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을 영원으로 보지 못하는 자는 죽을 수밖에 없단다.” 2016년 어느 날, 여행 중이던 김겨울 작가는 누군가로부터 이런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그는 ‘이 문장을 언젠가는 어떤 식으로든 써야겠다’고 결심했다. 이후 책을 추천하는 유튜브 채널 ‘겨울서점’을 열어 29만 명의 구독자를 모으고 <유튜브로 책 권하는 법> <겨울의 언어> <우화들> 등 에세이, 시를 넘나들며 열 권이 넘는 책을 펴내도록 이 문장을 안착시킬 자리를 찾지 못했다. 김 작가는 최근 펴낸 첫 사진책 <모르는 채로 두기>에 이르러 이 문장을 인용하며 “일어났던 모든 일이 사라진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 이 모든 것은 순간이 될 것이다”고 적었다. “김겨울의 사진기는 발이 가볍다”첫 사진책을 펴낸 직후 만난 김 작가는 “오래도록 마음에 품고 있던 문장이 꼭 맞는 자리를 찾아 기쁘다”며 웃었다. 이 책에는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15년간 찍은 사진 90여 장과 15편의 글이 실렸다. 사진은 순간을 영원으로, 영원을 순간으로 기록하는 일이다. 순간과 영원을 넘나드는 짧은 글은 마치 운문처럼 큰 보폭으로 함축된 사유를 담았다. 김 작가는 “이번 책을 쓰면서 제가 그동안 가장 꿈꿔온 글쓰기를 자유롭게 하고 있다는 생각에 즐거웠다”고 말했다.
책에 실린 사진은 제목 ‘모르는 채로 두기’가 일러주듯 낯선 타인에 대한 것들이다. 이른바 스트리트 포토(street photo). 우연히 길거리를 오가다 눈에 닿은 사람들을 연출 없이 찍었다. 김 작가는 “제가 항상 찍고자 하는 것은 사람들”이라며 “길에서 잠깐 마주친 사람에게서 보이는 어떤 순간, 그 사람에게서 이야기를 읽어내는 작업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 사람에 대해 전혀 모르잖아요.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연이 있는지 전혀 모르는데 이 풍경에 그 사람이 놓여 있는 장면 자체가 어떤 정조로 다가올 때가 있는 거죠.” 사진작가이자 시인인 이훤은 “김겨울의 사진기는 발이 가볍다”고 평하기도 했다. 낯선 뒷모습에서 이야기를 찾아내는 일스트리트 포토 중에서도 캔디드 포토(candid photo). 피사체에 촬영 사실을 미리 알리지 않고 연출 없이 순간을 포착한 사진들이다. 카메라를 의식하는 순간 카메라로 담으려던 정경이 훼손된다. 피사체가 될 계획이 없던 누군가의 시공간을 침범하는 일이기도 하다.
책을 펼치면 제목 ‘모르는 채로 두기’를 적은 내지에 이어진 첫 문장은 이렇다. “그러나 슬픔의 소실점에 서 있기”. 소실점은 먼 거리와 입체 정보를 해석하기 위해 인간의 눈이 만들어낸 일종의 착시다. 실제로는 평행한 철길이 저 멀리서 하나로 합쳐져 보이는 점처럼 사진은 타인과 거리를 유지하되 타인에게 나의 한계 안에서 최선을 다해 수렴하는 일이다.
사진책에 실릴 사진의 순서는 대체로 정재완 북디자이너(영남대 교수)와 상의해 정했지만 “강조하고 싶은 사진은 미리 추려두고 작업을 시작했다”고 했다. 도입부 사진은 홍콩의 길거리에서 비닐봉지가 금방이라도 찢어질 듯 무거운 짐을 양손에 들고 서 있는 남자의 뒷모습으로, 인생 첫 카메라인 리코 GRD2로 찍었다. 마지막 사진은 짐수레를 끌고 5차선 도로를 무단횡단하는 노인과 그 뒤를 따르는 또 다른 행인의 모습이다. “사진을 찍다 보면 이 사람이 함부로 어떤 상태에 놓여 있다고 판단할까 봐 조심스럽죠. 얼굴을 프레임 밖으로 보내거나 뒷모습을 찍은 이유예요. 그렇지만 그렇게 모르는 채로 두기만 하면 사진을 찍을 이유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제가 하는 일이 뭐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멀리서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어요.”
사진을 찍으면 일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지느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세상을 다르게 보려 노력하게 되죠.” “책은 나에게 도파민 창고”이 사진책의 렌즈는 ‘타인을 독해하는 일’을 향해 있다. 그건 김 작가가 그간 책을 읽고 유튜브로 소개하거나 서평과 시를 써온 일과 닮아 있다. 그는 책에 이렇게 적기도 했다. “사진은 변형된 빛의 사각형이 세계일 수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서 탄생한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가 거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 사진은 이해할 수 있으면서도 이해할 수 없다는 모순을 유지하는 일이다.”
김 작가는 올해로 10년 차 북튜버(책+유튜버)다. 오랜 시간 책 읽는 일을 업으로 삼는 데 질리진 않을까. 김 작가는 “책은 ‘도파민 창고’라서 질리지 않는다”며 웃었다. “사람이 제공할 수 있는 쾌락의 한계치는 사실 뻔하거든요. 특히 영상은 많은 자본이 들어가다 보니 예상되는 자극을 안정적으로 수급하는 재미가 있죠. 그런데 책은 그렇지 않거든요. 도파민의 천장이 의외로 높은 매체라고 생각해요.”
그는 라디오 DJ, 작가로도 활동해 왔고 현재 고려대 철학과 대학원생이다. 이날 인터뷰 이후 일정으로 “이다혜 작가의 ‘오래된 세계의 농담’ 북토크 사회를 볼 예정”이라고 했다. 그는 자신의 업을 뭐라고 정의할지 궁금했다. 김 작가는 “결국 중심에 있는 건 어쨌든 읽고 생각하고 쓰는, 언어로 이뤄지는 활동”이라며 “유튜브든 대학원이든 강연이든 똑같은 일을 다른 모습으로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사람들이 제가 많은 도전을 한다고 오해하는데, 북튜버도 어쩌다 보니 개척자가 된 거지 처음부터 대단한 각오가 있었던 건 아니에요. ‘해보고 재밌으면 계속하고 아니면 말고’ 하고 가볍게 시도하는 편이에요(웃음).”
그는 책 말미에 이렇게 적었다. 사진을 늘 두려워해 왔다. 그러나 두렵지 않았다면 찍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내가 글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피아노를 두려워하는 것처럼. 만들어내는 모든 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두려움이 경이의 짝이기 때문이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