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는 클래식 음악뿐 아니라 대중음악에서도 널리 쓰이는 악기다. 다른 악기와 달리 비교적 쉽게 연주자가 원하는 선율을 만들 수 있어서다. EDM(전자 댄스 음악)을 만드는 프로듀서도 피아노로 멜로디를 짤 정도. 특히 재즈에선 피아니스트가 클래식 음악 영역과는 다른 독자적 입지를 인정받고 있다.
장르마다 선호하는 피아노의 연주법과 유형은 제각각이다. 클래식 음악에선 악보에 충실해야 하는 게 불문율이다. 섬세한 강약 조절로 고운 소리를 내곤 한다. 이 때문에 따뜻하고 깊은 음색을 내는 피아노를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현대 음악에선 건반을 타악기처럼 쓰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특히 드럼, 베이스와 협연하는 재즈에선 피아노가 다른 악기 소리에 묻히기 쉽다. 이 때문에 재즈 연주자는 건반의 마찰음을 살려 자신만의 독특한 톤을 드러내곤 한다.
이런 차이는 선호 브랜드에도 차이를 낳았다. 클래식 음악의 인기 브랜드는 스타인웨이다. 소리를 층층이 쌓아가며 풍부한 배음을 내기 좋은 피아노다. 재즈에선 야마하도 널리 쓰인다. 밴드와의 즉흥 연주가 많은 장르 특성상 또렷한 소리와 건반의 반응성이 중요한데 이 부분에서 평가가 좋다. 재즈 연주자는 클래식 음악 애호가가 듣기엔 금속성 소리가 강하게 느껴지는 피아노를 쓰기도 한다. 소리의 질감을 바꾸고자 일부러 조율을 살짝 엇나가게 하거나 먹먹한 소리를 내는 업라이트 피아노를 쓰는 경우도 있다.
클래식 음악과 재즈에서 피아니스트의 뇌 회로가 서로 다르다는 점을 밝혀낸 연구도 있다. 독일 막스플랑크 과학진흥협회 산하 인간 인지 및 뇌과학 연구소(CBS)에서는 피아니스트를 클래식 음악과 재즈에서 15명씩 모집해 실험한 결과를 2018년 공개했다. 소리가 나오지 않는 컴퓨터 화면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손가락을 보고 피실험자가 그 곡을 따라 연주하는 실험이었다. 화면 속 연주는 화성이나 운지법이 중간중간 잘못돼 피실험자는 민첩한 대응이 필요했다.
실험 결과 예상치 못한 화성이 나왔을 때 재빨리 적응해 연주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재즈 피아니스트가 평균 0.4초. 클래식 음악 피아니스트 평균인 0.6초보다 짧았다. 반면 운지법은 클래식 피아니스트가 더 정확했다. 재즈 피아니스트가 무엇을 연주할지에 빠르게 반응하는 편이었다면 클래식 음악 피아니스트는 어떻게 연주할지에 집중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재즈와 클래식 음악 모두에서 좋은 성과를 낸 피아니스트도 있다. 재즈 피아노의 전설로 남은 키스 재럿은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등을 녹음하며 클래식 음악에서도 명반을 남겼다. 다만 한 콘서트에서 두 장르를 동시에 소화하진 않았다. “두 시스템이 서로 다른 회로를 요구한다”고 봐서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연주로 유명한 프리드리히 굴다도 생전 재즈를 즐겨 쳤다. 현역 연주자 중에선 다음달 20일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공연하는 일본의 우에하라 히로미가 클래식 음악, 재즈, 록, 팝 등 장르의 경계를 넘어서는 연주로 유명하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