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트레이드 마크인 관세 정책에 대해 미국 의회 내에서 반발 기류가 확산하고 있다. 관세 정책으로 물가가 상승하는 데 대한 우려, 동맹국에 대한 과도한 압박이 불러올 반발에 대한 우려 등으로 공화당 내 이탈표가 늘어나면서 관세 정책을 뒤집으라는 내용의 결의안이 의회에서 잇달아 통과되는 중이다. 중간선거를 앞두고 여론에 민감한 의원들이 점점 더 트럼프 대통령의 거수기 노릇을 하기를 거부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결의안이 상하원을 모두 통과하더라도 트럼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서 이를 무력화할 수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리더십은 이미 정권 초기보다 약해졌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트럼프 “심각한 대가” 위협미 하원은 11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의 캐나다에 대한 25% 관세 부과를 철회하기 위한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민주당 의원들이 낸 결의안에 6명의 공화당원이 가세하면서 찬성 219표, 반대 211표로 통과됐다. 현재 하원 내 구성은 공화당 218명, 민주당 214명이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멕시코·캐나다 무역협정(USMCA) 체결국가인 캐나다에 펜타닐·국경 안보를 이유로 25% 관세를 부과했다. USMCA 적용 상품을 제외시키면서 실질적인 관세율은 다소 낮아졌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수시로 다양한 이유를 들어 캐나다에 더 높은 관세를 매기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공개적으로 여러 차례 반기를 들었던 토머스 매시(켄터키) 의원을 비롯해 케빈 카일리(캘리포니아), 돈 베이컨(네브라스카), 댄 뉴하우스(워싱턴), 브라이언 피츠패트릭(펜실베이니아), 제프 허드(콜로라도) 의원이 공화당 당론에서 이탈했다. 반면 민주당의 재러드 골든(메인) 의원은 이 결의안에 반대표를 던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즉각 반발했다. SNS에 “하원이든 상원이든 관세에 반대하는 공화당 의원은 선거 시즌이 되면 심각한 대가를 치를 것”이라면서 “예비선거도 포함된다”고 적었다. 자신이 지지하지 않으면 선거 당선이 어려울 것이라는 얘기다.
○대통령 거부권 행사 가능하원 통과만으로 결의안이 효력을 갖는 것은 아니다. 상원과 하원을 모두 통과해야 하고 대통령이 서명해야 실제 법적 효력이 발생한다. 그러나 상원은 이미 지난해 유사한 결의안을 여러 차례 통과시킨 이력이 있다. 특히 작년 10월에는 캐나다와 브라질에 대한 관세, 보편적 기본관세 등에 대한 철회 결의안이 잇달아 통과됐다.
관세에 대한 상원의 비판적인 기조를 그동안 방어해 온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충신인 마이크 존슨 의장이 이끄는 하원이었다. 상원의 결의안을 표결에 부치지 않고 뭉개면서 시간을 끌었다.
그러나 공화당 내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에 대한 불만이 점점 커지면서 이탈자가 6명에 달하게 되자 이런 버티기 전략은 불가능해졌다. 공화당 지도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정책을 지키기 위해 관세 결의안 표결을 수 개월 동안 아예 차단하는 법안을 표결에 부쳤지만, 3명의 이탈자가 나오면서 과반 달성에 실패했다.
결의안이 상하원을 모두 통과할 경우 마지막 관문은 대통령의 서명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하면 결의안이 실행되어 캐나다에 대한 관세조치는 근거를 잃게 된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 확실시된다. 존슨 의장은 결의안 통과 후 트럼프 대통령이 “현 상황을 이해하고 있다”면서 “(관세)정책이 바뀌거나 영향을 받지 않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의회는 이 경우 상하원 각각 3분의 2 찬성으로 거부권을 무효화할 수 있지만, 하원 290표 및 상원 67표를 확보하는 것은 현재 구도에서 불가능에 가깝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베이컨 의원은 이날 기자들에게 “원칙에 따라 투표한 것”이라면서 “네브라스카를 위한 달콤한 제안(회유 시도)도 있었지만, 이것은 네브라스카의 문제가 아니라고 답했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앞으로 몇 주 동안 브라질 대상 관세 등을 철회하도록 하는 결의안을 추가로 표결에 부칠 예정이다. 소수당 의원들은 통상 하원 본회의 표결을 강제할 수 없지만, 트럼프 정부가 관세정책을 위해 도입한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 내 특별 조항 덕분에 가능한 상황이라고 WSJ는 설명했다.
미 의회가 전반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반기를 드는 분위기까지는 아니다. 하원은 이날 유권자 명부 확인을 강화하고 우편 등록을 폐지하는 등 연방정부가 선거 과정 전반에 개입할 수 있게 허용하는 공화당 법안(SAVE)을 찬성 218표로 통과시켰다. 다만 상원에서 민주당이 필리버스터를 사용하면 법안 통과를 저지할 수 있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