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 이후 한국 창작뮤지컬은 해외 원전이나 인물을 바탕으로 한 작품들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해 왔다. 이는 제작·유통 환경, 시장 확장 전략 등 여러 요인이 맞물린 결과로도 읽힌다.
그러나 최근에는 근현대나 전통 서사를 토대로 한 작품들 역시 관객층을 넓히며 의미 있는 성과를 내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2025년 연말에서 2026년 초 사이, 조선 전기 장영실이 유럽의 다빈치를 만난다는 설정으로 쓰인 동명의 소설을 뮤지컬화 한 뮤지컬 <한복 입은 남자>와 최인호 작가의 소설 『몽유도원도』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 <몽유도원>이 대극장에 올라왔다.
두 작품은 대극장 창작뮤지컬에서는 잘 시도되지 않았던 한국적 소재를 다룬다는 점 이외에도, 서양 오케스트레이션에 국악기를 더했다는 점에서 유사한 경향을 보였다.
뮤지컬 <몽유도원>은 이전 2002년 뮤지컬 제작사 에이콤이 선보였던 <몽유도원도>를 수정하여 재개막한 작품이다. 이번 작품에는 극작 안재승, 작곡 오상준, 연출 윤호진이 참여했으며, 국악기를 적극적으로 사용한 음악이 주가 되는 만큼 뮤지컬 배우와 함께 정가 가객 하윤주(아랑 役), 소리꾼 정은혜(비아 役), 소리꾼 윤제원(도미 役 얼터네이트)을 캐스팅해 음악적 정체성을 더욱 전면화했다.
‘몽유도원’이라는 제목을 들으면 연쇄적으로 안견의 <몽유도원도>가 떠오른다. 그렇지만, 이 작품은 안평대군이 꿈에서 도원을 본 광경을 그린 이 그림과는 전혀 상관없는 도미 설화를 다룬다.
뮤지컬 <몽유도원>은 도미 설화에 작가의 상상력을 더한 작품으로, 어느 날 백제의 왕인 여경의 꿈속에 나타난 신묘한 여인을 찾던 여경이 우연히 아랑을 만나게 되면서 도미와 여경이 대척하게 되는 여정을 그린다. 이 속에서 도미와 아랑, 그리고 여경의 꿈은 각자의 도원에 도달하는 것이 되며, 이에 작품에서는 ‘꿈’과 ‘도원’이라는 단어가 반복되며 강조된다.
이때 단순히 도미 설화를 구현하는데 멈추지 않고, 도가와 무속 신앙을 중심으로 한국적 정서를 강조하면서 한국인의 전통적 세계관과 사랑을 뮤지컬이라는 현대 공연예술 장르의 어법으로 다시 그려내며 한국 뮤지컬만의 독특한 색채를 그려냈다. 더불어 작품은 한국의 전통 민요와 춤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무대 배경은 한국의 미술 중 하나인 수묵화를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한국만의 멜로드라마를 그리다
뮤지컬은 기본적으로 멜로드라마의 전개를 따른다. 멜로드라마(melodrama)는 흔히 오늘날에는 로맨스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인식되지만, 노래(melo)와 극(drama)이 결합된 말로 음악극을 말한다.
이때 전반적인 플롯의 전개는 선한 주인공이 고난을 겪다가 결국 승리를 거두는, 권선징악의 구조를 따른다. 한마디로 말하면 뮤지컬은 주인공이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다룬다. 이 과정에서 남녀의 사랑이 주요 소재가 되며, 주인공들의 사랑을 깨뜨리려고 하는 악인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뮤지컬 <몽유도원>의 소재가 되는 도미 부부 설화는 『삼국사기』에 수록된 한국의 설화로 삼국 시대 백제 개루왕(혹은 개로왕) 당시의 인물인 도미와 그 부인 아랑을 다룬 이야기이다. 사회적 신분이 높은 자가 위계적 권력으로 신분 낮은 이의 아내를 강제로 취하려다 좌절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관탈민녀형 설화로 불리기도 하는 만큼, 이 작품에서 선인은 사랑을 끝까지 지키려는 도미와 아랑이고, 악인은 그 사랑을 깨뜨리려 하는 개루왕의 모티프인 여경이 된다.
이때 사랑은 단순히 낭만적인 것이 아니다. 이 작품에서 도미와 아랑의 사랑은 한국의 전통 신앙 중 하나인 도가를 중심으로 펼쳐지며, 아랑을 향한 여경의 사랑 또한 한국의 전통적인 세계관의 흐름 속에서 나타난다. ‘스스로 가꾼 땅에서 자신만의 방법으로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도미와 아랑의 모습은 자연과 하나가 되어 자연의 흐름대로 살고자 하는 도가의 삶의 방식을 대표한다.
목지족을 이끄는 수장인 도미와 함께하며 도미와 아랑의 결혼식을 주관하는 무녀 비아의 모습은 한국인에게 뿌리 깊게 내재해 있는 무속신앙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때 결혼식에서 등장하는 오리가 새겨진 솟대는 부부의 사랑과 화합을 상징하는 청둥오리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하고 이들이 머무는 구역이 삼한 시대 천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신성 지역인 소도와 비슷한 성격을 띠는 장소임을 보여주는 듯싶기도 하다. 특히, 판소리의 여러 기원설 중 무가 기원설도 있는 만큼, 비아 역을 소리꾼이 수행하는 모습에 정당성이 부여된다.
뮤지컬 <몽유도원>은 여경, 도미와 아랑이 각각 자신의 도원을 찾아 나가는 여정을 다룬 작품이다. 도원은 곧 이들의 꿈이 되는 만큼, 작품에서 ‘꿈’과 ‘도원’은 반복해서 발화된다. 작품은 여경의 꿈속에 아랑이 등장해 아랑이 여경의 꿈이 되는 넘버 ‘몽유도원’으로 시작해 아랑과 도미가 우여곡절 끝에 다시 만나 자신들만의 도원으로 돌아가는 넘버 ‘다시 도원’으로 끝난다.
여경은 아랑과 함께하는 도원을 꿈꿨고, 도미와 아랑은 서로 함께하는 도원을 꿈꿨던 만큼 이들 모두에게 도원은 ‘사랑하는 이와 함께하는 곳’이었다. 도원은 도가의 이상향으로 인간 세계의 다툼과 욕망이 없는 평온한 공간이다. 그렇기에 이 작품에서 도원은 특정한 장소라기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평온하게 존재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러나 동시에 도원은 무위자연의 삶을 사는 공간으로, 소박하고 다투지 않는 공동체 공간의 성격을 띤다. 이런 맥락에서 자연과 함께 서로를 위하는 삶을 살던 도미와 아랑은 자신들의 도원으로 향할 수 있었던 반면, 남의 것을 탐하고 욕망에만 눈이 멀었던 여경은 자신의 도원에 갈 수 없게 된다.
사실 이런 도가적 맥락은 한국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가령 2024년 국립극장 세계 음악극 축제의 일부로 상연되었던 광둥 오페라 <죽림애전기>에서도 도가를 바탕으로 한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다뤘으며, 이때 남자는 검, 여자는 거문고로 표현되었다. 더불어 이 작품의 경우 중국 전통 공연의 현대적 변용 및 확장인 공연이었음에도 여전히 중국 전통을 지키고 무대 위에서 구현함과 동시에 전통 회화를 적극적으로 무대 예술로 활용했다.
그리고 이는 뮤지컬 <몽유도원>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한국적 소재를 차용한 작품들에서도 전통 미감을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해 왔지만, <몽유도원>은 그중에서도 수묵화의 질감과 여백을 무대 전면의 시각 언어로 끌어올린 점이 두드러진다. 물론 수묵화가 한국에는 고려 즈음 들어온 양식이기는 하지만, 지금 시대에 현대적 예술 장르로서 재해석해 그려내는 도미 설화 이야기인 만큼 이질적으로 인식되기보다는 하나의 미학적 선택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뮤지컬 <몽유도원>은 전통을 그대로 재현하는 방식과는 또 다른 결로, 전통 어법을 뮤지컬의 장르 문법 속에서 변환, 재구성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흔히 일상에서 “여기가 무릉도원이네”라는 말을 쓸 만큼 도원이라는 단어에 익숙하다. 도원을 찾는 인물들의 말은 “도원이 어데인고”로 시작하는 판소리의 적벽가 중 ‘도원결의’를 떠올리게 하고, 도원으로 향하는 아랑과 도미의 모습과 대비된 채 외로운 죽음을 맞이하는 여경의 모습은 관객으로 하여금 나의 도원은 무엇이며, 나는 그곳에 어떻게 도달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또한, ‘꿈(夢)’이란 과연 무언가에 대해도 생각해 보게 된다. 이 작품에서 ‘꿈’은 잘 때 꾸는 꿈과 이루고자 하는 꿈이라는 맥락에서 중의적 의미를 가진다. 그런데, 이때 여경이 잠들 때마다 꾸는 꿈은 단순한 꿈이 아니라 예지몽과 유사한 성격을 띤다. 한국인은 아기를 가지면 태몽을 꾸고, 예지몽을 꾸는 경우도 더러 있다. 그런데, 이런 꿈은 한국인만이 꾸는 특별한 특징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개인이 꾼 꿈에서 여경, 도미와 아랑 간의 사랑을 둘러싼 갈등이 일어나는 이야기 전개는 한국적인 무속신앙과 특징을 여실히 반영한 한국적인 멜로드라마적 전개라 할 수 있다. <오크라호마!>,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사운드 오브 뮤직>, <레 미제라블> 등과 같은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 뮤지컬을 떠올려보면 서구의 당대 상황이나 인종, 계층 간의 갈등, 기독교나 천주교와 같은 종교와 맞닿아 플롯이나 사랑이 전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맥락에서 기존에 아랑과 도미의 사랑, 정절을 지킨 아랑의 모습에 초점을 뒀던 <몽유도원도>에 ‘도가’를 비롯한 한국 전통 무속신앙을 결합하여 재해석해 낸 <몽유도원>은 한국적 정서를 보다 잘 보여주는 한국 뮤지컬이라 평하고 싶다.
국악과 전자음악의 대비, 피리와 아리랑의 반복
규격화되고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공간이자 여경이 머무는 궁궐은 더 많은 것을 갖길 바라는 인간의 욕망이 가득한 공간이다. 반면, 도미와 아랑을 중심으로 목지족이 살아가던 곳은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공간으로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그들은 자신들이 일군 땅에서 자신들의 방식대로 살아간다.
이러한 대비를 보여주듯 전자에는 전자음악이, 후자에는 국악이 대비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궁궐에서 자신의 가문에서 왕비를 배출하려 서로를 견제하는 신하 해수와 진림이 부르는 노래에서도 드럼과 일렉기타를 필두로 한 전자음악이 강하게 들어오며, 왕권과 신권의 견제, 그리고 가문 간의 견제 장면의 시작과 끝에는 항상 박의 사운드를 삽입해 인위성을 더욱 강조했다. 아랑을 향한 여경의 욕망이 점점 강해질수록 전자음악 또한 자신의 존재감을 더욱 분명하게 드러낸다.
이와 대조적으로 도미와 여경을 포함한 목지족의 음악은 국악기가 중심을 이룬다. 목지족의 특성으로 피리를 가지고 다니는 것이 극 중 설정된다. 이에 목지족을 대표하는 도미는 항상 허리에 피리를 차고, 도미와 아랑이 등장할 때마다 피리 소리가 등장하며, 아랑이 도미를 찾으러 가는 여정 속에서도 반복적으로 들린다.
도미와 여경이 부족의 미래를 건 바둑 담판을 두는 장면에서 작품은 사물놀이 혹은 풍물놀이 음악을 선택한다. 원래 신명 나는 이 음악은 뮤지컬 <몽유도원>은 극한의 긴장감을 조성하는 음악으로 변환한다. 특히 꽹과리와 징 사운드는 긴장감을 더욱 강하게 조성시키는 역할을 한다. 여경에 의해 눈이 멀고 배를 타고 추방당하는 순간에도 도미의 음악은 비극적이지 않고 가야금을 필두로 한 장조의 밝은 음악이 전개된다.
이어서 등장하는 도미의 하이라이트 넘버이자 1막의 마지막 넘버인 ‘어이해 이러십니까’는 민요 뱃노래의 멜로디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노동요로 불리던 뱃노래는 자신의 운명에 한탄하면서도 삶에서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아랑을 다시 찾겠다는 도미의 결연한 다짐으로 재해석되었다.
그리고 이 넘버의 멜로디는 2막에서 아랑을 그리워하며 찾는 여경의 노래에서 리프라이즈되며 아랑을 향한 두 남자의 서로 다른 사랑을 보여준다. 또한 아랑을 찾지 못한 여경과 도미를 찾지 못한 아랑 모두 지옥 속에 있는 듯한 심정의 공유되며 아랑을 찾아 헤매는 여경의 전자음악 멜로디가 리프라이즈된다.
도미의 시신 대신 짚으로 만든 도미의 인형을 배에 띄워서 장례를 치르는 아랑과 억울한 일을 당한 도미의 영혼을 위로하는 비아의 노래는 비나리의 멜로디를 차용한 음악의 채워지며 동시에 무굿의 기능을 한다.
넘버 ‘도원의 혼례’에서 시작된 아리랑의 멜로디는 이후 넘버 ‘목지의 옛 노래’, ‘도원은 어디에’ 등으로 이어지며 도미와 아랑의 부재로 인하여 부족을 이끌게 된 비아가 부족들과 등장할 때마다 리프라이즈된다. 즉 ‘아리랑’은 부족을 중심으로 작동하면서 동시에 결국 도원을 찾아가는 도미와 아랑까지 포함한 음악이 된다.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민요 중 하나인 ‘아리랑’은 ‘참된 나를 찾아서’, ‘사랑하는 님’ 등의 여러 기원설이 있으며, 노동요로 잘 알려져 있다.
본 작품은 기존 여러 지역의 아리랑 멜로디를 차용하지 않고, 뮤지컬 <몽유도원>만의 아리랑 멜로디를 만들어냈으며, 아리랑은 도미와 아랑을 필두로 한 목지국을 상징하는 노래로서 기능한다. 아리랑의 반복은 공동체를 묶는 장치로 강하게 기능하지만, 리프라이즈 구간에서 리듬, 화성, 편성의 변주 폭이 조금만 더 넓었다면 반복의 효과가 단조로움보다 더 입체적으로 체감되었으리라 생각한다.
더불어 정가의 질감이 장면 사이사이 인상적으로 스며드는 만큼, 판소리 어법 역시 특정 순간에서 더 전면적으로 펼쳐질 수 있는 구간이 있었다면 작품의 음향 스펙트럼이 한층 넓어졌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남은 목지족들은 읍차인 도미와 아랑을 잃었지만, 비아를 필두로 해 자신들이 다시 살아갈 땅으로 이동할 뿐, 남은 아랑에게 자신들을 책임지라고 하거나 지도자로서의 임무를 강요하지 않는다. 아랑은 도미를 찾아서, 도미는 아랑을 찾아서, 비아와 부족민들은 자신들만의 도원을 찾아 각자의 삶을 꾸려나간다.
다시 재회한 아랑과 도미는 있으면 먹고, 없으면 굶는 삶을 살면서 도미의 피리 소리에 맞춰 아랑의 춤을 추는 호접지몽의 삶을 살아간다. 반복되는 피리 소리는 여러 악기와 얽히고 섞이며 신비로운 분위기를 형성한다. 이는 도원을 찾아 헤매는 여경이 아니라, 원래 살던 도원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도미와 아랑의 회귀적 성격을 강조한다.
다시 만나 이들이 자신들만의 도원으로 가는 순간 아리랑(넘버 ‘목지의 옛 노래’)의 멜로디가 흘러나오며 뮤지컬 <몽유도원>은 산다는 것은 나만의 도원을 찾는 것이며, 이것이 가장 찬란한 삶임을 관객에게 전한다. 그리고 유유자적하며 자신의 삶을 만들어 나가는 도미와 아랑의 모습, 가질 수 없는 것을 원하다가 파멸하는 여경의 모습은 과연 작금의 시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지 행복을 느끼며 살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한국 무용을 이용한 코레오그래피를 선보이다
음악과 장면에 맞추어 가장 잘 맞는 춤을 선보이며 의미를 부여하는 무용 연출을 ‘코레오그래피(choreography)’라고 한다. 브로드웨이에서는 대표적으로 발레리노 출신의 무용 연출가 제롬 로빈스의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와 밥 포시의 <시카고>가 있다.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푸에리티코계 이민자와 유럽계 백인 이민자의 대비를 각각의 음악과 춤을 통해 명징하게 드러내고 있으며, 뮤지컬 <시카고>에서 밥 포시는 자신의 시그니처 춤, 일명 ‘포시 스타일’이라고 불리는 허벅지 위에서 손 돌리기, 박자에 맞추어 엄지와 중지를 튕겨 소리내기 등을 적극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밥 포시는 뮤지컬에서 보조적 수단으로 평가받던 춤과 안무를 하나의 신체적 언어로 만들었다. 이렇게 브로드웨이 뮤지컬에서는 각 인물의 정체성에 따라 춤이 부여되는 양상을 보였으며, 더 나아가 뮤지컬 <아웃사이더스!(Outsiders!)>에서는 무용을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해 동선의 연장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한편, 한국 뮤지컬에서 무용은 작품에 따라 비중의 편차가 컸고, 서사를 적극적으로 견인하는 방식이 항상 전면화되어 왔다고 보기는 어렵다.
뮤지컬 <몽유도원>에서 안무를 맡은 서병구는 한국의 전통춤을 적재적소에 사용하면서도, 전통을 복원하는데 멈추지 않고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내면서 효과적인 코레오그래피를 구현해 냈다. 처음 여경의 꿈에 아랑이 등장하는 장면의 춤은 부채춤을 떠올리게 하고, 이후 목지족 사람들이 추는 춤은 아리랑 춤과 같은 민중의 춤에 방점을 두고 있다. 여경과 아랑의 결혼식 장면에는 궁중정재를 바탕으로 처용무, 춘앵전과 같은 춤이 사용된다.
특히 주목할 만한 장면은 도미와 여경이 바둑을 놓는 장면이다. 검정 돌과 흰 돌로 나누어져 각자 서로의 세력을 구축하며 승리를 쟁취해 나가는 바둑을 형상화하듯, 검정색 옷과 흰색 옷을 입은 무용수들이 집단을 구축한 채 다양한 전통춤을 현대적으로 풀어낸 서울시무용단의 <일무>를 떠올리듯 수려한 움직임을 수행해 나간다.
일련의 흐름에서 연쇄적으로 펼쳐지는 한국 전통 무용의 전개 속에서 ‘맺고, 얼렀다, 푸는’ 한국 무용의 기본적인 움직임을 중심으로 정중동의 리듬이 만들어지면서도 동작과 동작 사이의 순간, 느린 호흡 등이 만들어내는 여백의 미가 온전히 드러나게 된다. 그러면서도 민속춤과 궁중정재를 뚜렷하게 구분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며, 오히려 서양의 춤과 어떻게 구분되어 우리만의 코레오그래피를 형성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둔다.
앞선 도가 사상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의 재해석, 서양 음악과 국악 음악의 적절한 혼합과 전통민요 등의 차용과 함께 전개되는 한국적 움직임을 기반으로 한 무용 연출은 이 작품에 있어 다음과 같은 지점을 시사한다.
뮤지컬 <몽유도원>은 한국적 소재를 차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적 세계관이 뮤지컬이라는 장르 안에서 어떻게 작동할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한국 창작뮤지컬이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가’에 멈추지 않고, ‘어떤 언어로 이야기할 것인가’라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이정표로 평가할 만하다.
김소정 뮤지컬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