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 소리나는 냉장고·세탁기, 고장은 AI가 진단…미국은 가전 명품 경쟁중

입력 2026-02-18 10:39
수정 2026-02-18 13:17

17일(현지시간) 미국 올랜도에서 열린 북미 최대 주방·욕실 박람회 ‘KBIS(The Kitchen & Bath Industry Show) 2026’의 전시장. 중앙 출입구를 들어서자 눈앞을 LG가 점령했다. 머리 위 거대한 LG 로고 뒤로 프리미엄 브랜드인 ‘LG 시그니처’, 최상위 럭셔리 브랜드 ‘SKS’까지 LG전자의 가전 브랜드 라인업 세 개가 한 프레임 안에 나란히 펼쳐졌다. 전 세계 가전·가구·인테리어 기업 650여 곳의 전시를 보러 이곳을 찾은 수만 명 관람객의 발걸음이 통과의례처럼 그곳으로 향했다. 북미 가전 시장 1위 기업의 존재감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 가전도 럭셔리는 더 인기
KBIS는 주방과 욕실을 넘어 미국 주거 공간의 핵심 트렌드를 제시하는 연례 행사다. 62회째를 맞은 올해는 프리미엄 가전의 가구화·개인화가 대세였다. LG전자는 이번 전시에서 ‘SKS 런드리 솔루션’을 처음 공개했다. 그동안 주방 가전에 집중됐던 SKS의 초고가 제품군을 세탁 가전으로 넓힌 것이다. SKS는 제품군과 규모에 따라 전체 주방에 설치하는 비용이 억 대에 이르는데도 성장률이 LG전자 브랜드 중 가장 높다고 한다.



LG전자는 2016년 최상위 주방 가전 브랜드로 출범한 ‘시그니처 키친 스위트’를 지난해 SKS로 바꾸고 초프리미엄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북미 빌트인 시장은 물론 가파르게 성장하는 럭셔리 가전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서다. 북미주방욕실협회(NKBA)에 따르면 올해 초고가 가전 시장은 보급형 제품군(3.6%)보다 높은 4.5~6.1% 성장이 예상된다.


올해로 10주년을 맞은 LG 시그니처도 이 시장을 겨냥해 주방가전 제품군을 기존 6개에서 10개로 늘렸다. 또 세 가지 디자인 컬렉션을 새로 도입해 선택지를 대폭 넓혔다. 소비자가 가전의 색상과 소재를 직접 선택할 수 있게 하거나(‘테일러드’) 마치 빌트인처럼 다른 가구와 매끄럽게 밀착되도록(‘심리스’) 한 디자인이 특히 인기였다. 가전이 벽면이나 가구와 완벽히 어우러지길 원하는 소비자의 선호를 반영했다.


삼성전자는 럭셔리 빌트인 가전 브랜드 ‘데이코’를 전면에 내세웠다. 안토니 가우디의 타일에서 영감을 받은 듯한 곡선형 벽을 누르자 숨겨져 있던 냉장고가 나타났다. 데이코의 디자이너는 “가전을 가구처럼 보이게 하는 것을 넘어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미국 프리미엄 주방 가전 회사인 지라인과 블루스타도 수십 가지 색상과 마감 기술을 선보이며 인테리어와의 조화를 강조했다. ◇ 더 진화한 AI 스마트 홈
최고 화두는 인공지능(AI) 기반의 ‘스마트 홈’이었다. 한층 고도화된 AI로 가정 내 사용 패턴을 학습해 일상 속 경험은 물론 가전 효율과 수명까지 향상시켜주는 기술이다. 삼성전자는 구글의 생성형 AI 제미나이를 결합한 비스포크 AI 가전을 전시했다. ‘비스포크 AI 패밀리허브’ 냉장고는 AI가 거의 모든 식재료를 제한 없이 인식해 실시간 입출고를 기록하는 게 가능해졌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가전에 AI 에이전트가 탑재된 첫 사례”라고 말했다.
LG전자의 ‘LG 시그니처 냉장고’는 각 가정의 사용 패턴을 AI가 학습해 컴프레서(압축기)를 정밀 제어하는 기술로 눈길을 끌었다. 냉장고 사용이 잦은 시간이 되면 그 전에 내부 온도를 더 낮춰 냉기를 보존하는 식이다. 이를 통해 전력 효율도 높일 수 있다.
미국 고급 욕실 브랜드 콜러는 AI가 평소와 다른 물 사용을 감지하면 미세 누수로 판단하고 즉시 차단해 사용자에게 알림을 보내는 솔루션을 공개했다. ◇ B2B 겨냥 ‘AI 관리 솔루션’ 전면에
이런 AI 기반 관리 솔루션은 기업 간 거래(B2B) 시장에서도 핵심 무기로 부상했다. 건축업자(빌더)와 건물 관리업자들에게 자산 가치를 보호하고 사후 관리 비용을 절감해줄 기술로 어필하고 있어서다.
고금리와 자재·인건비 상승 등으로 주택 건설 시장이 침체된 미국에서 빌더들은 운영 효율성을 높여줄 스마트 가전 패키지에 점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중서부에서 80여 가전 브랜드를 유통하는 커스텀디스트리뷰터의 대린 리먼 회장은 “가전이 고장났을 때 사람을 보낼 필요 없이 AI가 자동 진단해주는 기술이 나온다면 도입할 것”이라며 “사후 서비스 비용을 크게 아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LG전자는 이런 수요를 겨냥해 B2B용 관리 솔루션 ‘LG 씽큐 프로(ThinQ Pro)’를 처음 공개했다. 대단지 아파트나 임대주택에 설치된 수천 대의 가전 상태를 하나의 화면에서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는 것은 물론 세탁기 누수, 건조기 필터 막힘 같은 문제를 AI가 사전에 파악하고 원격 관리도 지원한다. 미국에서 올 3월 정식 출시 예정이다.

북미 전체 가전 시장의 20%를 차지하는 B2B 부문은 오랫동안 GE와 월풀이 과점해왔다. 건축업자를 통해 대규모 주택의 빌트인으로 들어가는 비중이 큰 만큼 업력이 길고 빌더 네트워크가 강한 미국 회사들이 유리했다. 2년 전 이 시장에 출사표를 내고 급성장을 해온 LG전자는 폭 넓은 제품군에 이어 AI 솔루션까지 차별점으로 내걸었다. 백승태 LG전자 HS사업본부장(부사장)은 “AI로 진화한 가전으로 북미 소비자에게 한층 품격 높은 사용 경험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올랜도=빈난새 특파원 binthe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