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미투자펀드의 1호 투자처를 확정한 일본이 미국으로부터 ‘만만치 않은 청구서’를 받았음이 확실해지고 있다. 미국에 짓기로 한 333억달러 규모의 LNG 발전소 부지는 냉전시절 활용된 우라늄 농축 시설이 있던 자리로 방사능을 제거하는 ‘제염’이 끝나지 않았음이 확인되면서다. 한국이 요구받는 1호 대미 투자 프로젝트도 이런 난도 높은 사업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LNG발전소 부지는 핵농축 시설 부지 19일 미 상무부가 18일(현지시간) 발표한 팩트시트(보도자료)에 따르면 일본이 정한 1호 대미투자 초대 포츠머스 파워드 랜드 프로젝트다. 소프트뱅크 자회사가 333억달러를 들여 AI데이터센터용 LNG 발전소를 짓기로 했다.
미국 지역언론 등의 보도를 종합하면 이곳은 포츠머스 가스 확산 공장(Portsmouth Gaseous Diffusion Plant)으로 불린다. 오하이오주 파이크 카운티의 파이키턴(Piketon) 마을 인근으로 1953년부터 2001년까지 미국의 우라늄 농축 시설이 있던 곳이다. 우라늄 농축 기술 중 하나인 기체확산법을 이용해 원자력 연료인 농축 우라늄을 만드는 시설이다.
우라늄 농축 시설은 가동에 엄청난 전력이 필요하다. 부지 주변에 미국 최대 규모의 송전망이 구축돼있고, 변전소도 있다. 이 전력망이 일본 소프트뱅크가 9.2GW(기가와트) 규모의 LNG 발전소를 짓겠다고 제시한 배경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이 곳이 미 에너지부(DOE)와 환경관리국(EM)이 제염 및 해체(D&D)를 진행중인 곳이라는 점이다. 일본의 투자는 이 장소를 재개발해 AI 시대를 위한 전력 거점으로 바꾸는 거대 프로젝트인 것으로 보인다.
미 당국이 2001년 이후 20년 넘게 자금과 인력을 투입해 제염작업을 벌였지만, 아직 제염 정도가 낮다는 게 중론이다. 가디언은 작년말 “가족들이 죽어가고 있다: 오하이오주의 마을이 방사능 낙진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해당시설 인근 학교에서 우라늄 등이 발견돼 학교가 폐쇄되고, 암에 걸린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보도했다.
DOE와 EM는 작년 말 이 지역에 대한 대대적인 시설 해체와 제염 일정을 공개했다. 아직 일본의 자세한 반응은 없지만, ‘미국 우라늄 농축 공장의 제염 부담을 일본이 지게됐다’는 비판이 따라나올 것으로 보인다.
텍사스 원유설비, 인공 다이아몬드 '첩첩산중'또다른 일본의 투자처인 텍사스 원유설비(21억달러), 조지아 인공 다이아몬드 설비(6억달러) 프로젝트도 불확하긴 마찬가지다. 미국 포천은 텍사스 프로젝트에 대해 “전 세계적인 에너지 전환 흐름과 중국의 경기 둔화로 장기적인 원유 수요 성장이 불투명하다”고 짚었다. 미 에너지 정보청(EIA)과 IEA가 2026년 원유 수요 전망을 하향 조정한 가운데, 거대 수출 터미널이 자칫 ‘공급 과잉’을 부추기는 시설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 것이다.
현재 미국 내에서 초대형 유조선(VLCC)에 원유를 가득 채울 수 있는 곳은 루이지애나 오프쇼어 오일 포트(LOOP)가 유일한 것으로 알려진다. 다른 항구들은 수심이 얕아 작은 배로 원유를 실어 나르는 ‘라이터링’을 거쳐야 하는데 비용이 많이 들고 위험하다는 점이 불안 요인이다. 텍사스 사업 발주처인 미국 걸프링크는 심해에 부유식 터미널을 지어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만, 현지 환경 단체들이 해양 생태계 파괴와 기름 유출 위험을 이유로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는 점이 변수다.
조지아주에 건설될 약 6억 달러 규모의 인공 다이아몬드 공장은 일본이 돈을 대고, 세계 최대 다이아몬드 기업 드비어스의 자회사인 엘리먼트 식스가 운영하는 형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연마재와 반도체 웨이퍼용으로 활용되는 인공 다이아몬드의 중국 의존도를 낮추겠다는 의도다.
문제는 생산된 다이아몬드의 가격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인공 다이아몬드를 만드는 고압·고온 공정은 막대한 전력을 소비해 중국산에 비해 경제성이 떨어진다. 업계에선 해당 공장에 대해 미·일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하거나, 일본 기업들이 '의무 구매 확약'을 해주지 않고선 독자 생존이 어렵다는 회의론이 나온다. 허정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 원유 수출설비, 다이아몬드 사업도 투자한 기업들의 수익 발생 하는 메커니즘이 아직까진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한국도 고난도 사업 요구받을 듯이런 일본 1호 투자처의 상업적 합리성을 감안할 때 한국도 미국 입장에서 '직접 자금 투입은 지지부진하고, 미국의 경제·안보적엔 도움이 되는' 고난도 프로젝트를 요구받을 것으로 보인다. 사업성 대신 경제안보·공급망 중심으로 짜여질 가능성이 높고, 이렇게 되면 경제성은 떨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부도 대미투자 1호 프로젝트 사업 선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박정성 산업통상부 통상차관보를 비롯한 대미 협상 실무팀을 전날 밤 미국으로 급파했다. 미 상무부 관계자와 만나 대미 투자 프로젝트 후보군, 상업적 타당성, 이행 절차 등을 협의할 예정이다. 다음달 초로 예상되는 ‘대미투자특별법’ 국회 통과 이후 즉각적인 사업 착수에 대비한 사전 조율 차원이다. 현재 한국의 1호 대미투자로는 전력망·가스·석유·핵심광물 등 에너지·자원 인프라 분야가 될 가능성이 유력하다. 일본에 이어 한국까지 같은 프로젝트에 돈을 넣게 하는 ‘한·일 병행 투입’ 구도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한 통상 전문가는 “일본이 1호 프로젝트로 300억달러 이상 규모를 약속했기에, 한국 역시 200억달러 안팎의 초기 집행 압박을 받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본처럼 전력·가스 등 에너지 인프라 투자를 약속하는 건 장기 기반시설 투자 성격이 강해 오히려 부담이 덜하고, 한국의 강점인 조선·방산 산업의 투자를 요구받는 게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이때엔 국내 공장 일감 유출로 인한 산업 공동화를 걱정해야 해서다.
김대훈/하지은 기자 daep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