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서의 의사결정과 일상의 선택은 강도만 다를 뿐 본질은 같습니다. 중요한 순간일수록 감정을 가라앉히고 선택지를 구조화해 상대의 반응까지 함께 따져보는 훈련이 필요하죠. 전쟁사는 그런 사고방식을 기르는 데 가장 좋은 교재입니다.”
최근 책 <전쟁에서 배우는 인생 전략>을 펴낸 최중경 한미협회 회장(전 지식경제부 장관)은 서울 순화동 한미협회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그의 신간은 카르타고 공방전부터 임진왜란, 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까지 동서고금의 전쟁사를 넘나들며, 역사 속 전투를 오늘의 삶과 경영, 외교 문제로 연결한다.
이번 책은 20대 시절부터 이어져 온 전쟁사에 대한 관심이 집약된 결과물이다. 강원도에서 육군 초급장교로 복무하며 전술 교범과 전투 기록을 읽기 시작했고, 이후 경제 관료와 외교 현장을 거치며 전쟁사가 지닌 의사결정의 논리를 현실의 문제로 확장해왔다. 최 회장은 이명박 정부에서 기획재정부 1차관, 주필리핀대사, 대통령실 경제수석을 거쳐 지식경제부 장관을 지냈다.
그는 “전투는 가장 치열한 경영행위이자 삶의 방식”이라는 오랜 생각을 이번 책에 담았다고 설명했다. 최 회장과 책을 둘러싼 이야기를 나눠봤다.<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border:1px solid #c3c3c3" />
▶ 책은 어떻게 쓰게 되셨습니까. 왜 전쟁사인가요?
“전쟁이나 전투는 가장 치열한 형태의 경영 행위이자 삶의 방식이라고 봤습니다. 극한의 상황에서 드러나는 판단과 선택의 논리를 일상에 적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왔죠. 그 문제의식으로 관련 자료를 축적하다가 책으로 정리하게 됐습니다.
책을 쓰며 다시 느낀 건 사회 전반에 전략적 사고와 의사결정 능력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그래야 사회도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습니다. 전쟁은 그런 전략과 판단이 가장 명확하게 드러나는 영역이고, 그 점에서 전쟁사는 여전히 유효한 참고서라고 생각합니다.”
▶ 전쟁사에 빠지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까?
“어릴 때 아버지가 사주신 세계사 책이 출발점이었습니다. 어린이용이었지만 나폴레옹이나 한니발 같은 지략가들의 이야기가 인상 깊었고, 아우스터리츠 전투 같은 사례를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후 20대 중반 강원도 인제에서 육군 초급장교로 복무하면서 전쟁사에 더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전술서와 전쟁사를 집중적으로 읽으면서, 전투야말로 가장 치열한 경영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전투는 탄약과 장비, 병력, 시간과 장소, 연료까지 제한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조합해 운영해야 합니다. 이는 기업 경영의 핵심 요소와 다르지 않습니다. 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시장에서 밀리면 기업이 사라진다는 점에서 기업 경쟁도 일종의 전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제가 경영학과 출신이다 보니, 군 교범을 읽을 때도 ‘Economic Efficiency’(경제적 효율성), ‘Economize’(비용을 줄이다) 같은 표현이 반복해서 나오는 게 눈에 띄더라고요. 자원을 효율적으로 쓰라는 의미죠. 기업 경영의 핵심 개념과 정확히 맞닿아 있었습니다.”
▶ 어찌 보면 20대에 품었던 생각을 이번에 책으로 완성하신 셈이네요.
“그만큼 오랜 축적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여러 전투 사례를 보다 보면 공통점이 보이는데, 많은 실패가 감정 통제의 붕괴에서 출발합니다.
나폴레옹의 워털루 전투와 칠천량 해전을 함께 떠올리게 된 것도 그 때문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선조의 감정적 대응, 이순신을 배제하고 원균을 내세운 결정, 그리고 이어진 판단의 연쇄는 모두 감정이 전략을 압도한 사례였습니다.
원균 역시 부임 직후 상황이 무리라는 걸 인식했지만, 지속적인 압박과 공개적인 모욕 속에서 판단력이 무너졌습니다. 칠천량 해전에서 '시야가 없는 해역이라 정박하면 안 된다'는 부하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정박을 강행한 결정도 결국 감정 통제 실패의 결과였죠.
이 과정에서 수하들과 함께 12척을 끌고 탈영한 배설에 대해서도, 저는 드라마처럼 단순히 비겁한 인물로 그리는 해석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는 위험을 인식하고 배를 이끌고 빠져나와 한산도의 백성들을 대피시키고, 남은 물자도 불태웠습니다. 자신의 임무를 다한 겁니다. 이후의 행적은 오늘날로 치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가까웠다고 봅니다.
이런 사례들을 종합해보면, 전쟁은 결국 판단과 감정 관리의 문제라는 점이 보입니다. 이 책이 전쟁사를 넘어 경영과 조직 운영에도 참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방대한 전쟁사 분석과 디테일이 인상적입니다. 집필 과정은 어땠습니까.
“전쟁사를 본격적으로 들여다본 시간만 따지면 40년쯤 됩니다. 오랫동안 사례들을 머릿속에 쌓아두다가, 주제와 사례를 어떻게 연결할지 정리하는 데 시간이 걸렸죠.
전투 자체는 모두 팩트입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벌어졌는지는 이미 정해져 있죠. 어려운 건 그 사실들 속에서 결정적인 의사결정의 순간을 골라내고, 어떤 교훈을 도출할지 분류하는 일이었습니다.
예컨대 워털루 전투에서 나폴레옹이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보병 증원을 거부한 판단 하나가 역사를 바꿨듯, 전투는 늘 한순간의 결정이 결과를 좌우합니다.
팩트를 엮어 목차를 정하는 데 가장 오래 걸렸고, 목차가 잡힌 뒤에는 약 1년 반 만에 집필을 마쳤습니다. 사실을 나열하는 것보다, 그 사실에서 무엇을 읽어낼지가 어려운 작업이었죠.”
▶ 평소 전쟁사는 어떻게 공부를 해오셨습니까. 이른바 ‘밀덕(밀리터리 덕후)’의 '덕질법'이 궁금한데요.
“기본 개념을 책으로 먼저 익히는 편입니다. 예를 들어 나폴레옹을 다룬 두꺼운 전기들을 보면, 그가 군사사에서 참모장 제도를 처음 도입했다든지, ‘센트럴 포지션’ 같은 전략 개념을 어떻게 활용했는지가 자세히 나오거든요.
영화와 다큐멘터리도 찾아봅니다.. 게티즈버그 전투만 해도 관련 서적이 많고, 로버트 E. 리 장군에 대한 평가 역시 다양합니다. 여기에 소설 <킬러 엔젤스>를 바탕으로 한 영화 ‘게티즈버그’를 함께 보면, 글로 읽은 판단과 갈등이 훨씬 입체적으로 다가옵니다. 제임스 롱스트리트가 리의 명령에 반대하는 장면 같은 대목이 그렇죠.
전쟁사는 재미도 있지만, 무엇보다 결론이 명확합니다. 누가 어떤 판단을 했고, 그 결과가 어떻게 귀결됐는지가 명확히 드러납니다. 전략이 옳았는지, 운이 따랐는지, 혹은 마지막 순간에 운이 어긋났는지까지 포함해 판단의 전 과정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전쟁사는 가장 냉정한 의사결정의 교과서라고 생각합니다.”
▶ 책에 등장하는 여러 전쟁 가운데 조선의 행주산성 전투와 임진왜란에 대한 분석이 흥미롭습니다. ‘행주대첩’ 하면 흔히 아녀자의 행주치마와 돌을 먼저 떠올릴 텐데, 이를 ‘신무기 운용의 승리’로 해석하셨어요.
“행주산성 전투를 ‘정신력의 승리’로만 설명하는 건 역사 왜곡에 가깝습니다. 돌을 던져 화약 무기로 무장한 일본군을 막았다는 식의 서사는 현실과 맞지 않습니다. 승패를 가른 건 신무기의 운용이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은 결코 약한 군대를 가진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다만 조선이 제후국이었기 때문에 상비군을 둘 수 없었고, 전시에는 동원 체제로 싸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제약 속에서 행주산성 전투는 제한된 병력과 지형, 화약 무기를 효과적으로 결합해 운용한 사례입니다.
이를 ‘아녀자들의 돌팔매’로 미화하면 조선이 지닌 군사 기술과 전술적 판단을 스스로 깎아내리는 셈이 됩니다. 행주산성 전투는 상징이나 감정이 아니라, 냉정한 기술과 운용이 만들어낸 승리였죠.”
▶ 한국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을 ‘성공한 작전’으로 보기 힘들다는 견해도 제시하셨습니다.
“개인적인 견해이지만, 인천상륙작전은 전략적으로 불필요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당시 전선은 이미 낙동강에서 고착돼 있었고, 북한군은 보급과 병력 면에서 붕괴 직전이었습니다. 중국 역시 압록강 인근에 병력을 집결시키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죠.
미군은 압도적인 제공권과 화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낙동강 전선에서 포위·섬멸 작전을 택했다면, 강력한 포격 이후 부교를 설치해 기갑부대를 투입하고 보병이 퇴로를 차단하는 방식으로 북한군 전력을 훨씬 효율적으로 소모시킬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인천에 상륙하면서 전선이 비정형적으로 꼬였습니다. 주력과 후방이 분리되고 잔존 병력이 흩어지면서 전쟁은 파르티잔화됐고, 병참과 보급, 전선 통제가 모두 어려워졌습니다.
상륙과 서울 수복에는 성공했지만, 이를 안정적으로 유지하지 못한 점이 더 큰 문제였습니다. 합참의 평양?원산선 정비 지시는 무시됐고, 중국 개입 가능성에 대한 경고에도 충분히 대비하지 못했습니다. 정찰과 정보 판단이 소홀했던 겁니다.
그 결과 전선은 급격히 붕괴됐고, 한때는 한반도 철수까지 거론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이후 리지웨이 장군이 전선을 수습했지만, 그가 처음 마주한 전장은 아군과 적군의 위치조차 명확히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혼란스러웠습니다.
전쟁에서 중요한 건 ‘질서 있게 밀고 올라가는 것’입니다. 단계적으로 전선을 정비하고 예비 진지를 구축해 나갔다면, 한 번 밀리더라도 방어가 가능했을 겁니다. 인천상륙 이후의 전개는 그 기본 원칙이 무너진 사례였다고 봅니다.”
▶ 아직 책을 읽지 않은 독자에게, 이 책에서 특히 소개하고 싶은 전투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먼저 게티즈버그 전투를 꼽고 싶네요. 이 전투를 책에서 두 번 다뤘는데, 첫째는 ‘타이밍’의 문제입니다. 전투 초반 기병이 본래 임무를 넘어 보병처럼 버티며 진격을 지연시킨 판단이 전투의 흐름을 바꿨습니다. 역할을 벗어난 결정이었지만, 그 순간의 선택이 승패를 갈랐죠.
둘째는 ‘그림을 너무 크게 그린 전략’입니다. 역량을 넘어서는 계획을 세우다 보니, 정작 정보 수집을 담당해야 할 기병의 위치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거대한 계획을 참모 조직이 감당하지 못하면서 전형적인 과부하가 발생한 사례입니다.
또 하나는 나폴레옹의 워털루 전투입니다. 이 전투에서는 감정 통제의 실패와 반복된 성공 경험이 어떻게 판단을 흐리는지가 잘 드러납니다. 블뤼허의 미끼 전술에 병력 상당수가 분산되며 우익이 붕괴된 과정은, 아무리 성공한 전략도 반복되면 독이 될 수 있다는 교훈을 줍니다.
여기에 더해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우연’의 요소도 중요합니다. 워털루 전투에서 포병 진지를 점령하고도 사소한 변수 하나로 철수하게 된 사례처럼, 아주 작은 우연이 전쟁의 흐름을 바꾸기도 합니다.
이 두 전투는 전략과 판단, 감정, 그리고 우연이 어떻게 얽혀 결과를 만들어내는지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죠.”
▶ 책에서 반복해 지적하신 것이 ‘불확실성을 낙관으로 고정하는 사고’입니다. 전쟁사에서 이 오류가 치명적으로 작동한 사례가 많았는데, 인간은 왜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고 보십니까.
“문제는 낙관 그 자체보다, 그 낙관을 걸러낼 장치가 없다는 데 있습니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낙관으로 기울어지는 건 인간의 본성에 가깝지만, 이를 제어하는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으면 치명적인 오류로 이어집니다.
전쟁에서 그 역할을 맡는 게 참모 조직입니다. 참모들은 대안을 제시하고 위험 요소를 드러내며, 지휘관의 결심을 걸러내는 기능을 합니다. 하지만 전쟁사를 보면 참모 조직이 있어도 형식적으로 운영되거나, 아예 무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 지휘관 개인의 확신과 낙관이 그대로 결정이 되고, 그 대가는 패배로 돌아옵니다.
개인의 판단은 결코 100점짜리 답안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독단적으로 결정하면 스스로 완벽하다고 믿는 답안을 던지게 됩니다. 반면 참모 조직이 제대로 작동하면 여러 대안을 비교하고, 각 선택에 따르는 리스크와 비용이 명확해집니다. 그 과정 자체가 낙관을 걸러내는 장치입니다.
그래서 기업이나 조직에서도 일부러 ‘반대만 하는 팀’을 두기도 합니다. 어떤 안이 나오면 장점이 아니라 약점과 위험만 집중적으로 검토하게 하는 거죠. 전쟁이든 경영이든, 같은 실수가 반복되는 이유는 결국 이런 구조를 만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이 책에서 리더십 이야기는 직접 다루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에드거 퍼이어의 <명장의 코드>를 추천하셨는데, 어떤 책인가요.
“<명장의 코드>는 미군 역사에서 중요한 지휘관들을 인터뷰하거나 주변 인물들의 증언을 통해 리더십을 분석한 책입니다. 이론서라기보다 실제 사례 중심의 기록이죠.
예를 들어 노먼 슈워츠코프 장군은 사병 식당에서 늘 병사들과 같은 줄에 섰다고 합니다. 전투 상황에서는 엄격했지만, 평소에는 계급을 내세우지 않고 병사들과 대화를 나누며 현장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불필요한 권위를 드러내지 않는 태도가 신뢰로 이어진 겁니다.
책에 등장하는 지휘관들의 리더십 방식은 제각각이지만, 공통점은 상황에 맞는 태도를 알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군 지휘관의 사례이지만, 조직을 이끄는 민간의 리더에게도 충분히 참고될 만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 전쟁사를 깊이 탐구하며 얻은 판단의 원칙이 실제 인생이나 정책 결정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십니까.
“이 책을 특히 젊은 세대에게 전하고 싶었던 건, 인생의 중요한 결정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종종 중대한 선택을 감정에 맡겨 너무 쉽게 내려버리지만, 전쟁사를 보면 판단의 구조를 한 번만 더 점검해도 훨씬 합리적인 결론에 이를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서문에서 언급한 한미 방위비 분담 협상이 그런 사례입니다. 2024년 한국 정부는 미 대선을 앞두고 ‘빨리 하라’는 압박 속에 협상을 서둘러 마무리했지만, 게임이론 관점에서 보면 최선의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이를 단순한 2×2 게임 모델로 보면 답은 분명합니다. 대선 이전에 협상을 끝내면 트럼프는 차기 대통령을 피해 도망쳤다고 느낄 수 있고, 행정협정은 언제든 다시 흔들 수 있습니다. 반대로 선거 이후로 협상을 미루면, 트럼프 입장에서는 ‘기다려줬다’는 인식을 갖게 되고 협상 환경이 오히려 나아집니다. 상대의 선택지와 감정까지 고려하면 서둘러야 할 이유가 없었던 셈이죠.
이런 사고방식은 외교나 정책뿐 아니라 개인의 삶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중요한 결정일수록 한발 물러서서 구조를 보고, 상대의 입장과 다음 수를 읽는 것. 전쟁사가 주는 교훈이죠”
▶ 그렇다면 당시 우리 정부는 왜 그런 결정을 했다고 보십니까.
“누군가 ‘빨리 하라’고 압박했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더 중요한 건 판단 과정입니다. 논리를 전략적으로 풀어 게임 모델에 넣어보면 답은 비교적 분명했는데, 그런 분석 없이 감에 의존해 결정한 게 문제였다고 봅니다.
결국 전략적 사고에 대한 훈련이 충분하지 않았던 겁니다. 전쟁 사례들도 대부분 이 지점에서 실패합니다. 중요한 결정일수록 먼저 감정을 다스려야 합니다. 흥분하거나 화가 난 상태에서는 합리적인 판단이 불가능합니다.
평정한 상태에서 선택지를 정리하고, 상대가 어떻게 반응할지를 가정해 게임값을 계산해 보면 최소한 ‘절대 해서는 안 될 선택’은 걸러집니다. 그다음 남는 옵션 가운데 최선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이런 과정을 거치면 치명적인 실패는 피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이런 틀 없이 결정하면, 단 한 번의 판단으로도 깊은 구렁텅이에 빠질 수 있는 거죠.”
▶ 평소 중요한 결정이나 일상의 선택에서도 전쟁사를 떠올리며 전략적인 사고를 의식적으로 하시나요?
“그렇습니다. 중요한 결정일수록 먼저 이 ‘게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부터 봅니다. 관계 부처, 국회, 법원, 언론 등 이해관계자들을 하나씩 떠올리고, 누가 어디에서 반대할 수 있는지를 그려봅니다. 그러면 그 지점을 어떻게 사전에 풀어야 할지가 보입니다.
언론 역시 중요한 플레이어입니다. 언론이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여론이 형성되기 때문이죠. 게임이론의 출발점은 플레이어와 선택지를 정하는 겁니다. 그러면 각 선택에 따른 반응과 대략적인 게임 값이 계산됩니다.
물론 항상 정답이 있는 건 아닙니다. 변수와 우연도 많죠. 하지만 이런 틀로 생각하면 최소한 최악의 선택은 피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즉흥적으로 결정하면 예상치 못한 반작용을 맞고 크게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떤 의사결정을 하든, 그 결정에 영향을 받을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지를 반드시 따져봅니다. 전략적 사고는 위험을 피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라고 생각합니다.”
▶ 한국 사회는 감정에 치우쳐 급격히 달아올랐다가 식는 경향이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즉흥적인 지시가 가장 위험하다고 봅니다. 성공한 창업자나 리더일수록 자신감이 큰데, 지나가며 던진 말 가운데 일부는 맞을 수 있어도 일부는 틀릴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그런 말이 그대로 실행된다는 점입니다. 이게 쌓이면 경영 효율을 갉아먹고 결국 조직을 무너뜨립니다.
한 회계사이자 PEF 전문가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구조조정 대상이 된 한국 기업은 고치기 쉽다. 창업자가 했던 지시들을 목록으로 만들어 뒤집기만 하면 된다.’ 즉흥적 지시 몇 가지만 바로잡아도 기업 체질이 달라진다는 거죠.
안정적인 기업이라도 영업이익률은 대개 10% 안팎, 순이익률은 4~5%에 불과합니다. 잘못된 지시 몇 개만 반복돼도 곧바로 적자로 돌아섭니다. 감정적인 판단의 대가는 생각보다 큽니다.
그래서 전략적 사고는 일부 리더만을 위한 게 아니라 모두에게 필요한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책 제목을 ‘인생 전략’으로 정한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우리는 흔히 ‘빨리, 더 열심히’를 강조하지만, 조금만 더 치밀하고 객관적으로 구조를 보면 쉽게 풀릴 문제를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외교나 정책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대가 강하게 나온다고 즉각 반응할 게 아니라, 한 번 멈춰서 구조를 보고 판단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 그렇다면 왜 우리 사회에서는 전략적 사고가 잘 작동하지 않는다고 보십니까.
“가장 큰 이유는 역사 교육에 있다고 봅니다. 역사를 전략의 관점에서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사고하는 훈련 자체가 이뤄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굳이 역사책을 쓴 겁니다.
많은 역사 서술은 ‘국뽕식’으로 되어 있기도 하죠. 역사는 잘못된 건 잘못됐다고 말해야 합니다. 그 시점에 어떤 선택지가 있었는지, 왜 그 선택을 했는지, 다른 길은 없었는지를 따져봐야 합니다. ‘A 아니면 B’라는 구조로 사고하는 훈련이 쌓여야 전략적 사고가 생기는데, 우리는 사실을 나열하거나 미화하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현실은 지운 채 도덕적 서사만 남기니 판단력이 자라기 어렵습니다.
이 문제는 근현대사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삼국시대만 봐도 고구려는 왜 백제의 멸망을 방관했는지, 계백 장군의 선택은 전략적으로 타당했는지, 명·청 교체기 조선의 결정은 합리적이었는지 등 질문할 소재는 충분합니다.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 자체가 전략적 사고의 출발입니다.
결국 전략적 사고가 부족한 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의 문제입니다. 역사를 ‘옳고 그름’의 이야기로만 소비하는 사회에서는 복잡한 선택과 리스크를 따지는 사고가 자라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는 전략적 사고의 출발점이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 암기 위주의 역사 교육이 전략적 사고를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을 하셨는데요. 그렇다면 역사 교육은 어떤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보십니까.
“지금처럼 사실을 외워 맞히는 방식으로는 전략적 사고가 생기기 어렵습니다. 시험 제도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수업 내용과 방식입니다.
역사는 전략적 사고를 훈련하기에 가장 좋은 소재입니다. 예컨대 워털루 전투를 가르칠 때 ‘나폴레옹이 패했다’로 끝낼 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어떤 선택지가 있었고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를 따져봐야 합니다. 리니 전투 이후 왜 추격하지 않았는지, 그 판단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다른 선택은 가능했는지를 묻는 식이죠.
이렇게 질문을 던지면 학생들은 단순한 관찰자가 아니라 의사결정의 주체가 됩니다. 나폴레옹이나 그루시, 블뤼허의 입장에서 상황을 입체적으로 바라보게 되고, 그 자체가 전략적 사고 훈련이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역사에서 결과만 외우게 할 뿐, 그 안에 담긴 판단과 오류, 감정과 우연의 요소는 거의 다루지 않습니다. 역사는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선택의 기록입니다. 어떤 선택이 왜 나왔고, 그 대가는 무엇이었는지를 묻는 교육이 이뤄질 때, 비로소 전략적으로 생각하는 힘이 길러진다고 봅니다.”
▶ 한미협회장을 맡고 계시는데,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관세 문제 등을 둘러싼 대미 관계의 불확실성은 어떻게 보십니까.
“핵심은 약속 이행의 신호를 빨리 보여주는 겁니다. 미국이 한국을 판단하는 기준은 복잡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합의한 내용을 실제로 이행하고 있는지, 그 지표가 바로 법안 통과와 집행 여부입니다.
그런데 법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집행도 미뤄지고 있다면, 미국은 ‘한국이 약속을 지킬 의지가 있는가’를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관세 압박이 나오는 것도 자연스러운 반응이죠.
대미 관계는 상대가 있는 게임입니다. 우리가 움직이지 않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고, 그에 대한 반응이 돌아옵니다. 특히 트럼프 정부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가시적인 성과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미국의 정치 일정이 촉박하다는 점을 감안해야 합니다
법안을 통과시키고, 상반기 중 대미 투자 일부라도 실제 집행이 이뤄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하반기에 하겠다’라거나 ‘시간이 걸린다’는 논리는 미국의 시간표와 맞지 않습니다. 지금은 상대의 상황을 읽고 속도를 내야 할 시점이라고 봅니다.”
■ 최중경 한미협회 회장의 추천 책
1.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 | 디 브라운- 압도적인 문명 앞에 선 인디언들의 선택과 그 결과를 통해, 약자의 생존이란 무엇인가를 묵직하게 되묻는다.
2. <베트남 10,000일의 전쟁> | 마이클 매클리어- 프랑스·미국·중국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베트남 지도부의 전략과 지혜를 배울 수 있다.
3. <노예의 길> | 프리드리히 A. 하이에크- 사회주의가 왜 실패할 수밖에 없는지를 명쾌한 논리로 설명한다.
4. <오랑캐 홍타이지 천하를 얻다> | 장한식- 홍타이지를 통해 조선 조정의 잘못된 인식과 왜곡된 역사를 알 수 있다.
5. <미국의 민주주의> | 알렉시 드 토크빌- 미국의 삼권분립과 대통령 중심제, 그리고 자유의 의미와 그 한계를 짚어내며 탁월한 식견을 보여준다.
6. <매국노 고종> | 박종인- 조선이 ‘나라다운 나라’였는지에 대한 냉정한 문제 제기와 함께, 역사 조작의 실상을 파헤친다.
7. <한국전쟁과 냉전의 시대> | 사무엘 F. 웰스- 한국전쟁이 국제 질서 재편에 미친 영향을 세계사적 관점에서 조망한다.
8. <노무현이 만난 링컨> | 노무현- 위대한 정치가 링컨 대통령의 포용과 인내에 기반한 리더십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9. <The Hinge Factor> | 에릭 두르슈미트- 우연과 어리석음이 역사를 어떻게 바꾸고 전쟁의 승패를 뒤집었는지를 역사적 사례로 보여주며 의미 있는 교훈을 전한다.
10. <총 균 쇠> | 재레드 다이아몬드- 역사를 움직이고 변화시키는 핵심 요소들에 대한 통찰을 키워준다.
<i>설지연의 독설(讀說)'은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책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나눠보는 연재 코너입니다.</i>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