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남는 자가 강한 것"…中 전기차 구조조정 '칼바람'

입력 2026-02-09 17:22
수정 2026-02-10 01:16
중국 베이징 순이구에 있는 베이징자동차그룹(BAIC) 연구개발(R&D) 센터. 한국 매체 가운데 유일하게 초청받아 지난 4일 방문한 이곳에선 BAIC와 중국 대표 빅테크 화웨이가 공동 개발한 전기자동차 ‘스텔라토S9T’의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 작업이 한창이었다. BAIC와 화웨이가 공동 개발한 브랜드 스텔라토는 디지털 콕핏(운전석에 설치된 디지털 인포테인먼트)에 새로운 시도를 더해 빠르게 충성 고객을 확보해가고 있다. BAIC R&D 센터 관계자는 “낮은 가격만으로 경쟁하는 시대는 지났다”며 “전기차를 단순한 교통 수단이 아니라 지능형 이동 장치로 탈바꿈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 소프트웨어 경쟁으로 이동9일 중국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중국 전기차 시장의 경쟁 축이 기존 배터리, 원가에서 소프트웨어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중국 중앙정부가 전기차 구매 보조금 지급을 종료하고 구매세 감면 규모를 계속 줄이자 전기차 기업들이 디지털 계기판, 중앙 인포테인먼트 화면, 음성·제스처 인식, 연결성, 센서 연동 기능 등 디지털 기반 운전·탑승자 경험 통합 시스템과 운전자 보조 기술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가격 경쟁력만으로 승산이 없다는 판단에 따라 지능화와 프리미엄 차별화로 경쟁이 치열한 레드오션 시장에서 입지를 구축하려는 모습이다. 중국 전기차 브랜드 관계자는 “중국 정부의 보조금 정책이 막을 내리면 전기차 경쟁력이 시들해질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며 “기업들이 기술, 플랫폼, 공급망, 브랜드 포지셔닝을 앞세워 생존법을 바꾸고 있다”고 설명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BAIC다. BAIC는 중국 전기차업계에서 가장 공격적으로 경영 노선을 바꾼 플레이어로 평가받는다. 메르세데스벤츠, 현대자동차 등 ‘합작 글로벌 브랜드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기지’라는 꼬리표를 떼고 스마트카 실험에 선제적으로 뛰어들었다.

BAIC는 중국 기술 굴기를 상징하는 화웨이와 합작해 프리미엄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합작 초기엔 일부 소프트웨어, 솔루션 적용 수준으로 협업했지만 2023년 이후 화웨이가 상품 기획과 설계, 마케팅, 판매 채널, 서비스까지 깊게 관여하는 구조로 사업 방향을 틀었다. 이에 따라 BAIC는 지난해 신에너지 차량을 20만9576대 판매했다. 처음으로 20만 대를 돌파했을 뿐 아니라 전년보다 84% 급증했다. 지난해 12월 판매대수는 3만5205대로 전년 동기 대비 115% 뛰었다.

샤오펑은 전기차 기업이 아니라 인공지능(AI) 기업으로 변모해 AI를 바탕으로 한 자율주행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다음달에는 자체 개발한 AI 칩을 활용한 시각·언어·행동 관련 자율주행 시스템을 선보일 계획이다. 맥락 추론을 통해 주행 환경을 이해하는 게 특징이다. 샤오펑의 지난해 연간 인도량은 42만9445대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전년 대비 126% 증가했다. ◇ 디지털 경험에 투자 확대스마트폰 제조사에서 전기차 기업으로 변신한 샤오미는 전기차를 스마트폰 생태계 확장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첫 전기 세단 SU7은 테슬라 모델 3 판매량을 넘어서며 프리미엄 전기차 절대 강자인 테슬라의 지배력을 무너뜨리기도 했다.

지난해 샤오미 SU7의 중국 본토 판매량은 25만8164대를 기록했다. 이는 같은 기간 20만361대를 인도한 테슬라 모델 3보다 30%가량 많다. 기존 스마트폰 사업에서 쌓은 브랜드 인지도와 소프트웨어 역량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자율주행 시스템과 디지털 콕핏 등 지능형 사양 수준을 높이는 방식을 활용해 스마트폰 기반으로 쌓은 기술을 전기차로 연장하는 전략을 펼친다. 사용자 경험, 소프트웨어의 신속한 업데이트, 서비스 네트워크 구축을 통해 재구매가 이어지는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중국 전기차 업체 리오토는 아예 차량 연계가 가능한 AI 안경 리비스까지 출시했다. 리비스를 활용하면 트렁크를 열거나 창문을 내리는 조작 등을 음성으로 할 수 있다. 올 상반기에는 업데이트를 통해 차량 소환 같은 향상된 기능을 도입할 방침이다.

한편 중국 전기차 시장은 구조조정 조짐을 보이고 있다. 가격 경쟁과 만성적 과잉 생산이 누적돼 경쟁력이 약한 기업이 시장에서 빠르게 퇴출되고 있다. 대형 전기차 기업은 충전 네트워크 관련 기업을 사들이고 있다. 인수합병(M&A)을 통해 규모를 키우면서 브랜드가 줄어드는 추세다. 중국 정부도 이 같은 분위기를 장려하고 있다.

중국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젊은 소비자들은 전기차에 빠르고 완성도 높은 디지털 경험과 사용자 경험을 요구한다”며 “결국 소프트웨어 격차가 시장 입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김은정 특파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