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번수 작가(83·사진)에게 세상은 모질었다. 어린 시절 어머니를 여읜 그는 큰아들을 병으로 먼저 보내야 했고, 자신을 돕던 동생마저 불의의 사고로 떠나보냈다. 그 끝에서 송번수가 붙잡은 이미지가 ‘가시’였다. 예수의 면류관을 상징하는 가시는 그에게 피할 수 없는 숙명과 고행, 뼈를 깎는 고통 그리고 그 모든 어려움을 뚫고 솟아오른 절제된 생명력을 의미했다.
홍익대 교수와 대전시립미술관장을 역임한 송 작가는 한국 1세대 실험미술가이자 종교미술의 지평을 넓힌 인물이다. 1970년대 군사정권에 저항하는 판화와 실험미술로 화업을 시작한 그는 프랑스 파리 유학 시절 접한 태피스트리를 통해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꽃피웠다.
서울 한남동 갤러리바톤에서 열리고 있는 단체전 ‘장식과 대상에 반하여’에서 송 작가 특유의 미학을 담은 반입체 가시 작품 ‘가능성 023-CV, CVI, CVⅡ’ 등을 만날 수 있다. 칼 앤드리, 로버트 맨골드, 리엄 길릭 등 다른 추상미술 대가의 작품이 함께 나온 이번 전시는 2월 21일까지 이어진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