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산 스테인리스 스틸 수입량(중판 및 후판 기준)이 최근 4년 새 1100배나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말레이시아에 이 같은 제품을 생산하는 설비가 없다는 점에서 반덤핑 관세를 피하기 위해 중국산 또는 인도네시아산 제품의 원산지를 속인 ‘택(tag) 갈이’ 수출이라는 의혹이 제기된다.
8일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말레이시아산 스테인리스 중·후판 수입량은 지난해 2196t으로 2021년(2t) 대비 1098배 늘었다. 올 들어서도 지난달에만 500t 넘는 물량이 국내로 들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일반적으로 중판은 두께 3~6㎜, 후판은 두께 6㎜ 이상인 철판을 의미한다. 국내 스테인리스 스틸 중·후판 전체 수입량에서 말레이시아산이 차지하는 비율(중판 기준)은 2021년 0.18%에서 지난해 51.31%로 높아졌다.
업계에선 말레이시아 철강산업 구조상 스테인리스 중·후판 생산은 불가능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중·후판은 전기로에서 쇳물을 뽑아 두꺼운 쇳덩어리인 슬래브를 만든 뒤 이를 고온 상태에서 눌러 제조하는 열간압연 공정이 필수다. 말레이시아의 유일한 스테인리스 스틸 생산기업인 바루스테인리스에는 관련 설비가 없다. 바루스테인리스는 냉간압연 제품 위주로 생산한다.
업계에선 말레이시아산 스테인리스 스틸의 실제 원산지가 중국 또는 인도네시아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한국 정부가 국내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2021년 9월부터 중국산 스테인리스 중·후판에 23.25%, 인도네시아산에 25.82%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3국 경유를 통한 우회 수출 유인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말레이시아산 스테인리스 스틸이 국내에서 헐값에 유통되며 시장을 교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내식성이 강한 스테인리스 스틸 중·후판은 주로 석유화학 제품 저장탱크 등으로 활용된다. 말레이시아산 스테인리스 스틸 중·후판은 현재 국내에서 t당 270만원 이하에 거래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상 수입재의 국내 유통가(t당 285만원)보다 15만원 이상 저렴하다. 국산 스테인리스 스틸 중·후판(t당 325만원)과 비교하면 t당 가격 차가 55만원에 달한다.
철강업계는 원산지 검증 강화와 함께 단기간에 수입량이 급증한 품목은 실태조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원산지와 생산 공정이 명확하지 않은 물량이 저가로 풀리면 시장 질서가 흔들리고 국내 제조사의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며 “생산설비가 없는 국가에서 특정 제품 수입이 비정상적으로 늘어난 경우 우회 수출 여부를 들여다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진원 기자 jin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