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무조건 안 사준다" 큰손의 변심…글로벌 국채시장 패닉 오나 [글로벌 머니 X파일]

입력 2026-02-15 07:00
수정 2026-02-15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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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글로벌 연기금들이 세계 장기 국채의 '구조적 매수자'에서 '선별적 매도자'로 전환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항상 국채를 대규모로 사줄 것이라고 믿었던 연기금의 전략이 바뀌었다는 뜻이다. 세계 각국이 인구 고령화에 따라 연금제도 개혁에 나서면서 이런 현상이 나타났다는 분석이 나온다. 급증하는 연금 지급액18일 미국 사회보장국(SSA)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미국 사회보장 은퇴근로자 평균 월 급여액은 2074.53달러에 달했다. 5000만명 이상의 은퇴 근로자에게 해당 급여가 지급되고 있다. 기여금 유입보다 연금 지급액이 늘어나면서 연기금은 부족한 현금을 마련하기 위해 기존 보유 자산의 리밸런싱과 매각 압력에 직면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980년대 이후 40여년간 글로벌 자본시장의 가장 견고한 축 중 하나는 연기금의 구조적이고 비탄력적인 장기채 매수세였다. 베이비붐 세대가 노동 시장의 주력으로 활동하면서 전 세계 연금 시스템은 지급해야 할 연금 급여액보다 거둬들이는 기여금(보험료)이 많은 이른바 '인구통계학적 배당'의 혜택을 누렸다.

이런 연기금은 은퇴 세대에게 지급할 연금 재원을 보전하기 위해 20~30년 이상의 긴 만기 초장기 국채를 금리 수준과 무관하게 기계적으로 사들였다. 전 세계 금리의 상단을 억누르는 역할을 해왔다는 분석이다. 영국 런던정경대학교의 디미트리 바야노스 교수는 전미경제연구소(NBER) 발표 논문을 통해 "만기 15년 초과 채권의 전형적 고객층은 연기금이다"이라며 "이들의 '가격 비탄력적' 수요가 채권 시장의 수급을 지배해 왔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최근 글로벌 인구 구조의 급격한 고령화로 연기금이 연금 수급자들에게 현금을 돌려주기 위해 보유 자산을 매각해야 하는 이른바 '거대한 현금화'의 시대가 왔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란 변화는 네덜란드의 관련 제도 개혁의 계기가 됐다.

네덜란드는 올해부터 1조 5000억 유로 규모의 연금 자산을 기존 확정급여형(DB)에서 집합적 확정기여형(DC)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개혁에 돌입했다. 연금 지급액이 투자 실적에 연동되는 DC 체제로 전환되면서 부채를 100% 헤지해야 하는 규제적인 강제성이 사라졌다.

연기금은 더 이상 초장기 채권을 무조건 사들일 이유가 감소했다. 네덜란드 중앙은행은 이 개혁으로 만기 25년 이상 유럽 장기 국채 시장에서 최소 1000억 유로에서 최대 1500억 유로 규모의 구조적 수요가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최근 각국 정부는 재정 적자로 국채 발행 규모를 확대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기업 아이엔지(ING)의 거시경제 분석 조직인 '아이엔지 싱크'에 따르면, 올해 연간 유로존 국채 시장의 순공급 전망치는 9300억 유로에 달한다. 미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미국 재무부가 발표한 올 1분기 민간 대상 순시장성 차입 추정치에 따르면, 해당 분기에만 5740억 달러 규모의 국채 물량이 쏟아질 예정이다.

미셸 터커 아이엔지 수석 금리 전략가는 "기록적인 국채 공급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과거처럼 기계적으로 채권을 사는 주체가 아니라 수익률을 따지는 '가격 민감형' 투자자들을 유인해야 한다"며 "이는 필연적으로 금리 상승을 요구한다"고 분석했다. 장기 국채 금리의 구조적 상승이런 영향으로 이른바 '기간 프리미엄'이 시장에 확산했다. 기간 프리미엄이란 투자자가 장기간 자금을 묶어두는 불확실성을 감수하는 대가로 요구하는 추가적인 위험 보상 수익률이다. 미국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 경제데이터(FRED)에 따르면, 지난 6일 기준 10년물 제로쿠폰 기간 프리미엄은 0.5990%를 기록했다. 10년 동안 미국 국채를 보유하는 것에 대해 시장이 약 0.6%의 추가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단기 금리가 하락해도 장기 시장 금리는 쉽게 떨어지지 않는 현상이 굳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11일 미국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4.18%, 30년물은 4.82%를 기록했다. 단기물인 2년물 금리(3.52%)를 웃돈다.

이른바 '가파른 베어 스티프닝'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채권 가격이 하락(베어)하면서 특히 장기물 금리가 더 빠르게 상승해 수익률 곡선이 가팔라지는(스티프닝) 흐름을 말한다. 쉽게 말해 시장이 장기적으로 더 높은 물가와 재정 부담 또는 국채 공급 확대 가능성을 반영해 장기 금리를 더 높게 요구하고 있다는 의미다.

최근 국채 시장의 변화는 은행, 보험, 주식, 외환 등 글로벌 금융 산업과 실물 경제 전반으로 영향을 미친다.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곳은 상업은행과 생명보험사 등 전통적 금융기관의 자산부채관리 영역이다. 단기 예금으로 자금을 조달해 장기 대출을 실행하는 상업 은행의 입장에서는 장단기 금리차가 확대되는 스티프닝 현상은 신규 대출의 순이자마진을 확대시키는 단기적 호재다.

그러나 금리의 절대적인 수준이 상승하면서 과거 저금리 시절 만기 보유목적이나 매도가능증권(AFS)으로 대거 편입해 둔 국채 포트폴리오에서 막대한 규모의 미실현 평가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이는 은행의 자본 적정성 비율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생명보험 산업도 비슷하다. 보험사는 계약 기간이 수십 년에 이르는 장기 상품을 주로 취급한다. 이 때문에 매년 새롭게 유입되는 보험료를 다시 투자해 수익을 올린다. 금리가 상승하는 시기에는 이런 재투자 수익률이 높아진다는 장점이 있다. 같은 자금을 운용하더라도 더 높은 이자를 받을 수 있어 수익성 개선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문제는 회계 및 건전성 규제 체계다. 현재 국내에서는 시가평가를 기반으로 한 신지급여력제도(K-ICS)가 적용되고 있으며, 유럽에서는 'Solvency II' 체계가 운영되고 있다. 이 제도들은 보험사의 자산과 부채를 시장 금리에 맞춰 평가하도록 규정한다.

금리 변동성이 커질 경우 자산과 부채의 가치가 서로 다른 속도로 움직이는 ‘비대칭 변동’이 발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금리가 급등하면 채권 가격은 하락하지만, 보험 부채의 현재가치 역시 동시에 변동한다. 문제는 이 두 요소의 변화 폭이 항상 같지 않다는 점이다. 그 결과 보험사의 자본 비율, 즉 지급여력 비율이 단기간에 크게 흔들릴 수 있다.

특히 초장기 금리 구간에서 기간 프리미엄의 변동성이 확대되면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다. 보험사는 자산과 부채의 만기 구조 차이인 ‘듀레이션 갭’을 줄이기 위해 금리 스와프 등 파생상품을 활용해 위험을 헤지한다. 하지만 장기 금리 변동성이 커질수록 이런 헤지 비용이 급격히 상승한다. 결국 금리 스와프 거래에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재무적 부담이 가중되는 구조다. 주식시장도 영향주식시장, 사모펀드, 벤처캐피털(VC) 등도 국채 금리 상승의 충격을 받고 있다. 기업과 주식의 가치는 기본적으로 미래에 벌어들일 것으로 예상되는 잉여현금흐름을 현재 시점의 가치로 환산해 계산한다. 이때 기준이 되는 것이 무위험 이자율인 장기 국채 금리다.

금리가 오르면 미래의 돈을 현재 가치로 바꿀 때 적용하는 할인율이 함께 상승한다. 할인율이 높아질수록 미래 현금의 현재 가치는 더 크게 깎인다. 결국 기업의 밸류에이션은 구조적으로 낮아질 수밖에 없다.

특히 인공지능(AI) 등의 기술·성장 기업들이 더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이들 기업은 당장의 이익보다는 먼 미래에 폭발적으로 성장해 큰 수익을 낼 것이라는 기대를 바탕으로 높은 가치를 인정받아 왔다.

하지만 금리가 상승하면 멀리 있는 미래 이익일수록 더 큰 폭으로 가치가 줄어든다. 그 결과 주가수익비율(PER)이나 매출 대비 기업가치 같은 주가배수가 빠르게 축소되는 ‘멀티플 수축’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한때 높은 성장 프리미엄을 누리던 종목들이 급격한 조정을 겪는 이유다.


글로벌 채권시장의 수급 역전 현상은 한국 금융시장에 영향을 미친다. 글로벌 기간 프리미엄의 상승은 자본의 국경 간 자유로운 이동을 통해 한국의 장기 금리에 곧바로 전이되기 쉽다. 이는 한국은행의 독자적인 통화정책 운용 여력을 제약하는 족쇄로 작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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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