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령 독립유공자 이하전 지사의 추모식이 12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렸다.
추모식은 이날 샌프란시스코 한인회관에서 열렸다. 샌프란시스코 및 베이 지역 한인회(회장 김한일)는 "조국의 자유와 독립, 그리고 미주 한인 사회의 미래를 위해 온 삶을 바치신 이 지사의 별세를 한인 사회 모두의 슬픔으로 받아들인다"며 "그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자 추모식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생전 최고령 독립유공자이자 해외에 거주하던 유일한 독립유공자였던 이 지사는 지난 4일 자택에서 향년 104세로 별세했다.
이 지사는 일제강점기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항일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1936년 평양 숭인상업학교 재학 시절 이광수의 『흙』과 『조선의 현재와 장래』 등을 탐독하며 민족의식을 키웠고, 일본인의 차별과 억압 속에서 조국 독립을 이루겠다는 뜻을 굳게 다졌다. 1938년에는 동료 학생들과 함께 비밀결사 독서회를 조직해 활동했으며, 이후 조직 명칭을 ‘축산계’로 바꾸고 결의문을 작성하는 등 항일 의식을 더욱 공고히 했다.
1939년에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사진을 전달받고 그 뜻을 기리며 비밀결사의 활동 자금으로 8달러를 출연했다. 일본 유학 중이던 1941년 1월, 도쿄에서 비밀결사 활동을 이어가다 일본 경찰에 체포돼 평양으로 압송됐으며, 같은 해 12월 평양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6개월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죄명은 ‘일본제국 타도와 조선독립운동’이었다.
1945년 광복 이후에는 그해 10월 연희대학교에 입학해 철학을 공부했고, 1948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패서디나에서 수학하던 중 한국전쟁이 발발했으며, 이후 몬터레이 미 육군 언어학교 한국어과 교수로 재직하며 평생 미군 장병들에게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가르치는 데 헌신했다.
고인은 1947년 흥사단에 입단해 단우번호 316번으로 활동하며 도산 안창호의 정신을 평생의 좌표로 삼아 살았다. 또한 샌프란시스코 지역 광복회 회장을 맡아 독립운동 정신을 알리고 한인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데 힘썼다. 학자이자 저술가로서도 발자취를 남겨, 1998년 옥중기 『아담후예들의 나체군무』를 시작으로 『빛을 따라서』(2003), 『나그네 인생』(2006), 『들려온 소리들』(2008), 『오마니의 콧노래』(2012) 등 총 다섯 권의 저서를 펴냈다.
2015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고인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선조들의 희생정신을 본받았으면 한다"며 "어디에서 태어났든 조상의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이러한 공훈을 기려 1990년 고인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실리콘밸리=김인엽 특파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