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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춘제(중국 음력 설)에 중국의 로봇 굴기가 다시 한번 세계 무대에 과시될 전망이다. 중국의 대표 로봇 기업들이 일제히 춘제 갈라쇼(특집 공연)에 참여해 단체 군무, 만담·콩트를 선보일 예정이라서다.
지난해 잇따른 행사를 통해 춤추고 공중제비를 도는 로봇을 충분히 공개한만큼 올해 춘제 갈라쇼에선 더 고도화된 동작과 기술, 일상 적응력에 초점을 맞출 것이란 관측이 많다. 중국 정부는 올해 춘제 갈라쇼를 단순한 볼거리가 아닌 중국 로봇 산업의 가파른 발전 속도를 대대적으로 알리는 기술 대향연의 무대로 삼을 방침이다.
로봇 대표주자 대거 출격 14일 중국 매체들을 종합해보면 올해 중국 중앙방송(CCTV) 춘제 특집 갈라쇼인 춘완은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 기업간 기술 경쟁의 장이 될 전망이다. 올해 춘완에는 유니트리(중국명 위슈커지), 갤봇(인허퉁융), 노에틱스(쑹옌둥리), 매직랩(모파위안즈) 등 4개 중국 로봇 기업이 참여를 확정했다.
춘완은 음력 설 전일 6시간 가량 진행되는 CCTV의 설 특집 방송 프로그램이다. 중국에선 온 가족이 모여 춘완을 시청하는 게 대표적인 설 풍습이다. 춘완은 중국 정부가 개혁 개방이나 우주 개발, 첨담기술 발전 등 국가적인 과제를 무대로 연출해 미래 산업의 방향을 전달하는 플랫폼으로 기능해왔다.
이 때문에 춘완에 참여하는 기업은 단순한 방송 출연 이상의 의미가 부여된다. 매년 10억명 이상이 동시에 시청해 기업의 기술력을 공개적으로 뽐낼 수 있는 데다 향후 중국 정부의 각종 공공 프로젝트에서 핵심 역할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돼서다. 지난해 춘완의 경우 시청횟수가 28억회를 넘었다.
CCTV의 기밀유지 규정 탓에 구체적인 공연 내용을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지난해 춘완에서 공개된 유니트리의 '칼군무'와 백플립(공중 뒤돌기) 이상의 기술력과 화려한 곡예 동작이 공개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 경제 매체인 차이신과 현지 로봇업계에 따르면 네 곳의 로봇 기업은 대규모 운영 관리팀과 알고리즘 전문가를 총동원해 엄청난 압박 속에 리허설을 진행하고 있다. 리허설 도중 현장에서 많은 콘텐츠를 수정하기도 해 엔지니어들이 밤낮 없이 갈라쇼를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글로벌타임스는 "수억명의 시청자가 지켜보는 춘완 출연은 화려한 홍보 기회이면서도 극한의 스트레스 환경"이라며 "올해 춘완은 중국의 AI 로봇이 더 깊고, 새로운 단계로 진입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기술력 과시·대중 인식 확산 유니트리는 동작 제어 기술에 강점이 있는 편이다. 사족보행 로봇과 휴머노이드 로봇 모두에서 고속 동작 최적화를 위한 업계 최고 수준의 알고리즘을 갖췄다.
매직랩은 관절 모듈과 정교한 손, 감속기 등 핵심 하드웨어 부품의 90% 이상을 자체 개발했다는 특징이 있다. 복잡한 작업과 실시간 동작 제어의 균형을 맞추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다. 갤봇은 합성 시뮬레이션 데이터와 소량의 실제 데이터를 결합하는 훈련 기술을 갖고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정보를 취합해보면 매직랩은 리듬과 조화, 예술성을 강조하는 프로그램을 선보이기 위해 16대 로봇을 투입할 예정이다. 유니트리는 올해 말의 해를 맞아 '질주하는 말의 새로운 자태'라는 주제의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아울러 올해 춘제 갈라쇼에선 무대 공연 이외에도 로봇들이 참여하는 언어 기반 프로그램, 예컨대 만담이나 콩트도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
현지 로봇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올해 춘완 참여를 희망하는 기업이 예년에 비해 훨씬 많았으며, 선정 절차와 서류 심사가 매우 까다로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지난해까진 로봇의 하드웨어 성능을 주로 살폈지만 올해는 AI 대형 언어 모델의 지원 역량을 중점적으로 본 것으로 파악됐다.
전문가들은 중국 정부와 로봇 기업들이 올해 춘완을 통해 로봇에 대한 대중의 인식 수준을 높이려 한다고 보고 있다. 로봇 기업들 역시 기술력을 과시한 뒤 소비자들의 일상생활과 생산 현장에 자사의 로봇을 진출시키는 게 최종 목표라는 얘기다.
또한 춘완의 무대 전면에 로봇이 등장한다는 것은 중국 경제가 전통적인 소비 주도형 성장에서 기술 주도형 성장으로 전환됐다는 방증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춘완이 오랜 기간 중국 경제와 산업 추이, 기술 트렌드 변화를 보여주는 바로미터 역할을 해와서다.
1980년대엔 시계·자전거 기업, 1990년대엔 가전제품 기업, 2000년대엔 주류 기업, 2010년대엔 인터넷 앱 기업이 핵심 역할을 맡아왔다.
한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춘제를 앞둔 지난 9일 올해 첫 현장 시찰로 베이징 첨단기술의 상징인 이좡 경제기술개발구를 찾았다. 미·중 첨단기술 경쟁이 격화하는 와중에 새해 첫 지역 시찰지로 첨단과학 기술 혁심의 심장부를 찾은 셈이다.
시찰 현장에서 시 주석은 베이징이 국가 고품질 발전을 이끄는 시범이자 선도 역할을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미·중 관계 불확실성 속에서 자체 기술 공급망 강화를 주문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베이징=김은정 특파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