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라이프이스트-김성훈의 지속 가능한 공간] 가장 로컬한 것이 가장 글로벌하다…BTS로 이어진 '아리랑'

입력 2026-02-13 17:42
수정 2026-02-13 17:44
선진국의 문화, 우리에게 있는가

2021년, 대한민국은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지위를 변경했다. UNCTAD 설립 57년 만에 최초의 일이다. 세계 10위권 GDP, 높은 소득 수준, 산업화 성공. 자타가 공인하는 선진국이 되었다.

그러나 나는 묻는다. 우리는 진짜 선진국인가? 선진국의 '문화'를 가지고 있는가? 낮은 출산율, 높은 노인 빈곤율, 그리고 심각한 지역소멸. 전국 228개 시·군·구 중 절반이 소멸 위험 지역이다.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어 복합문화공간을 만들지만, 6개월이 지나면 텅 빈다. 서울의 화려함을 복제했지만, 사람들은 오지 않는다.

선진국의 기준이 경제 지표만이 아니라면, 우리는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그 답을, BTS의 아리랑 컴백에서 발견했다.

세계 정상에서 뿌리로 돌아온 이유

세계 정상의 BTS가 선택한 것은 K-POP의 화려함이 아니라, 한국의 가장 오래된 민요 '아리랑'이다. 빌보드를 석권한 그들의 선택, 왜 지금 아리랑인가?

BTS, 봉준호, 오징어게임. 한국 문화는 세계 문화의 중심이 되었다. 건축가이자 지속가능한 공간을 기획하는 기획자로서, 이번 BTS의 선택이 특별한 이유는 내가 마주한 현실 때문이다. 여러 지자체의 공간기획에 참여하며 지역소멸의 절박함 속에서 깨달았다. 로컬을 살릴 수 있는 진짜 힘은, 그 로컬이 가진 '이야기'라는 것을.

글로컬리제이션 - 보편적인 것의 특수화, 특수적인 것의 보편화

사회학자 롤랜드 로버트슨은 글로컬리제이션을 "보편화(세계화)와 특수화(지역화) 경향이 동시에 발생하는 현상" 또는 "보편적인 것의 특수화 및 특수적인 것의 보편화"로 정의했다. BTS가 바로 이것을 증명한다. 한국어로 노래하며 세계 무대에 섰고(특수적인 것의 보편화), 이제 가장 로컬한 아리랑으로 돌아왔다.(보편적인 것의 특수화) 세계화와 지역화는 대립이 아니라 동시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가장 로컬한 것이 가장 글로벌하다.

네 개의 아리랑, 네 개의 정체성

같은 '아리랑'이지만, 지역마다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품고 있다. 경기 아리랑은 1926년 나운규의 영화로 전국화된 신민요로, 세련된 보편성을 가진다. 정선 아리랑은 고려 유신들의 한 시에서 시작된 '긴아라리'로, 산간의 느린 인내를 담는다. 진도 아리랑은 남도토리로 한과 흥을 표현한다. 밀양 아리랑은 세마치장단으로 비극을 희망으로 승화시킨다.

공간기획자의 눈으로 보면, 이것은 완벽한 '글로컬리제이션'의 교과서다. 아리랑이라는 보편적 형식이 각 지역에서 특수하게 변주되고(보편적인 것의 특수화), 그 특수한 지역 아리랑들이 모여 한국을 대표하는 보편적 문화유산이 되었다.(특수적인 것의 보편화)

공간기획자의 고백 - 우리는 무엇을 만들고 있는가

최근 몇 년간 지자체 컨설팅을 하며 반성한다. 건축 설계는 완벽하다. 구조는 견고하고, 마감은 깔끔하며, 동선은 효율적이다. 하지만 공간기획이 실패했다. 누구를 위한 공간인지, 어떤 이야기를 담을 것인지에 대한 기획이 부재했다.

서울의 복합문화시설을 그대로 옮겨놓은 지방 도시의 건물들. 오픈 초기 사람들이 몰려오지만, 6개월 후 텅 빈다. 이것이 '지속가능하지 않은 공간'이다. 우리는 '건물'을 짓고 있지, '장소'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정선의 공간을 기획할 때, 나는 긴아라리의 느린 인내를 프로그램에 담는다. 빠른 이벤트가 아니라 긴 호흡의 워크숍, 세대를 이어온 기술의 전승. 진도의 공간에는 한과 흥의 공존을, 마을회의와 주민 잔치가 어우러지는 커뮤니티를. 밀양의 공간에는 세마치장단의 경쾌함을, 청년 창업과 미래를 향한 혁신을.

중요한 것은 공간기획의 출발점이 '그 지역의 이야기'인가 하는 것이다. 로버트슨의 말처럼, 보편적인 것(복합문화공간)을 특수화하고(각 지역의 이야기로), 특수적인 것(로컬의 문화)을 보편화하는(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것이다.

시간의 가치를 엮어 미래를 설계하다

밀양 컨퍼런스에서 "시간의 가치를 엮어 미래를 설계하는 것"을 강조했다. 지속가능성이란 에너지 효율만이 아니다. 과거의 이야기를 현재의 공간에 엮어내고, 미래 세대가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게 만드는 것이다.


건축가로서 나는 물리적 지속가능성을 설계한다. 패시브 하우스, 자연 환기, 로컬 재료. 하지만 공간기획자로서 안다. 아무리 물리적으로 완벽해도, 사람들이 계속 찾아오지 않으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사람들이 찾아오게 만드는 것은 건축 기술이 아니라 이야기다.

아리랑이 바로 그렇다. 고려 한시가 조선 민요가 되고, 일제강점기 저항가가 되고, 2026년 BTS의 앨범이 된다. 시대마다 새롭게 해석되며, 지역마다 다르게 변주되며, 끊임없이 진화하며 살아남았다. 이것이 진정한 '문화적 지속가능성'이다.

밀양의 아랑 전설은 지금의 청년 프로그램에서 '부당함에 맞서는 용기'로, 정선의 충절은 '뿌리를 잃지 않는 자존'으로, 진도의 섬 생활은 '고립을 극복하는 연대'로 재해석되어야 한다.

선진국의 진짜 조건 - 로컬에서 세계로

우리는 선진국인가? 경제 지표로는 그렇다. 하지만 선진국의 문화를 가지고 있는가? 그 답은 로컬에 있다.

BTS, 봉준호, 오징어게임이 세계를 사로잡은 이유는 '한국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한국적인 것의 본질은 서울이 아니라 로컬에 있다. 정선의 인내, 진도의 연대, 밀양의 활기. 이것이 진짜 한국의 이야기다.

지역소멸은 단순히 인구 문제가 아니다. 그 지역의 이야기가 사라지고, 삶의 지혜가 단절되며, 우리의 정체성이 흐려지는 것이다. 선진국이 되려면 GDP만이 아니라, 이 이야기들을 살려야 한다.

로버트슨의 글로컬리제이션처럼, 보편화와 특수화는 동시에 일어나야 한다. BTS가 증명했듯, 가장 로컬한 것이 가장 글로벌하다. 로컬을 살리는 방법은 명확하다. 서울의 공간을 복제하지 말고, 그 지역만의 이야기를 공간기획에 담아내는 것이다.

뿌리 깊은 나무가 선진국을 만든다

BTS의 아리랑 컴백이 주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세계 정상에 선 그들조차 뿌리로 돌아온다. 가장 로컬한 것이 가장 지속가능하다.

건축가이자 공간기획자로서, 나는 확신한다. 진짜 선진국은 GDP가 아니라 문화로 판단된다. 그리고 그 문화는 로컬의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공간이 100년 후에도 사랑받으려면, 물리적 견고함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이야기, 그것이 다음 세대에게 전해지는 문화적 지속가능성이 필요하다.

각 지역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아리랑'을 변주해냈듯이, 우리가 기획하는 공간들도 각 지역의 고유한 이야기로 '지속가능성'을 변주해야 한다. 과거의 이야기를 현재의 공간기획에 담아내고, 그것이 미래 세대의 정체성이 되게 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지속가능성이고, 지역소멸을 막는 길이며, 로컬에서 세계로 나아가는 선진국의 조건이다.

1926년 나운규가, 2026년 BTS가 보여주듯, 진정한 혁신은 뿌리로부터 시작된다. 건축가이자 공간기획자인 나도 그 뒤를 따른다. 서울의 복제품이 아닌 로컬의 고유함으로, 유행하는 프로그램이 아닌 그 땅의 이야기로.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니라 장소를 만들고, 공간을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커뮤니티를 기획한다.

보편적인 것의 특수화, 특수적인 것의 보편화. 그것이 글로컬리제이션이고, 그것이 선진국의 진짜 문화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같은 고개지만 넘는 방식은 다르다. 각 로컬의 이야기로 지속가능성이라는 고개를 넘을 때, 우리는 비로소 진짜 선진국이 된다.

<한경닷컴 The Lifeist> 김성훈 지음플러스 대표, 건국대학교 건축전문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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