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인공위성은 우주 내 ‘마이크로 데이터센터’가 될 겁니다. 한국이 생산한 HBM(고대역폭메모리)과 다양한 기업의 엣지 컴퓨터를 싣고요.”
‘HBM의 아버지’로 불리는 김정호 KAIST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10일 HBM 기술의 미래 발전상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김 교수는 삼성전자 D램 수석연구원을 거쳐 1996년 KAIST에 부임한 후 메모리반도체 개발 외길을 걸어온 한국의 대표 공학자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력 상품인 HBM 기술 아키텍처 10여 개 중 상당 부분이 그가 이끄는 연구실 ‘테라랩’에서 탄생했다.
김 교수는 “HBM과 여러 엣지 프로세싱 유닛(XPU)를 클러스터링한 ‘AI 인공위성’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말했다. AI 위성은 에너지 소모와 통신 상태를 스스로 최적화하고 지상국 명령 없이 스스로 판단해 정보를 처리한 뒤 지구로 보낸다. 아직 이런 위성은 미국에서도 개발하지 못했다.
김 교수가 이런 고난도 기술 개발을 자신하는 이유는 30여 년간 연구해온 반도체 스태킹(stacking: 적층) 기술 덕분이다. HBM의 연산 성능을 높이려면 D램을 층층이 쌓을 때 생기는 잡음 등 교란 요소를 제거하는 것이 중요하다. 실리콘관통전극(TSV)과 인터포저, 로직다이 등 HBM 관련 기술은 이렇게 ‘적층 최적화’를 해야 하는데 이런 기술의 원형을 김 교수가 개발했다. HBM에서 ‘B(bandwidth:대역폭)’란 철자가 그래서 붙었다. 우주 위성의 엣지컴퓨팅에선 이런 대역폭 관리가 지금보다 더 중요해진다. 실현 가능성을 두고 의견이 분분한 일론 머스크 스페이스X CEO의 ‘우주 데이터센터용 위성 100만개 발사’에 대해서도 김 교수는 “한국이 충분히 도전해볼 만한 분야”라고 평가했다.
그는 HBM 노하우를 확장해 플래시메모리를 쌓는 HBF 개발에 최근 집중하고 있다. 김 교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샌디스크가 엔비디아, AMD, 브로드컴 등과 협력해 2027~2028년 HBF를 상용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HBM 개발과 관련해 전영현 삼성전자 DS부문 부회장이 연구원들을 이끌고 김 교수를 주기적으로 방문해 기술 자문을 얻고 있다. 경계현 전 삼성전자 사장 등 삼성 중역과도 인연이 오래됐다.
유력한 차기 KAIST 총장 후보로 꼽히는 김 교수는 오는 26일 열리는 KAIST 이사회에 참석해 앞으로의 비전을 밝힐 예정이다. 현재 이광형 KAIST 총장과 김 교수, 이용훈 전 UNIST 총장 등 3명이 면접 대상자로 올라와 있다. 그는 현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조성 중인 경기 용인 반도체클러스터에 KAIST 연구실 40개를 이전해 ‘산학 협력’이 아니라 ‘산학 일체형’ 기술 개발 모델을 확립하겠다고 강조했다. 또 대전 KAIST 본원에 양자(퀀텀) 파운드리, 우주, 수리과학 등과 AI를 연계한 ‘AI 메타융합관’ 6개를 신설하는 계획을 내놨다. 또 “경제 안보와 통상이 모두 과학기술에 의존하는 시대가 됐다”며 과학기술외교대학원을 설립하겠다고 말했다.
그의 연구실 제자들은 애플, 구글, 엔비디아, 테슬라, 마이크로소프트, 오픈AI 등 미국 실리콘밸리 대표 기업에 골고루 진출했다. 김 교수는 “만약 총장이 된다면 실리콘밸리에 KAIST 캠퍼스를 조성해 국제 산학협력 허브로 키우겠다”고 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