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실리콘밸리의 '코드 레드' 공방전

입력 2026-02-12 17:45
수정 2026-02-13 00:14
미국 실리콘밸리 빅테크에서 흔한 ‘열정 노동’의 원조 격은 애플이다. 1980년대 초 매킨토시 PC를 개발할 때다. 스티브 잡스는 유명한 ‘우주에 자국(dent)을 남기자’는 슬로건 아래 주 90시간 근무 시스템을 만들었다. 한 임원이 직원들의 불만을 누그러뜨리고 사기를 북돋우고자 등에 재치 있는 문구를 새긴 후드티를 단체로 맞췄다. “90Hours a Week and Loving It(주 90시간 일해보니 너무 좋아)!”

2007년 아이폰 개발 때 애플 직원들 사이에서 회사는 ‘이혼 공장’으로 불렸다. 밤과 주말을 포기하고 일에 매달리는 바람에 이혼하거나 실연한 사례들이 회자됐다. 잡스의 뒤를 이은 팀 쿡 휘하에서도 고강도 업무 문화는 여전하다. 쿡 자신이 새벽 4시에 일어나 일을 시작하는 사람이다.

테슬라가 모델3 양산에 들어갔을 때 일론 머스크가 ‘생산 지옥’이라고 부른 심각한 생산 차질을 빚었다. 머스크 스스로 ‘리더가 가장 고통받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며 공장 바닥에서 잠을 자면서 주 120시간 근무로 헤쳐 나갔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은 시가총액 세계 1위가 된 지금도 “언제든 30일 내 망할 수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엔비디아 주차장에는 최고급 차가 즐비하지만 직원들이 퇴근을 위해 시동을 거는 시간은 오전 1~2시다.

실리콘밸리 사상 가장 긴박한 비상 경영 체제는 2022년 말 오픈AI의 챗GPT 등장에 구글이 ‘코드 레드’를 발동했을 때다. 코드 레드는 병원에 불이 난 상황이니, 그 위기감을 짐작할 수 있다. 크리스마스 휴가 전면 취소, 회사 전역의 워룸화, 24시간 릴레이 개발에 들어갔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제미나이다. 그러자 공수가 바뀌었다. 이번엔 오픈AI가 작년 말부터 코드 레드를 걸었다. 직원들이 일하다 쓰러져 자고 또 일어나 곧바로 모니터를 켤 수 있도록 회사가 세탁, 샤워실, 세 끼 식사를 다 제공하는 게 실리콘밸리의 ‘캠퍼 문화’다. 누구나 일과 삶이 조화된 ‘워라밸’을 지향한다. 그러나 이를 누리기 위해선 때때로 일과 삶이 하나로 뒤엉킨 ‘워라블(work-life blending)’도 감수해야 하는 것이 세상 이치다.

윤성민 수석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