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인전 전집 50권 뒤로 숨었던 아이들…그들은 그렇게 살고 있다

입력 2026-02-12 16:54
수정 2026-02-13 02:12

얼마 전 친구가 툭 던지듯 고백했다. “나는 어릴 때 위인전 50권 전집 뒤에 숨어 살았어.”

친구의 기억 속 1980년대는 어른들이 오로지 앞만 보고 내달리던 시절이었다. 경제 성장의 열기 속에서 어른들의 목소리는 늘 높았고, 아이들의 섬세한 결을 돌볼 여유는 없었다. 그 거친 시대의 파도 속에서 아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은신처를 찾아야 했다. 친구에게 그것은 거실 한구석을 차지한 하얀 책등의 위인전 전집이었다. 당시 전집 방문 판매가 인기였는데, 서울 아이들이 계몽사 명작 동화를 읽을 때 지방에 살던 그는 엄마가 건넨 위인전을 탐독했다. 그때는 자신이 왜 그 책들에 그렇게 매달리는지 몰랐다고 한다. 그저 책장을 넘기는 동안만큼은 어른들의 야단도, 예측 불가능한 긴장감도 닿지 않는 ‘나만의 영토’를 누릴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 하얀 표지들은 아이가 세상을 향해 세운 최초의 방화벽이었다. 잠재적 공간의 힘영국 소아과 의사이자 정신분석학의 거장인 도널드 위니컷은 <놀이와 현실>에서, 아기의 무력함과 현실을 받아들이는 능력 사이에 ‘중간 영역’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유아에게 허용된 환상은 성인의 삶에서도 예술과 종교 안에 자리 잡으며, 환상 경험의 유사성은 사람들이 관심을 공유하고 집단을 이루게 하는 자연스러운 뿌리가 된다고 말한다.

80년대의 조숙했던 아이들에게 위인전은 바로 완전히 현실도 아니고 그렇다고 상상만으로 이뤄진 것도 아닌, 그사이에 놓인 물건이었다. 책은 감정을 가진 인간처럼 나를 할퀴거나 변덕을 부리지 않았다. 위인전의 고단한 일대기가 담아낸 “인간은 결국 어떻게든 살아남는다”는 서사는 무질서한 현실 속에서 가장 믿을 만한 생존 매뉴얼이 돼줬다.

친구가 위인전 50권의 부피에서 느꼈던 안도감은 바로 이러한 뇌의 고도화된 생존 전략이었던 셈이다. 조숙했던 아이들은 활자라는 벽돌을 쌓아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자기만의 집을 지었다. 라임오렌지나무 옆 제제, 안녕친구가 덧붙였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를 읽으며 울었던 건 제제가 불쌍해서였을까. 나무 한 그루에 기대어 겨우 숨을 쉬던 그 애의 모습이, 위인전 성벽 뒤에 숨어 있던 나랑 너무 똑같아서였겠지. 이제 와 해석이지만.” 제제가 비밀 친구 밍기뉴에게 속삭일 때, 우리 역시 위인전의 하얀 책등 뒤에서 나만의 나무를 키우고 있었다. 현실에서는 조용히 생존 전략을 지키기 위해 결코 흘릴 수 없었던 눈물을, 제제라는 안전한 통로를 빌려 쏟아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다시 공허함을 말한다. 어쩌면 그것은, 잠시 현실을 유예할 수 있는 ‘중간 영역’이 줄어든 탓인지도 모른다. 이제 어른이 된 우리는 안다. 그때 우리가 위인들의 이름을 외우지 못했어도 괜찮았다는 것을. 중요한 건 ‘내용’이 아니라, 그 책들이 우리를 지켜줬다는 ‘효과’였다. 친구의 고백처럼, 우리에겐 때로 하얀 책등 뒤로 망명할 시간이 필요하다.

어릴 적 ‘문자 탐닉’은 지식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이야기 속으로 들어갔다. 교양도 허세도 아닌 본능적 이끌림이었다. 이건 다음의 아이, 또 그다음의 아이로 전해질 비책이다. 그 시절, 책이 있어 참 다행이었다는 그 짧은 말은 이제 한때 자발적 책벌레였던 우리가 모두 서로에게 건네는 가장 담백한 위로다.

정소연 에프엔미디어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