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억 들고 와 집도 안 보고 사겠다더니…" 구리 아파트 '급변' [현장+]

입력 2026-02-12 06:30
수정 2026-02-12 08:43
"작년 연말까지만 해도 서울에서 온 투자자들이 북적였는데, 새해 들어서는 분위기가 싹 바뀌었어요. 대통령이 연일 부동산 투기를 뿌리 뽑겠다고 엄포를 놓는데, 지금 상황에서 누가 섣불리 수억원을 묻어 두겠습니까?" (구리시 인창동 A 공인 중개 관계자)
경기도 구리시 부동산 시장이 격변기를 거치고 있다. '10·15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 발표 이후 수도권의 몇 안 되는 비규제 지역으로 꼽히며 '풍선효과'의 정점을 찍더니, 최근에는 매물이 씨가 마르는 현상과 함께 투자 수요가 실수요로 빠르게 재편되는 모양새다. 규제 틈새를 노린 투자자 발길은 이재명 대통령의 강력한 '투기 금지' 기조에 멈추어 섰고, 그 빈자리를 첫 내 집 마련이나 갈아타기에 나선 실수요자들이 빠르게 채우고 있다.

11일 아파트 정보 제공 앱 아파트실거래가에 따르면, 이날 기준 서울과 경기 지역을 통틀어 최근 한 달간 매매 물량이 가장 많이 줄어든 곳이 경기 구리시였다. 구리시의 매매 물량은 1885건으로 한 달 전(2139건)과 비교해 11.9% 급감했다.

업계에서는 지난해 발표된 10·15 대책의 영향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 정부는 서울 전역과 경기도 내 주요 인기 지역(과천, 광명, 수원시 영통구·장안구·팔달구, 성남시 분당구·수정구·중원구, 안양시 동안구, 용인시 수지구, 의왕시, 하남시)을 토지거래허가제로 묶고 실거주와 대출 관련 규제를 강화했다. 당시 규제의 칼날을 피한 '서울 옆' 구리시는 자연스럽게 대체 투자 투자처로 주목받으며 매수세가 몰렸다.

서세환 예감좋은부동산 대표는 "작년 정책 발표 직후 신축을 중심으로 매매 가격이 크게 올랐고, 매물도 빠르게 소진됐다"며 "현재는 신축 매물이 거의 없는 상태라 수요가 구축으로 옮겨가는 '갭 메우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구리시 아파트 매매가격 지수는 지난 10·15 대책 발표 이후 급격히 상승세를 탔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대책 발표 이전인 지난해 10월 13일 100.21이었던 구리시 아파트 매매가격 지수는 지난 2일 기준 103.96까지 올라왔다.

경기도 전체 평균과 비교하면 상승세는 더욱 두드러진다. 11월 초까지만 해도 경기 평균치를 밑돌던 구리시는 지난해 11월 3일을 기점으로 역전에 성공하며, 현재는 경기 평균을 상회하고 있다. 아파트 매매 가격지수는 기준 시점(2025년 3월) 집값을 100으로 놓고 현재 가격의 변동 수준을 지수로 나타낸 것이다.

불과 두 달 전만 해도 구리시 부동산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는 게 현장의 전언이다. 인창동의 B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한동안 투자하려는 젊은 친구들이 줄을 이었다"며 "(방문객이 많아) 전화번호 뒷자리가 뭐냐고 먼저 물어봐야 할 정도로 사람이 몰렸고, 1억~2억원가량을 보유한 젊은 사람들이 집도 안 보고 사겠다고 난리를 쳤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하지만 최근 거래 양상은 몇 달 전과는 또 달라졌다. 이재명 대통령이 다주택자는 물론 '비거주 1주택자'까지 겨냥하며 강도 높은 보유세 개편을 예고한 것이 결정타였다.

구리 내에서도 가장 거래가 활발했던 단지 중 하나인 '인창주공1단지' 인근 C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어제오늘 전화 한 통이 없다"며 "11월부터 1월 중순까지는 2억원씩 들고 와서 물건을 쓸어 담던 갭투자자들이 1월 말부터 썰물처럼 빠져나갔다"고 했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X(옛 트위터)를 통해 부동산 정책에 대해 직접적인 소통을 이어가던 때와 시기가 딱 맞물린다.


인창동의 D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정부가 보유세 개편까지 시사한 마당에 2주택, 3주택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공포가 있다. 지난해에는 갭투자와 실거주 비중이 8대 2 정도였는데, 최근에는 4대 6 수준으로 역전됐다"며 구리 시장이 투자 목적보다는 내 집 마련이나 '갈아타기' 수요로 재편되고 있음을 시사했다.

현재 구리 부동산 시장은 실수요자들이 지탱하고 있다. 한때 갭투자 비중이 치솟았던 것과 달리, 실거주 목적의 거래가 대다수다.

특히 '단지 내 갈아타기' 수요도 눈에 띄게 증가했다. C 공인 중개 관계자는 "한 아파트 단지에서 평수를 넓혀가는 내부 이동이 많다"며 "외부 투자 수요는 줄었지만, 내부 실거주자들이 가격을 지지하며 '갭 메우기'를 하는 양상"이라고 전했다.

현장에서는 '추격 매수'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경고도 나왔다. 최근 활발하게 손바뀜하며 가격이 고점을 찍었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한 공인 중개 관계자는 "정부가 양도소득세에 이어 보유세까지 손본다면 다주택자들은 버티기 힘들 것"이라며 "지금 가격은 2021년 최고점과 맞먹는 수준인데, 무리하게 대출을 끼고 들어왔다가 (고점에) 물릴 위험이 크다"고 말했다.

이슬기/이수 한경닷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