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2월 11일 08:10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전기차 충전 전문기업 채비의 기업공개(IPO)가 7개월 가까이 표류하고 있다. 대기업 계열사의 중복상장 논란으로 대어급 IPO가 자취를 감춘 상황에서 스타트업의 증시 입성도 난항을 겪는 모습이다.
11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채비는 지난해 7월 말 한국거래소에 상장 예비심사를 청구했으나 아직까지 심사 결과를 받지 못했다. 현재 상장 예심을 청구한 기업 가운데 심사 대기 기간이 가장 길다.
설 연휴가 지난 뒤에야 상장위원회 일정이 정해질 전망이다. 대다수 기업이 규정상 정해진 45영업일 이내에 심사 결과를 받은 것과 비교된다.
최근 한국거래소 정기 인사로 코스닥시장 상장 심사 담당자가 바뀐 점이 영향을 끼쳤다. 새로운 심사 담당자가 채비에 대한 전반적 사항을 파악하는 데 시간이 필요해서다.
채비가 이익미실현 특례를 적용해 상장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도 심사 장기화의 배경으로 꼽힌다. 이익미실현 특례는 적자를 내는 성장기업에도 상장 기회를 부여하는 제도다. 일정 매출과 자본 요건만 충족하면 미래 성장성을 중심으로 심사를 받는다.
상대적으로 일반 상장과 비교하면 거래소의 정성적 평가 비중이 크다. 기술특례 상장처럼 외부 전문기관의 기술성 평가를 거치지 않는 대신 거래소의 정성적 평가에 시간이 소요되면서 심사 기간이 길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지난해 세미파이브, 채비, 크몽, 코드잇 등 다수 기업이 이익미실현 특례를 활용해 증시 입성을 시도했으나 결과는 엇갈렸다. 채비와 비슷한 시기에 예심을 청구한 세미파이브는 두 달여 만에 심사를 통과해 지난해 12월 코스닥에 상장했다. 반면 크몽은 지난해 8월 말 예심을 청구했지만 올해 1월 말 결국 거래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자진 철회를 선택했다. 코드잇은 심사를 받고 있다.
정부는 유망 기업의 증시 진입 통로를 넓히는 대신 부실 기업은 조기에 걸러내는 이른바 ‘다산다사’ 구조를 지향하고 있다. 다만 거래소 입장에서는 적자 기업이면서 기술성 평가를 받지 않는 이익미실현 특례 기업에 대해 보다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수밖에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채비의 전방 산업인 전기차 충전 인프라는 중장기 성장성이 유효한 분야로 꼽힌다. 반면 전기차 시장이 최근 둔화 국면에 접어든 데다 국내 내수 중심의 사업 구조는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리스크 요인으로 거론된다.
일각에서는 공모주 시장 전반의 활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최근 수년간 대기업 계열사의 중복상장 논란으로 대어급 상장이 잇따라 무산됐다. 스타트업의 IPO마저 지연될 경우 그 여파가 클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새내기 기업의 증시 입성은 눈에 띄게 줄었다. 올해 2월까지 신규 상장사는 덕양에너젠 한 곳에 그칠 전망이다. 기존에는 매년 2월까지 10곳 안팎의 기업이 상장했던 것과 대비된다.
시장 관계자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상장 예심 처리 속도가 전반적으로 늦어지고 있다”며 “유망 기업 IPO와 투자자 보호 사이에서 거래소의 고민도 클 것”고 말했다.
최석철 기자 dols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