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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한이 어딘지 모르겠다.”
“아베 신조 정권 때 장세가 생각난다.”
9일 일본 닛케이225지수가 사상 처음으로 장중 57,000선을 넘자 도쿄증시에선 이런 반응이 나왔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이끄는 집권 자민당이 전날 총선에서 사상 최대 압승을 거두자 이날 닛케이지수는 단숨에 3.89% 오른 56,363에 마감했다. 종가 기준 사상 최고치를 4거래일 만에 갈아치웠다. 시장에선 닛케이지수가 다카이치 총리의 경제 정책인 ‘사나에노믹스’에 힘입어 60,000을 돌파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 ‘아베 장세’ 떠올리는 시장
이날 도쿄증시는 어드반테스트가 11.52% 뛰고, 가와사키중공업이 15.73% 급등하는 등 반도체와 방위산업 관련주가 주도했다. 다카이치 내각은 인공지능(AI)과 반도체, 방산 등 17개 산업을 ‘전략 분야’로 지정하고 집중적으로 키우고 있다. 우치야마 다이스케 오카산증권 선임전략가는 “정권 운영이 안정되고 정책이 예측 가능해지자 해외에서 매수세가 강해졌다”고 했다.
영국 운용사 W1M인베스트먼트의 슈테판 라인발트 주식리서치 총괄은 “강력한 정권 기반을 얻은 다카이치 내각의 압승은 과거 아베 신조 정권을 떠올리게 한다”고 했다. 역대 총선 후 닛케이지수가 가장 크게 오른 2012년과 비슷한 분위기라는 평가다. 자민당 단독으로 294석을 얻은 2012년에는 닛케이지수가 120영업일 동안 약 34% 상승했다. 당시 금융 완화, 재정 확대, 구조 개혁 등 ‘세 개 화살’로 불린 ‘아베노믹스’에 대한 기대가 이어지면서다.
다만 일본 증시를 둘러싼 환경은 그때와 완전히 달라졌다. 2012년만 해도 일본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마이너스였다. 디플레이션 탈출을 위한 대규모 금융 완화 정책에 시장의 기대가 한꺼번에 쏠렸다. 이에 비해 현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일본은행 목표치인 2%를 넘는다. 인플레이션 억제가 과제인 상황이다. 엔·달러 환율도 당시엔 달러당 80엔 안팎으로, 엔고 상태였기 때문에 아베노믹스에 따른 엔저가 기업 실적에 기여할 것이라는 평가가 우세했다. 지금은 달러당 엔화 가치가 156엔대로 엔저가 수입 물가 상승을 부추기는 측면이 부각되고 있다. 시마미네 요시키요 다이이치생명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책임 있는 적극 재정 속에서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릴 수 있는 실행력이 주가 상승 지속의 조건”이라고 지적했다. 구조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 ‘돈 풀기’에 재정 우려도다카이치 총리가 선거 공약으로 내건 ‘소비세 감세’에 따른 재정 악화 우려가 향후 주가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국 부가가치세와 같은 일본 소비세율은 기본 10%인데, 식료품에는 8%를 적용하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총선 때 고물가 대책으로 식료품 소비세율을 2년간 0%로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식료품 소비세를 없애면 연간 5조엔가량의 세수가 부족해질 것으로 재무성은 추산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그러나 재원 대책은 제시하지 않았다.
재정 리스크를 크게 반영하는 10년 만기 일본 국채 금리는 이날 한때 전 거래일 대비 0.065%포인트 오른 연 2.29%를 나타냈다. 통화정책의 영향을 더 크게 받는 2년 만기 국채 금리는 한때 연 1.305%까지 오르며 1996년 이후 30년 만의 최고치를 찍었다. 5년 만기 국채 금리도 연 1.735%까지 상승하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다카이치 정권의 확장 재정이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져 일본은행이 조기 기준금리 인상에 나설 가능성이 커졌다는 관측에서다. 야마구치 마사히로 SMBC신탁은행 투자조사부장은 “금리 상승을 고려해 정책 규모가 축소되면 주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영국에서는 2022년 당시 리즈 트러스 총리가 내놓은 ‘재원 대책 없는 감세’에 주가, 국채 가격, 통화가치가 동반 하락했다. 크리슈나 구하 에버코어ISI 이코노미스트는 “다카이치 총리가 적극 재정에 나서면 일본판 ‘트러스 쇼크’가 일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당장은 주가 상승세에 묻혀 있지만 재정 우려를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도쿄=김일규 특파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