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코스피 5000 시대를 맞아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는 상법 개정안과 이른바 주가누르기방지법(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다.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면 대주주의 사익 편취를 막을 수 있고, 유통주식 수를 줄여 배당과 비슷한 주주환원 효과가 발생해 주주가치가 상승하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이를 의무화하면 자사주의 재무적 활용 가능성을 차단하는 등 기업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산업구조 재편이나 구조조정 과정에서 기업의 전략적 대응이 위축될 수 있다. 또한 별다른 경영권 방어 수단이 없는 상황에서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면 경영권 분쟁 시 산업자본이 손쉽게 사모펀드와 같은 금융자본의 먹잇감이 될 우려도 있다. 이 같은 사태의 폐해는 이미 여러 기업의 사례가 충분히 보여준 바 있다.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는 것은 글로벌 스탠더드와도 맞지 않는다. 미국과 독일, 영국, 일본 등 선진국은 자사주의 취득과 소각을 기업 재량에 맡기고 경영권을 보호할 수 있는 여러 제도적 장치를 갖추고 있다.
다행인 것은 대법원과 법무부가 자사주 소각 2년 유예, 기존 주주가 시가보다 저렴하게 지분을 매입할 수 있는 ‘포이즌 필(poison pill)’이나 지배주주에게 한 주당 의결권을 더 많이 주는 차등의결권 같은 경영권 방어수단의 도입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혔다는 점이다.
주가누르기방지법은 문제가 더 심각하다. 이 법안은 주가순자산비율(PBR) 0.8배 미만 상장사에 대해서는 상속·증여 시 시장가격이 아니라 비상장회사 평가 방식으로 과세하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일부 기업의 지배주주가 상속·증여를 앞두고 주가를 의도적으로 낮춰 세 부담을 줄이는 관행을 바로잡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PBR이 낮다는 이유만으로 의도적 저평가나 주가 누르기가 있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 산업 전망이 불투명하거나 설비자산 비중이 높은 이른바 장치산업은 구조적으로 PBR이 낮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주주가 없는 기업도 PBR이 낮은 사례가 많다.
주가를 인위적으로 누르는 행위가 있다면 그 자체를 엄하게 처벌하면 족하다. 의도적인 주가조작 방지라는 명분 아래 글로벌 스탠더드인 시가 평가 원칙을 훼손하는 것이 타당한지는 차치하더라도, 조세정의 실현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돼야 할 상속세 및 증여세 개편을 증시 부양 정책으로 사용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가뜩이나 상속세 세율이 높은 우리나라에서 주가누르기방지법이 현실화될 경우 PBR이 낮은 기업의 상속 과정에서 대주주가 경영권을 상실할 위험이 있고, 주가가 낮을수록 오히려 세금이 과도하게 부풀려지는 등 기업가치 왜곡 현상도 나타날 수 있다.
자사주를 소각하고 상속·증여 시 PBR이 낮은 기업의 주가를 시장가격보다 높게 평가한다고 해서 기업의 경쟁력이나 본질 가치가 제고되는 것은 아니다. 기업이 경쟁력을 확보하여 지속적으로 이익을 창출하면 주가는 자연스럽게 상승한다. 정부의 정책 목표는 주가 부양 그 자체가 아니라 불필요한 규제를 철폐하고 과감한 지원을 통해 기업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어야 한다. 주주가치 환원은 필요하지만 장기적으로 기업경쟁력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만 정당화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