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일본’을 모토로 중의원(하원) 선거에서 압승한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정치 스승’인 아베 신조 전 총리보다 강경한 우익 노선을 걸을 것으로 전망된다. 압도적 의석수를 앞세워 ‘전쟁 가능 국가’(보통 국가)로 가기 위한 개헌은 물론 살상 무기 수출, 국가정보국 창설, 외국인 규제 강화 등 우파 정책을 밀어붙이기 쉬워졌기 때문이다. ◇우파 정책 급물살 탈 듯
9일 교도통신, 요미우리신문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다카이치 총리는 전날 밤 집권 자민당의 압승이 확실해진 상황에서 후지TV에 출연해 “헌법 개정은 자민당 당론”이라며 “구체적 안을 확실히 헌법심사회에서 심의할 수 있게 된다면 감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헌법 개정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이날 기지회견에서 개헌에 대해 “조금이라도 빨리 국민투표가 실시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기존 논점 정리와 논의 축적을 바탕으로 개정안을 준비하겠다는 자세를 보였다.
자민당은 이번 총선에서 중의원 전체 465석 중 개헌안 발의가 가능한 310석을 넘는 316석을 얻었다. 연립 여당 일본유신회 의석수를 합하면 352석이다. 1945년 2차대전 종전 이후 단일 정당이 중의원에서 의석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말 그대로 ‘최강 권력’이 된 다카이치 총리를 견제할 수 있는 세력이 사라진 것이다.
아베 전 총리 노선을 따라 매파적(강경 노선) 외교안보 정책을 내건 다카이치 총리는 핵심 공약인 전쟁 가능 국가로 나아가는 개헌 움직임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1946년 공포된 일본 헌법 9조 1항에는 ‘국제 분쟁 해결 방법으로 전쟁과 무력 행사를 영구 포기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또 9조 2항에는 ‘육해공군 전력을 보유하지 않고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있다. 일본 헌법 9조를 ‘평화 헌법’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자민당·일본유신회 연합은 이 아래에 ‘자위대’와 ‘자위의 조치(자위권)’를 신설해 위헌 논란을 없애고 ‘군사 대국화’로 나아갈 길을 열고 싶어 한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2일 “자위대의 긍지를 지키고 확실한 실력 조직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라도 헌법 개정을 하게 해달라”고 했다.
다카이치 정권은 이 밖에 안보 정책 근간인 3대 안보 문서(국가안전보장전략, 국가방위전략, 방위력정비계획)도 올해 말까지 개정하기로 했다.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의 2%가 넘는 수준으로 늘리고, 살상 무기 수출을 제한하는 등 수출이 금지된 ‘5개 유형’의 무기 규제를 철폐하는 방향으로 개정할 예정이다. 사이버 공격과 대량 무인기를 활용한 전투 방식도 논의될 것으로 전망된다.
다카이치 총리는 핵무기 보유·제조·반입을 금지한 비핵 3원칙 재검토에 대해서도 부정하지 않았다고 교도통신이 밝혔다. 그는 엄중한 안보 환경을 고려해 핵무기 ‘반입 금지’ 규정을 바꾸려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살상 무기 수출 규제 완화에는 “우호국, 뜻을 같이하는 나라가 국민을 지키는 것이라면 이전(수출)해도 좋다는 전제로 논의하고 있다”고 답했다. ◇‘비핵 3원칙’도 재검토다만 일본 언론에선 연립 여당이 당장 개헌에 착수하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개헌안을 발의하려면 중의원은 물론 참의원(상원)에서도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하는데, 현재 참의원은 여소야대이기 때문이다. 참의원 선거는 2028년 치러진다. 의회 통과 후에는 국민투표에서 과반 찬성을 얻어야 한다. 다만 일본 언론은 “헌법 개정은 연내 발의는 어렵더라도 이전보다 논의가 활발해질 것”이라고 했다.
중·일 대립은 장기화할 것으로 보인다. 선거 대승으로 다카이치 총리가 ‘대만 유사시 무력 사용 시사’ 발언을 취소할 가능성이 사실상 사라졌기 때문이다. 다카이치 총리 지지율은 중국이 일본 제재 수위를 끌어올리자 오히려 높아졌다.
일본 언론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진보 성향 아사히신문은 “선거 승리가 유권자의 백지 위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며 “국론을 양분하지 않도록 합의에 힘쓰는 것이 지도자의 책무”라고 논평했다.
최만수 기자/도쿄=김일규 특파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