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에서 처치 곤란이었던 ‘젤 아이스팩(고흡수성 수지·SAP)’이 사실상 시장에서 퇴출됐다. 잘 설계된 규제가 시장의 혁신을 이끌어낸 환경 정책의 교과서적 사례라는 평가가 나온다.
13일 기후에너지환경부와 아이스팩 업계 등에 따르면 시중 유통되는 아이스팩의 99% 가까이가 물팩으로 대체된 것으로 나타났다. 2019년 80%에 육박하던 SAP 아이스팩 사용률은 5년 만에 1%대로 급감했다. 고흡수성 수지는 미세플라스틱 성분의 고분자 화합물이라 자연 분해가 안되기 때문에 환경 오염원이다.
이번 성과의 결정적 분기점은 기후부가 시행한 ‘폐기물 부담금’ 제도였다. 기후부는 고흡수성 수지에 kg당 313원의 부담금을 부과하는 방안에 대해 2019년 실태조사와 도입 논의를 공식화했고, 2023년부터 본격 시행했다. 업체들은 법적 강제력이 발생하기 전부터 ‘비용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아이스팩의 원료를 물로 바꾸기 시작했고, 당시 선택이 시장의 판도를 바꾼 것이다.
단순히 규제 때문만은 아니다. 소비자의 분리배출 편의성과 기업의 마케팅 전략이 맞아떨어졌다. 고흡수성 수지는 수분을 흡수해 부풀어 오르는 특성상 하수구에 버릴 경우 배관을 막을 위험이 커 반드시 무거운 젤 상태 그대로 종량제 봉투에 담아 버려야 했다. 이는 쓰레기통을 가득 채우는 골칫거리였지만, 물 아이스팩은 내용물을 비우고 종이나 비닐로 분리배출이 쉽다.
기업들은 이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의 핵심 지표로 활용했다. 충전제를 물로 바꾸는 공정 전환 비용이 크지 않다는 점도 빠른 전환을 도왔다. 한 업계 관계자는 “친환경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려는 기업들에 아이스팩 재질 전환은 가성비 높은 마케팅 수단이 됐다”고 설명했다.
배송 현장의 물리적 변화도 숨은 조력자였다. 과거에는 장거리 이동을 위해 보냉력이 강한 젤 아이스팩이 필수적이었으나, 새벽배송 등으로 배송 시간이 획기적으로 단축됐다. 젤 아이스팩 폐기물 부담금 정책을 설계한 김효정 기후부 국장은 “물류 시스템 혁신으로 신선도 유지 시간이 짧아져도 충분한 환경이 조성된 것이 결정적 요인”이라며 “유통 산업의 진화가 환경 정책의 실현 가능성을 뒷받침한 셈”이라고 분석했다.
이번 사례는 자원순환의 패러다임을 바꿨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그간 지자체들은 아이스팩 수거함 설치 등 ‘재사용(Reuse)’ 캠페인을 벌여왔으나 수거, 세척, 재공급에 드는 물류비와 위생 이슈로 한계에 봉착했었다. 전문가들은 “아이스팩 사례는 무리한 재사용 고집보다 원료 자체를 친환경으로 바꾸는 ‘재질 전환(Replace)’이 훨씬 효율적인 자원순환 모델임을 입증했다”며 “향후 일회용품 정책 전반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평가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