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을 앞두고 KTX 승차권을 노린 매크로 프로그램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인공지능(AI) 에이전트까지 동원한 자동 예매 프로그램이 버젓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공유되면서 예매 질서를 더 혼탁하게 하고 있다. 관련 피해가 늘고 있지만 처벌로 이어지기 쉽지 않아 실효성 있는 대응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AI 비서 맡겨 KTX 예매 ‘뚝딱’
13일 한국철도공사(코레일)에 따르면 코레일의 탐지 솔루션을 통한 매크로 차단 건수는 지난달 27만9327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월평균(26만5315건) 대비 5.3% 증가한 수치다. 지난해 7월 도입한 탐지 솔루션의 적발 실적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10월 15만1507건, 11월 7만2103건에 머문 차단 건수는 연말 여행 수요와 겹치며 12월 27만7004건으로 급증했다.
매크로 프로그램 적발이 늘어난 것은 생성형 AI 등장에 이어 AI 에이전트까지 확산하면서 예매 자동화 코드를 손쉽게 제작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매크로는 사용자의 개입 없이 반복 작업을 수행하는 프로그램이다. 과거에는 웹 구조를 분석해 코드를 직접 작성하거나 타인이 제작한 프로그램을 내려받아 활용해야 했으나 이제는 AI 에이전트에 예매 방식과 조건을 입력하면 접속·조회까지 알아서 수행하는 구조로 발전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AI 에이전트를 활용해 코레일 예매 구조를 분석하고 자동 로그인과 잔여 승차권 조회 기능을 구현하는 방법이 공유되고 있다.
지난 5일 개발자 커뮤니티 깃허브에는 ‘코레일 함락기’라는 제목의 게시글이 올라왔다. AI 에이전트 ‘오픈클로우’를 활용해 매진 KTX 노선의 취소표 발생 여부를 5분 단위로 감지해 알림을 보내는 ‘KTX 자동 예매 봇’ 제작 과정을 소개한 글이었다. 이 게시글 작성자는 “2월 6일 오후 5~7시 부산에서 서울로 향하는 기차표를 감시한 결과 4분 만에 예약하는 데 성공했다”고 적었다. ◇수천만 번 반복 행위 때 처벌‘예매 대란’을 틈탄 위법·탈법 행위가 성행하고 있지만 이를 제어할 제도적 장치는 미흡한 상황이다. 예매 경쟁이 과열되자 취소 승차권을 대신 확보해주고 건당 1000원의 수수료를 받는 이른바 ‘예매 대행’ 플랫폼까지 등장했다. 이들은 ‘평균 10분 내 확보’, ‘성공률 95%’를 내걸고 사업하고 있다.
문제는 매크로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행위 자체만으로는 처벌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철도사업법은 구입 가격을 초과한 금액으로 승차권을 타인에게 판매·알선하는 행위를 금지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매크로 행위를 금지하는 별도 규정은 없다. 이에 따라 수사기관은 기차표 예매 과정에서 매크로 프로그램을 활용한 행위에 형법상 업무방해죄를 적용한다.
하지만 법리상 실제 처벌까지 이어지기에는 입증이 까다롭다. 단순 반복 조회를 넘어 서버에 상당한 장애를 초래한 점이 증명돼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매크로 프로그램 활용을 통한 대규모 반복 조회 행위가 수반돼야 수사로 이어졌다. 매크로 프로그램으로 수서고속철도(SRT) 승차권을 예매해 지난해 9월 검찰에 송치된 일당은 6400만 회에 달하는 자동 접속, 구매 시도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법조계 관계자는 “형법상 업무방해죄가 성립되려면 실제로 업무를 방해했다는 점이 입증돼야 한다”며 “관리자의 정상적인 운영 업무를 저해할 정도의 결과가 발생해야 하는 만큼 관련 법을 정비해야 처벌이 수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류병화 기자 hwahw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