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기간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한 K-POP 공연을 계기로 한국과 동남아시아 누리꾼 간 갈등이 온라인상에서 급속히 확산하고 있다.
공연장 내 관람 매너를 둘러싼 논쟁으로 시작된 일이 외모·식문화 비하와 인종차별적 표현, 나아가 역사 문제까지 번지며 '한국 대 동남아' 구도의 집단적 감정싸움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성형·외모 비하 난무…자극적 표현 쏟아져
19일 기준 스레드와 틱톡 등에서는 'Korea vs Asian', 'SEAblings(동남아+형제자매의 합성어)' 등의 검색어가 급부상했다. 일부 영상에는 "한국인들이 다른 아시아 국가에 인종차별을 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한국인들은 동남아인에 대한 차별이 심하다"는 주장과 함께 한국인을 일반화하는 댓글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인 틱톡커 계정에 조롱성 댓글이 달리는 사례도 확인된다.
갈등은 점차 집단적 연대로 확장되는 분위기다. 동남아 누리꾼들은 'SEAblings' 해시태그를 내걸고 게시물을 공유하며 연대 움직임을 보인다. 말레이시아,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여러 국가 이용자들이 가세하면서 일종의 집단적 '디스전' 구도가 형성됐다. 일부 게시물에는 한국 드라마 보이콧이나 한국 기업 제품 불매를 주장하는 내용도 담겼다.
이에 일부 한국 누리꾼들은 "동남아 국가들의 생활 수준은 1980년대 수준"이라거나 "주거 환경이 수용소 같다"는 식으로 경제 수준(GDP)을 거론하며 맞대응했다.
동남아 누리꾼들 역시 "한국은 닭장 같은 아파트에 산다", "동남아는 전원주택에 사는 여유가 있다", "한국은 성형 괴물이 가득한 나라" 등 과격한 표현으로 맞불을 놨다. 양측의 자극적인 게시물이 쏟아지며 비난 수위는 점차 높아졌다.
일부 동남아 이용자들은 "자연 쌍꺼풀이 있어 성형이 필요 없다"며 자신의 사진을 게시하기도 했고, 이에 한국 누리꾼들이 "전혀 부럽지 않다"는 댓글을 다는 등 감정적 대응이 이어졌다.
논쟁은 외모와 문화 비하를 넘어 역사·국가 위상 문제로까지 번졌다. 일부 동남아 누리꾼들은 "한국은 동남아 국가 덕분에 가난에서 벗어났다"는 식의 주장을 펼쳤고, 한국인 위안부 피해자 사진, 독립운동가 사진을 무단 게시하며 조롱성 표현을 사용하는 사례까지 등장해 국내에서 공분을 샀다.◇'원숭이 이미지'까지 등장…상호 혐오 확산
논란의 발단은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한국 보이밴드 콘서트 현장이었다. 공연장에서 한 한국인 팬, 이른바 '홈마'가 반입이 금지된 전문 촬영 장비(대포 카메라)로 무단 촬영을 하다 적발됐고, 이를 두고 현지 팬들이 관람 매너를 지적하면서 온라인상 공방이 시작됐다.
이후 일부 현지 팬이 해당 한국인 팬의 얼굴을 몰래 촬영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유포했고, 이를 토대로 외모를 조롱하는 게시물이 확산하면서 갈등은 한층 격화됐다.
이를 본 일부 한국 누리꾼들이 말레이시아를 비롯한 동남아 팬들을 향해 인종차별적 비난을 쏟아내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했다. 원숭이·침팬지 이미지를 게시하며 동남아 여성을 겨냥한 게시물이 올라오는가 하면, 동남아 누리꾼들도 외모와 신체적 특징을 겨냥한 자극적 표현으로 맞대응했다. 상호 비하가 이어지며 감정싸움은 사실상 전면전 양상으로 번졌다.
이번 논란은 동남아 현지 언론은 물론 인도와 영국 등 해외 매체들까지 잇따라 보도하며 국제적 이슈로 확산하는 양상이다.
말레이시아 언론 New Straits Times는 17일(현지시간) "쿠알라룸푸르 공연 이후 갈등이 동남아시아와 한국 누리꾼 간 전면적 온라인 충돌로 번졌다"고 전했다.
공연장 내 '팬 사이트 마스터'의 대형 카메라 반입을 둘러싼 관람 매너 논란이 발단됐으며, 이후 일부 한국 온라인 이용자들이 외모와 경제 수준을 겨냥한 조롱성 발언을 하면서 논쟁이 문화·경제적 우월성 문제로 확대됐다고 설명했다.
인도 매체 Outlook Respawn은 이를 단순 팬덤 충돌이 아닌 인종과 팬덤 권력, K-팝의 글로벌 책임 문제로 해석하며, 현지 팬들이 더 이상 단순 소비자가 아닌 '능동적 이해관계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영국 IBTimes UK 역시 이번 사태를 "카메라 하나로 시작된 온라인 전쟁"이라고 표현하며, 동남아 누리꾼들이 'SEAblings'라는 이름으로 연대해 맞대응하고 있다고 보도했다.◇동남아 여행 커뮤니티 번진 '혐한' 우려
이 같은 갈등이 확산되자 한국 여행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불안감이 번지고 있다. 최근 여러 게시판에는 "요즘 SNS를 보면 동남아에서 혐한 분위기가 심한 것 같은데, 현지 분위기는 어떤가"라는 취지의 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일부 이용자들은 "현재 SNS상에서 말레이시아, 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여러 국가에서 한국을 비난하는 게시물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중국 누리꾼들까지 가세해 김치·한복 기원 논쟁, 개고기 문제, 성형수술 과장 표현 등을 언급하며 여론몰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가짜 한국인으로 행세하며 갈등을 부추기는 계정도 보인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특히 일부 글에서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반한 감정이 확산하는 것 아니냐", "말레이시아를 방문할 계획이 있다면 이런 분위기를 염두에 두고 주의하는 것이 좋겠다"는 조심스러운 조언도 덧붙였다. "행여 다툼에 휘말리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는 경고성 댓글도 이어졌다.
다만 다른 이용자들은 "온라인상 과격한 게시물이 곧 현지 사회 전반의 분위기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SNS 알고리즘 특성상 자극적인 콘텐츠가 더 많이 노출되는 경향이 있다"며 신중론을 제기했다. 실제 현지 분위기와 온라인 여론 사이에는 간극이 존재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전문가 "작은 갈등이 알고리즘 통해 국가·인종 갈등으로 비화"
전문가들은 이번 사안을 단순한 팬덤 충돌을 넘어, K-팝을 둘러싼 누적된 경쟁의식과 온라인 공간에서 형성된 문화적 우월감·열등감 서사가 결합한 사례로 보고 있다. 개인 간 분쟁이 알고리즘을 통해 빠르게 증폭되며 국가·인종 갈등으로 비화하는, 이른바 '디지털 여론 외교'의 전형적 양상이라는 분석이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최근 국가 간 교류와 이동이 활발해졌지만, 무엇보다 온라인을 통한 교류가 크게 확대됐다. 정부가 아무리 노력해도 민간 교류를 통해 형성되는 국가 이미지를 완전히 통제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것이 공공외교의 현실"이라며 "K-pop과 한류는 한국의 국가 이미지를 제고하는 데 크게 기여해왔는데 뜻하지 않은 갈등이 발생할 경우, 일부 팬들의 상대 문화에 대한 존중 부족이 그동안 쌓아온 국가 브랜드를 훼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한류 팬뿐 아니라 일반 시민 역시 ‘나 하나의 행동이 국가 이미지를 만든다’는 책임 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며 "동남아 국가들은 한국 문화를 선망하는 동시에 일부 한국인으로부터 무시당했다는 인식을 공유하는 측면도 있다. 그 공통된 감정이 이번 사안에서 연대의 계기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는데 상호 존중이 갈등 완화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문화적 영향력을 선도하는 한국과 인접 국가들 사이에서, 문화적 공통분모가 큰 국가들이 하나로 묶이며 일대다 구도의 온라인 갈등 양상이 나타난 측면이 있다"며 "한중일 관계와 비교하면 동남아 국가들과는 문화적 공감대가 더 크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러한 갈등에도 K-pop이 여전히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요소가 큰 만큼 이를 외교적 마찰이나 구조적 갈등으로 확대하여 해석할 필요는 없다"며 “한국의 국가적 위상이 높아지면서 일부 국가들 사이에서 질투와 경쟁 심리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측면도 있다"고 덧붙였다.
유지희 한경닷컴 기자 keep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