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이 곧 공장 경쟁력”…전통 제조 중소·중견이 ‘피지컬 AI’에 배팅하는 이유

입력 2026-02-19 10:30
수정 2026-02-19 10:31


(18일자/연휴용)“로봇이 곧 공장 경쟁력”…전통 제조 중소·중견이 ‘피지컬 AI’에 베팅하는 이유

하드웨어 넘어 데이터 경쟁…전통 제조업, 로봇으로 수익 구조 바꾼다
자동화 다음 단계는 ‘현장 AI’…중견 제조업, 로봇 생태계로 이동
장비가 아니라 데이터…제조업 판 바꾸는 피지컬 AI 경쟁

“로봇을 샀는데, 막상 현장에선 못 쓴다.”

전통 제조업체들이 자동화 투자에서 가장 많이 부딪히는 벽은 ‘장비’가 아니라 ‘현장 적응’이다. 작업자 숙련도, 공정별 예외 상황, 설비 편차, 안전 규정 같은 변수가 쏟아지는 공장에서는 매뉴얼대로 움직이는 로봇만으로는 생산성이 나오기 어렵다.

그래서 최근 중소·중견 제조업계의 관심은 하드웨어(HW) 구매를 넘어, 현장 데이터를 학습한 ‘피지컬 인공지능(AI)’과 반복 매출(구독형 SW·데이터 업데이트)로 옮겨가고 있다. 이를 위해 연관된 기업 간 합종연횡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고 있다.

○“HW보다 ‘지능’이 승부처”…아이엘,
자동차 부품을 제조하는 아이엘은 로봇 SW로 수익 모델 전환에 나섰다. 회사는 휴머노이드 로봇 산업화의 속도를 앞당길 ‘산업 특화 피지컬 AI 학습데이터 솔루션’을 별도 공급하겠다고 예고했다. 로봇 도입 기업이 겪는 초기 최적화 시간·비용을 줄여 설치 즉시 투입할 수 있는 ‘플러그 앤드 플레이’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아이엘의 차별점은 데이터의 출처다. 시뮬레이션에 의존하는 방식과 달리, 자동차 부품 제조 자회사 ‘아이엘모빌리티’의 실제 가동 공장을 테스트베드로 활용해 ‘실전 데이터(Real-world Data)’를 확보한다.

회사는 외국인 근로자가 투입되던 사출 라인에 휴머노이드 로봇을 직접 투입해 학습을 진행하고, 사출 공정 특화 패키지를 시작으로 제조·물류 전반으로 데이터 라인업을 넓힐 계획이다.

수익 모델도 ‘판매 일회성’에서 ‘반복’으로 설계했다. 공정별 학습 데이터 가격을 300만~500만원 수준으로 검토하면서, 로봇 판매 이후에도 유지보수·데이터 업데이트로 현금 흐름을 만드는 록인(lock-in) 구조를 노렸다.

아이엘 관계자는 “승부처는 하드웨어 스펙이 아니라 현장에서 즉시 활용할 수 있는 지능(data)”이라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매출이 선순환하는 고수익 플랫폼 기업으로 도약하겠다”고 밝혔다.

○스마트팩토리 다음은 자율 생산
광학 솔루션 기업 해성옵틱스는 ‘제조 주도권’에 방점을 찍었다. KNS와 손잡고 최근 ‘AI 자율 생산 고도화 시스템’ 구축에 나섰다. 핵심은 ‘설비를 사다 쓰는’ 단계에서 벗어나 원천 기술을 가진 파트너와 공정을 공동 설계해 제조 자립도를 끌어올리는 것이다.

베트남 법인 ‘해성비나’에 광학식 손 떨림 방지 기능(OIS ) 자동화 라인을 구축하는 일정도 구체적이다. 4월에 1차 발주해 6월 2차 프로젝트, 8월 최종 시운전까지 속도전으로 간다.

KNS는 엔지니어 현지 상주로 안정화 리스크를 줄인다는 방침이다. 해성옵틱스는 “이번 제휴는 기업 가치를 퀀텀 점프시키는 신호탄”이라며 로봇·액추에이터 등 신사업 확장 의지를 숨기지 않았다.

“AI는 눈·뇌, 로봇은 몸”
비전 AI 기업 씨이랩은 ‘현장형 AI’로 매출을 만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를 위해 글로벌 로봇 기업 오리온스타코리아와 피지컬 AI 기반 스마트시티 공동 사업을 추진한다.

포인트는 스마트시티가 CCTV 관제·데이터 분석을 넘어 로봇이 직접 서비스를 수행하는 ‘현장형 AI’로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씨이랩은 비전 AI(뇌)를, 오리온스타는 서비스 로봇(몸)을 맡는다. 인식→판단→행동이 이어지는 통합 솔루션을 통해 실증(PoC)을 넘어 상용화 단계에서 매출을 노린다. 제조업뿐 아니라 도시·물류·시설 운영까지 ‘로봇이 일하는 시장’이 커지면서, 중소·중견 기업들에도 선택지가 늘고 있는 셈이다.

전통 제조업의 강점인 정밀 가공·조립·품질관리 역량을 활용해 로봇 부품 개발에 나선 기업도 있다. 대동기어는 53년간 축적한 정밀 가공 기술을 바탕으로 그룹 로봇 사업과 연계해 정밀 감속기·액추에이터 기반 로봇 부품을 신성장 축으로 키우기로 했다.

눈길을 끄는 건 회사가 로봇 신사업을 ‘뜬구름’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감속기 내재화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고, 액추에이터 시제품 제작을 상반기 내 완료해 국내외 로보틱스 기업과 공급 협의에 나선다는 로드맵을 제시했다.

로봇업계 관계자는 “전통 제조업체들이 로봇에 집중하는 이유가 ‘트렌드 추종’이 아니라 기존 기술의 확장에 있다”고 설명했다.

○물류 현장서 로봇과 대화, 파운드리 생산도
로봇이 공장에 들어온 뒤 남는 과제는 ‘운영’이다. 세나는 메시 통신·와이파이 인터콤 기술을 탑재한 자율이동로봇(AMR)으로 사업을 확장한 ‘작업그룹 통신(WGC)’을 내세웠다. 시끄러운 물류 현장에서도 작업자와 로봇이 실시간 음성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콘셉트다.

여기에 국내 1위 쇼핑몰 통합관리 솔루션 ‘이지어드민’과 500여 물류센터 네트워크를 가진 핌즈가 영업·마케팅을 맡는다. WMS와 로봇 통신 인터페이스를 결합해 음성 지시·보고가 가능한 공정을 만들고, 5년 내 누적 1000대 공급을 목표로 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로봇 도입의 성공 조건이 장비 성능만이 아니라 현장 커뮤니케이션과 시스템 통합”이라고 설명했다.

서진시스템은 로봇 시장이 커질수록 만들 줄 아는 회사가 부족하다는 틈을 ‘로봇 파운드리(위탁생산)’로 파고들 계획이다. 베트남 생산거점을 활용한 양산 체계를 구축하고, TPC 메커트로닉스와 협력해 공압·전동 액추에이터 등 구동 기술을 결합했다. 무인운반차량(AGV)과 AMR부터 협동 로봇, 휴머노이드까지 원스톱 제조 솔루션을 내세웠다.

업계 관계자는 “전통 제조 중견들이 로봇에 몰리는 이유는 단순 자동화가 아니라, 새로운 공급망(로봇 제조 생태계)의 핵심 플레이어가 되기 위해서”라며 “중소기업의 한계상 로봇의 전체 기술을 다 할 여력이 없기 때문에 각자 강점이 되는 기술력을 합쳐 로봇 시장에 뛰어들려는 연합 개발 움직임은 향후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