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률 회장 "암 백신부터 맞춤형 건강관리까지…정밀예방 시대 열 것"

입력 2026-02-10 15:31
수정 2026-02-10 17:31
“올해는 SCL그룹의 모든 분야에 인공지능(AI)을 접목해 업무 시스템을 바꾸는 원년이 될 겁니다. 자회사를 통해 암 백신 개발 속도를 높이고 개인 맞춤형 건강관리 서비스를 확대해 ‘정밀 치료’는 물론 ‘정밀 예방’ 시대를 여는 게 목표입니다.”

이경률 SCL그룹 회장은 10일 기자를 만나 이렇게 말했다. SCL그룹의 관계사는 국내 임상병리 수탁 시장 점유율 1위인 서울의과학연구소(SCL), 건강검진 전문센터 시장 점유율 2위인 하나로의료재단 등이다. 1985년 연세대 의대를 졸업한 뒤 연세대 총동문회장 맡은 그는 개인 맞춤형 정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SCL그룹의 경영자로 변신했다.

이 회장과 SCL그룹은 국내 의학계에선 ‘퍼스트 무버’로 불린다. 그룹 모태는 이 회장 부친인 고(故) 이은범 범양사 회장이 1983년 세운 건강검진센터다. 전 국민 의료보험도 없던 시기 한국에 검체 검사, 건강 검진이란 개념을 처음 도입했다. 미국에서 혈액을 활용한 암 조기 검출법을 연구한 이 회장은 이를 한국형 검진 시스템에 이식했다. 이 회장은 “인구 고령화로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건강 수명과 기대 수명 간의 격차는 인류의 가장 큰 고민이 됐다”며 “건강 검진 플랫폼에 기반한 조기 진단 시스템을 통해 10년 남짓한 이 기간을 줄이는 게 목표”라고 했다.

▷첫 검진센터를 연 1983년은 국내에 건강검진 개념조차 없던 때다.

“당시 부친이 중소기업 경영자로 글로벌 경험을 쌓으면서 ‘한국도 경제력이 커지면 건강에 대한 관심이 커질 것’이라고 판단했다. 근거 중심 의학에 기반해 혈액검사로 건강 상태를 진단하는 건강검진 서비스를 처음 도입한 계기가 됐다.”

▷1990년대부터 병원 외주 검사 서비스를 확대했다.

“개원 시장이 확장되던 시기다. 건강보험 청구를 위해선 혈액 분석을 해야 하는데 모든 병원이 분석실을 갖추긴 어려웠다. 이를 아웃소싱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여러 병원의 검체를 받아 중앙 집중화하는 방식으로 비용과 검사에 드는 시간을 아끼는 사업으로 확장했다. 모든 지역에서 똑같은 서비스를 받도록 하는 게 목표다.”

▷2010년 SCL헬스케어를 세워 사업 모델을 확장했다.

“2000년대 들면서 국내도 신약 임상시험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약물을 넣으면 혈액 속에서 어떻게 반응하는지 모니터링해야 한다. 연구자 주도 임상시험을 지원하는 서비스 수요도 많았다. 이를 돕는 분석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신약 인허가용 데이터는 정확도가 중요하다.

“결과지가 일회성 검사에만 쓰이지 않고 인허가 등을 위한 공식 문서에 활용된다. 사업 초기만 해도 이런 개념을 이해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일본, 미국 등의 전문가들과 교류하며 검사 서비스 기반을 닦았다.”

▷최근엔 암 백신 개발에 나섰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완성되고 유전자 서열이 파악되자 질병 치료법도 달라졌다. 서열을 넘어 이를 조절하는 스위치를 활용하는 ‘기능적 유전자 치료 시대’가 열린 게 2008년께부터다. 최근엔 연구가 공간전사체로 넘어가고 있다. 서열과 스위치에 세포 간 관계 등 3차원(3D) 개념이 접목된 것이다. 더 개인화할 수 있게 됐다. 암 백신도 이런 연장선상에서 탄생했다. 최정균 KAIST 교수와 함께 암이 면역을 회피하는 기전을 활용해 신생 항원을 표적으로 재발암을 막는 신약을 개발하고 있다.”

▷연구 전문 자회사인 네오젠로직에서 개발 속도를 높이고 있다.

“B세포 반응성을 정량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세계 첫 AI 기반 항암 백신 개발 기술을 구축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실렸다. 2027년께 맞춤형 암 백신의 사람 대상 임상 진입을 위한 허가 서류를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제출하는 게 목표다.”

▷하나로의료재단도 AI 활용 연구를 확대하고 있다.

“건강검진에서 소변 검사를 하면 세균을 검출한다. 실제 감염성 질병 등으로 세균이 검출되는 비율은 5% 정도다. 거꾸로 보면 나머지 95%는 불필요한 균 배양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의미다. 강남세브란스병원과 사전에 검사가 꼭 필요한 검체를 스크리닝해 자원 낭비를 줄이는 방법을 찾고 있다.”

▷질병 예방으로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검진이 더 중요해졌다.

“인류가 항생제를 개발한 뒤 급성기 질환에 대한 고민은 만성질환으로 옮겨갔다.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등이다. 비만을 신종 풍토병으로 분류하기 시작했다. 이를 해결하려면 빠르게 진단해 조기에 치료적 개입을 해야 한다. 암, 알츠하이머 등도 마찬가지다. 개인의 유전자와 생활 습관 등을 접목하면 수년 뒤 건강 상태 등을 예측할 수 있다. 가정에서 건강을 관리하는 서비스가 접목되면 질병 징후를 미리 찾아 증상이 없는 사람들도 스스로 건강을 관리하게 된다. 이를 사업화하고 있다.”

▷정부의 유전체 빅데이터 사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웨어러블 디바이스를 활용해 생활 습관 데이터를 수집하는 과제에 참여했다. 참여한 건강 검진 전문 기관 중 가장 많은 샘플을 제공하고 있다.”

▷코로나19 땐 핀란드의 검체 분석까지 맡았다.

“당시 핀란드 정부에서 세계 각 기관의 샘플 분석 데이터를 확인한 뒤 SCL의 데이터 정확도가 가장 높다고 판단했다. 핀란드에서 비행기까지 띄워 검체를 싣고 한국으로 보냈다. 검사 서비스 수출로도 이어진 것이다.”

▷사회공헌 활동도 활발하다.

“인재 육성을 위한 교육 수준을 향상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디지털 지식이 상당히 중요한 시대다. 저소득 가구는 이런 교육 서비스를 받을 기회가 줄어 교육 격차가 생긴다. 버려지는 컴퓨터 등을 활용해 디지털 격차를 줄이는 사업을 하고 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