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시즌2'(이하 '흑백요리사2')가 막을 내린 후, 우승자 최강록 셰프 만큼이나 주목을 받은 인물이 있다. TOP6에 올랐던 한 수행자, 선재 스님이다. 선재스님은 화려한 요리 향연 속에서, 오직 자연의 재료와 기다림만으로 심사위원과 시청자를 만족시켰다는 평이다.
사찰음식 명장 1호이자 한식진흥원 이사장을 역임하며 '사찰음식의 대모'로 불리는 그가 서바이벌이라는 전쟁터에 뛰어든 이유는 무엇일까. 방송 후 쏟아지는 러브콜을 뒤로하고 본연의 수행자로 돌아간 선재스님을 만나, 그가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와 경연의 뒷이야기를 들어봤다.
전쟁터도 수행처… 단, 오래 머물 생각은 없었다
선재스님의 일상은 다시 고요해졌다. 예능 프로그램과 광고 섭외가 빗발치지만, 그는 "약속된 강연과 인연 닿은 일 외에는 하지 않는다"며 선을 그었다. "내 이름을 팔아서 간장도 나오고 장도 나오고 심지어 가구도 나오던데 다 내가 하는 게 아니다"면서 "현재 어떤 제품의 모델도 하고 있지 않다"고 강하게 말했다.
선재스님은 제작진의 섭외 1순위로 알려졌다. 하지만 경쟁을 해야 하는 프로그램 특성상 주변 사람들은 "절대 출연하면 안 된다"고 만류했다고.
"시즌1도 저는 보지 못했는데 사람들이 '하지 마라'고 하더라고.(웃음) 저도 원래는 안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넷플릭스라는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우리 고유의 식재료와 발효 문화를 제대로 알리고 싶다는 제작진의 말에 마음이 움직이더라고요."
선재스님은 제작진에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공양과 상생의 의미"라며 "2경기 정도 지나면 그 말 정도는 다 할 수 있을 거 같으니 나를 떨어뜨려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역설적이게도 승패를 내려놓은 선재스님의 음식은 심사위원들의 미각을 사로잡았고, 그는 TOP6라는 높은 성적을 거두게 되었다.
간경화로 시한부 선고… 음식이 나를 살렸다
선재스님이 사찰음식에 천착하게 된 계기는 자신의 생존과 직결돼 있다. 20대의 이른 나이에 출가한 선재스님은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학생 포교와 교육 활동에 매진했다. 하지만 불규칙한 식사와 과로로 간경화 판정을 받았다. 당시 의사는 "1년을 넘기기 힘들다"며 시한부 선고를 내렸다.
움직일 수조차 없을 만큼 병세가 악화되었을 때, 선재스님은 경전 속 부처님의 말씀을 떠올렸다. 부처님의 말씀에 나온 음식을 주제로 논문을 쓸 정도였지만 "정작 실천하지 않았다"는 선재스님은 '음식이 곧 약이다'라는 말씀대로 식습관을 바꿔나갔다. 시중의 가공식품을 끊고 산과 들에서 나는 제철 식재료와 직접 담근 장으로 식단을 바꿨다. 기적처럼 건강을 회복한 스님은 깨달았다. "나를 살린 이 음식이 바로 부처님의 법(法)이구나. 이것을 세상 사람들과 나눠야겠다." 선재스님이 지난 30여 년간 사찰음식 대중화에 앞장서 온 이유다.
스타 셰프들도 열광하던 선재스님표 김치
'흑백요리사2' 촬영장은 치열했지만, 선재스님의 조리대는 평온했다. 스님은 경쟁자들을 '도반(함께 수행하는 벗)'으로 여겼다. 가평 잣을 주제로 한 경연에서 스님은 화려한 기교 대신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데 집중했다.
경연장 밖에서도 선재스님의 '나눔'은 계속됐다. "제가 먹는 것에 제한이 있으니 김치를 싸서 갔는데, 그걸 대기실을 같이 쓰던 김희은 셰프가 맛보더니 맛나다고 해주고 그렇게 거기 계신 분들과 함께 나눠 먹었다"며 "이후 다른 촬영일에도 김치를 싸 가서 나눠 먹게 됐다"고 촬영 후일담을 전했다.
"김치를 맛보지 못했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던 '흑백요리사' 시리즈 심사위원 안성재 셰프에게도 김치를 나눠주었다는 선재스님이었다. 이 김치들은 선재스님이 텃밭에서 직접 배추와 무로 담근 것으로 "저는 따로 물을 주지 않는다"며 "살아남는 놈만 키워서 먹는데, 그래서 그런지 맛도 좋다"면서 웃었다.
"음식으로 수행하냐, 법당이나 가라"… 선구자의 설움
손종원 셰프가 '흑백요리사2' 출연도 전에 요리를 배우기 위해 선재스님을 찾아오고, 미슐랭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안성재 셰프, 이준 셰프도 "비건 메뉴도 있으니 언제든지 방문해 달라"고 예의를 갖출 정도로 셰프들의 스승 반열에 오른 선재스님이다. 지금이야 사찰음식이 K-푸드의 정수로 대접받지만, 그가 처음 이 길을 걸을 때만 해도 시선은 싸늘했다.
"후배 스님들에게조차 핀잔을 들었습니다. '스님이 왜 음식 가지고 수행한다고 하느냐. 그럴 시간에 방석 위에 앉아 참선하거나 법당 가서 절이나 해라'라는 비아냥이었죠."
해외 강연을 나갔을 때 겪은 답답함도 토로했다.
"통역사가 제 말을 알아듣기는 하는데, 그 안에 담긴 불교적 철학과 정신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더군요. 너무 답답해서 저를 비판하던 스님 한 분을 해외 강연에 억지로 통역으로 모시고 갔습니다. 그냥 무조건 와서 보라고 했지요."
결과는 반전이었다. 현장 반응과 선재스님의 강연을 지켜본 그 비판적인 스님이 참회한 것.
"그 스님이 나중에 그러더군요. '온 우주의 환경과 생명 사상이 스님의 음식 법문에 다 들어있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고요. 그 후로는 그 스님이 제 가장 든든한 지지자이자 통역사가 되어주었습니다. 그런 시간들이 쌓여 여기까지 온 것이지요."
'진간장 논란'의 진실… "비난 아닌 건강을 위한 조언"
'흑백요리사2'로 선재스님이 주목받자, 과거 한 방송에서 언급했던 '진간장 발언'이 재조명되며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당시 스님은 "시중에서 파는 진간장은 화학물질이 너무 많아 다 버렸다"고 말해 식품업계를 비하했다는 오해를 샀다. 이에 대해 선재스님은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당시 저는 간경화 말기 환자였습니다. 제 몸이 받아내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버려야 했던 개인적인 상황을 이야기한 것이지, 기업의 제품을 무조건적으로 비난하려던 의도가 아니었습니다."
더불어 기업 강연을 통해 '건강한 음식'을 당부하고 있다고 전했다. "라면 회사나 식품 기업에 가서 강의할 때 내 가족이 먹는다는 생각으로 좋은 재료를 써달라고 호소한다"는 것. 그러면서 "건강한 라면을 만들어 달라"고 한 후 "튀기지 않은 건면이나 비건 제품 등 건강을 생각한 제품들이 많이 나오고 있어 감사하다"며 "제 말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런 생각들을 해주시는 거 같다"고 겸손함을 내비쳤다.
이어 우리 전통 장(醬),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절기와 음식의 가치를 역설했다.
"옛 어른들은 수수팥떡으로 아이들의 뼈를 튼튼하게 하고, 동짓날 팥죽으로 겨울철 몸의 냉기를 다스렸습니다. 귀신을 쫓는다는 건 미신이 아니라 몸의 나쁜 기운을 몰아내는 과학적 지혜였던 거죠. 유네스코가 우리 장 문화를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발사믹 식초나 와인은 비싼 돈 주고 사 먹으면서, 정작 우리의 좋은 된장과 간장은 홀대하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묵은 장이 약이 된다는 걸 다시 알려주고 싶습니다."
비투비 이창섭은 사촌의 아들… "온 우주가 행복해야 나도 행복"
인터뷰 말미, 스님은 그룹 비투비(BTOB)의 멤버 이창섭과의 특별한 인연도 공개했다. 이창섭은 선재스님 사촌의 아들이다.
"창섭이가 방송에서 제 얘기가 나올 때마다 '우리 이모'라고 자랑하고 싶어 했는데, 혹시나 저에게 누를 끼칠까 봐 말을 아꼈다고 하더군요. 집에 가 엄마한테 그 얘기를 했고, 저에게 전화가 왔어요. '괜찮으니 편하게 이야기하라'고 전했고 저도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내 조카가 이창섭인데 아이돌 잘 몰라요'라고 말한 게 화제가 된 거죠."
선재스님의 최종 목표는 거창하지 않다. 그저 사람들이 자신이 먹는 음식이 어디서 왔는지 한 번쯤 생각해보자는 것, 그래서 모두가 행복해지는 것이다.
"음식은 하늘과 땅, 농부의 땀, 온 우주의 생명이 협동해 만들어낸 결과물입니다. 땅이 건강하고 물이 맑아야 좋은 식재료가 나오고, 행복한 나무의 열매, 행복한 소와 닭을 먹는 우리가 행복해집니다. 너와 내가 둘이 아니라는 '불이(不二)'의 가르침이 밥상 위에 있습니다. 제가 방송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건 요리 실력이 아니라, 밥상 위에 담긴 이 생명의 이치였습니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