가 되려면 보이지 않는 손길이 필요하다. 세계적인 피아노 조율 명장 얀 키텔(50)은 최근 한국경제 아르떼와 만나 조율은 한마디로 ‘정리정돈하는 일’이라고 정의했다. 피아노를 기계적인 법칙에 맞춰 잘 정리하고(조정), 음정을 맞추고(조율), 음색을 정리해(정음) 악기를 최상의 상태로 만드는 과정이다.

전 세계 주요 공연장의 9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피아노는 스타인웨이 앤드 선스. 스타인웨이 음향연구원이자 조율사로 20년간 일한 키텔은 압도적인 시장 지배력의 원천이 ‘물리학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온다고 했다.

“스타인웨이는 1870년대 테오도르 스타인웨이와 전설적인 물리학자 헬름홀츠의 우정 덕분에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습니다. 설계의 핵심은 ‘에너지’입니다. 연주자의 머리에서 시작된 의지가 팔을 거쳐 운동 에너지로, 다시 소리로, 그리고 청중의 뇌로 전달되는 과정을 물리학적으로 완벽하게 설계한 것이죠.”

스타인웨이의 음색은 결국 ‘에너지’를 어떻게 발현시키느냐, 그 비밀을 알기 때문이라는 것. 다른 제조사들이 이상적인 음색에 파고들 때 스타인웨이는 물리 법칙을 기반으로 소리의 힘과 색채를 극대화했다는 설명이다.

평생 피아노 음색에 천착한 그는 소리에 대한 흥미로운 통찰을 내놨다. 소리를 듣는 행위는 매우 주관적이지만 동시에 지극히 객관적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귀로 듣는 게 아니라 뇌로 듣습니다. 뇌는 하나의 ‘필터’ 같아요. 문화적 배경과 경험이 쌓인 ‘의식적인 필터’는 주관적이죠. 하지만 아주 작은 부분을 차지합니다. 그보다 먼저 작동하는 것은 무의식의 필터입니다. 피아노 소리가 시작된 찰나의 순간, 뇌는 무의식적으로 그 소리의 질을 판단합니다.”

그는 아이들을 예로 들었다. 뇌에 경험의 필터(의식적인 필터)가 거의 없는 아이들은 좋은 피아노 소리를 들으면 즉각적으로 몰입하지만, 나쁜 소리에는 바로 흥미를 잃는다. 결국 좋은 소리를 설계하는 기술자는 무의식의 영역, 즉 객관적인 소리의 법칙에 도달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키텔이 추구하는 소리의 정점은 의외로 ‘중립적인 상태’다. 무색무취의 상태. 즉 피아노 자체의 개성이 약해야 음악의 색채를 더 잘 보여준다는 얘기다. 대신 피아노가 최대한의 색채와 다이내믹을 품을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게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조민선 기자 sw75j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