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차 전환의 문턱에서, 충전 인프라의 해법을 찾다 [삼정KPMG CFO Lounge]

입력 2026-02-11 11:03
이 기사는 02월 11일 11:03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20세기 초 자동차 산업이 막 시작되었을 당시에는 오늘날과 같은 주유소 인프라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당시 자동차는 기술적으로는 혁신적인 이동 수단이었지만, 연료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체계가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대중화되기 어려운 한계를 안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은 1908년 포드(Ford)의 Model T 출시를 기점으로 급변한다. 자동차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화석연료 기반 차량을 위한 ‘연료 충전소’가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기 시작했고,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의 수 역시 1908년 약 30만 대에서 불과 10년 만에 600만 대 이상으로 급증했다. 기술 혁신과 인프라 구축이 맞물리며 산업 성장이 가속화된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수소 모빌리티 산업 역시 이와 유사한 전환점에 서 있다. 수소 기술은 기후 위기 대응과 친환경 에너지 전환이라는 시대적 요구 속에서 높은 기술적 잠재력을 인정받고 있지만, 그 가능성이 곧바로 산업 경쟁력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이를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수소 생산·저장·운송·충전에 이르는 충전 인프라 네트워크의 구축이 필수적이다. 인프라가 충분히 연결되지 않는다면 수소 모빌리티는 기술적 가능성에 머무른 채, 세계 에너지 지도를 바꿀 실질적 동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결국 산업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은 지속적인 기술 혁신과 함께, 그 기술을 시장과 일상으로 연결하는 인프라를 얼마나 전략적으로 구축하느냐에 달려 있다.

현재 수소는 중장기적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한 핵심 에너지원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재생에너지 기반의 그린수소는 향후 생산비가 지속적으로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2040년경에는 그레이수소(석유화학 공정에서 발생하는 부생수소로, 비용 효율적이지만 이산화탄소 배출이 많음) 대비 비용 경쟁력도 확보할 전망이다.

이미 글로벌 기업과 주요 정부들은 수소 전환을 국가 차원의 전략 과제로 삼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모빌리티는 수소 수요 확대를 견인하는 핵심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 또한 2040년대 모빌리티가 수소의 3대 수요처로 부상하고, 2050년 이후에는 최대 수요처가 될 가능성을 제시한다. 산업의 방향성이 명확해진 만큼, 인프라 구축의 필요성은 한층 더 뚜렷해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현실은 이러한 성장 흐름과 다소 차이가 있다. 한국은 세계에서 수소 승용차를 가장 많이 운행하는 국가 중 하나이지만, 충전 인프라는 이에 충분히 뒷받침되지 못하고 있다. 전체 충전소 수 자체가 부족할 뿐 아니라, 지역별 편차도 크다. 수도권과 같은 주요 권역에서는 충전소 한 곳이 감당해야 하는 차량 수가 많아 대기 시간이 길어지는 반면, 강원·전라·제주 등 지역에서는 충전소가 드물어 충전을 위해 장거리 이동이 필요하다. 이러한 여건은 수소차 이용의 불편을 키우고, 결과적으로 수요 확대를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한국가스안전공사에 따르면 2025년 6월 기준 국내 수소 충전 디스펜서는 약 421기 수준이며, 정부는 2040년까지 이를 1,200기로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구축 속도만으로는 빠르게 늘어나는 차량 보급 속도를 따라가기에는 한계가 있다. 결국 한국은 충전 인프라를 단순히 늘리는 것을 넘어, 지역 간 격차를 함께 해소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다.
수소차 충전 인프라의 확장을 위해서는 세 가지 전략적 방향성이 요구된다.

첫째, 충전 인프라의 공급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는 것이다. 초기에는 튜브트레일러(Tube Trailer) 방식이 공급 유연성 측면에서 강점을 보였지만, 수요가 안정적으로 형성되는 밀집 지역에는 파이프라인, 액화 기반, 온사이트(On-site) 개질 및 수전해 방식 등 장기적 효율성을 갖춘 다양한 수소 공급 방식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

둘째, 네트워크 밀도를 강화하는 전략이다. 유럽연합이 주요 교통 축을 따라 200km 간격으로 수소 충전 인프라를 구축하는 ‘TEN-T’ 전략은 한국에도 유의미한 벤치마킹 사례가 될 수 있다. 이미 구축된 선진 도로망과 주요 교통 거점의 서비스 인프라를 고려하면, 국내에서도 수소 충전 네트워크의 밀도 강화를 충분히 실현할 수 있다.

셋째, 생태계 기반 강화를 통한 국산화와 통합적 산업 기회 창출이다. 한국은 관련 기술 특허 경쟁력은 높지만 핵심 설비 상당 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구조적 한계를 갖고 있다. 반면 독일 린데(Linde)와 프랑스 에어리퀴드(Air Liquide)는 컴프레서·디스펜서·밸브·계측기기 등 다양한 충전소 핵심 설비의 주요 공급자로 평가되며 글로벌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핵심 모듈의 국산화율을 제고하고 설비·운영·금융이 결합된 통합적 사업 구조가 마련될 때 민간 투자는 본격적으로 활성화될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생태계 확장과 국산화 기반을 토대로 한 통합 산업 기회 창출의 선순환 구조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민간 기업과 정부의 역할도 재정의가 필요하다. 에너지 기업은 청정수소 공급망의 해외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장기적 전략을 마련해야 하며, 완성차 기업은 차량 확대와 충전 인프라 투자를 결합하는 양면 전략이 요구된다. 기존 주유소 자산을 활용한 브라운필드형 충전소 전환도 비용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현실적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정부 역시 신설된 기후에너지환경부를 중심으로 예산과 정책 구조를 재정비하고, 차량 보조금 중심에서 인프라 중심으로 전환하는 전략적 판단이 필요하다. 일본 JHyM(일본 수소스테이션 네트워크 유한책임회사)처럼 자동차·에너지·금융사가 공동 투자하는 협력 모델과, 독일 H2 Mobility의 민관 합작 방식은 국내에도 유의미한 참고 사례가 될 수 있다.

수소 모빌리티로의 전환은 단순히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는 문제가 아니라, 인프라를 중심으로 한 구조의 재설계에 가깝다. 지난 수십 년간 모빌리티 산업이 보여준 교훈은 분명하다. 차량은 기술이 만들지만, 시장은 인프라가 연다. 에너지 전환의 흐름 속에서 수소경제에 대한 세계적 관심은 높아지고 있으며, 한국은 수소차 기술 분야에서 이미 의미 있는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이제 남은 과제는 이 기술을 실질적인 시장으로 연결할 수 있는 충전 인프라의 속도와 밀도,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생태계를 구축하는 일이다. 이 기반이 갖춰지는 순간, 한국은 수소경제 전환의 확실한 선도 국가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