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가 한창인 지난 16일. 서울 성수동에 있는 1090㎡(약 330평) 규모의 하고하우스 매장 곳곳에서 일본어, 중국어, 베트남어가 들려왔다. 해외에서 인기있는 K패션 마뗑킴과 트리밍버드를 입어본 뒤 '인증샷'을 찍는 방문객들도 눈에 띄었다.
바로 그 옆에는 또 다른 패션·뷰티업체 큐앤드비인터내셔날이 운영하는 초대형 뷰티 아울렛 '오프뷰티' 매장이 있었다. 방문객들이 들고 다니는 보라색 쇼핑백에는 500원짜리 마스크팩, 3000원짜리 건강기능식품 등 다이소만큼 저렴한 제품이 가득 담겨있었다.
하고하우스와 큐앤드비인터내셔날의 공통점은 자산 3조원 규모의 대명화학의 계열사라는 점이다. 패션, 뷰티, 물류 등을 아우르는 대명화학이 본격적으로 오프라인 소비자 간(B2C) 공간에서 계열사 간 시너지 실험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방문객 80%가 외국인
18일 업계에 따르면 대명화학은 광장시장, 성수동 등 관광 명소에서 계열사 매장을 집결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대명화학이 지분 50% 이상을 보유한 큐앤드비인터내셔날이 2024년 처음으로 광장시장에 초저가 뷰티 아울렛 '오프뷰티' 매장을 낸 게 시작이다. 오프뷰티는 다이소처럼 최대 90% 할인된 저렴한 가격을 앞세워 별다른 마케팅 없이도 방문객을 끌어모았다. 이후 코닥어패럴(운영사 하이라이트브랜즈), 마뗑킴(하고하우스), 마리떼프랑소와저버(레이어) 등이 줄줄이 인근에 입점했다.
광장시장에서 '집결 효과'를 톡톡히 보자, 대명화학은 성수동으로 눈을 돌렸다. 무신사 성수 대림창고, 올리브영N 성수 등 외국인 대표 쇼핑명소가 모인 곳에서 승부를 보겠다는 것이다. 지난달 하고하우스와 큐앤드비인터내셔날은 성수동 구두 테마공원 뒷편의 성수동 2가(연무장3길)에 나란히 매장을 냈다. 현재까지 성적은 양호하다. 전체 방문객의 70~80%가 외국인일 만큼 타깃층이 확실한 매장으로 거듭나고 있다.초저가 뷰티도, 인기 K패션도 보유
이같은 전략이 가능한 건 대명화학이 수많은 브랜드를 거느린 덕분이다. 회계사 출신인 권오일 회장은 2000년대 창업투자회사 KIG를 인수한 후, 의류·화장품·택배·항공 등 다양한 회사를 인수합병(M&A)하기 시작했다. M&A에는 적극적이지만 좀처럼 공개석상에 등장하지 않는 탓에 '얼굴 없는 큰손'이란 별명도 얻었다.
2024년 말 기준 대명화학이 사업보고서에 명시한 종속 기업은 45개에 달한다. 이들이 거느린 브랜드를 합치면 200개가 넘는다.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중소 브랜드 육성에도 적극적이다. 대명화학 산하 K패션 투자사 하고하우스와 레시피그룹이 마뗑킴, 세터 등 인디 브랜드를 매출 1000억원대 이상으로 키운 게 대표적이다. 지난해엔 큐앤드비인터내셔날이 오프뷰티를 출시한 데 이어, 화장품 브랜드 인수도 검토하는 등 뷰티 시장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외국인 관광객이 핵심 소비층이 된 만큼 대명화학이 패션과 뷰티라는 두 축을 앞세워 시너지를 본격화하겠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