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바젤 카타르가 열린 도하 M7 행사장 분위기는 북적이는 장터보다 미술관 및 비엔날레 전시에 가까웠다. 부스마다 작가 한 명의 작업만 소개하는 ‘솔로 부스’ 형식을 채택해 예술성을 높인 덕분이다. 다만 중동 전통 의상을 입은 인물들이 종종 갤러리 관계자에게 건네는 ‘흰색 쪽지’는 이곳이 중동에서 열린 아트페어장이라는 사실을 일깨웠다. 한 갤러리 관계자는 “카타르박물관청(QM) 관계자들이 흰색 쪽지로 작품 구매 의사를 밝히고 있다”고 귀띔했다.
지난 3~7일 열린 아트바젤 카타르는 중동 최초의 초대형 글로벌 아트페어다. 하지만 행사 성격은 서구에서 열린 아트바젤과 전혀 달랐다. 카타르 정부의 강력한 통제 아래 ‘격조’를 최우선으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만난 각국 미술 관계자들은 “기존 아트페어와 완전히 다른 매력적인 행사”라면서도 “국가 지원 없이 시장의 자생력만으로 행사가 지속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입을 모았다. ◇예술성에 집중…중동 색깔 ‘물씬’
행사의 예술적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카타르는 2024년 베네치아 비엔날레에 이집트 대표 작가로 참가한 와엘 샤키를 예술감독으로 영입했다. 참여 화랑은 31개국 87곳. 수백 개 갤러리가 몰리는 일반적인 아트바젤에 비해 규모를 대폭 줄여 내실을 기했다. 특히 참가 갤러리의 절반 이상을 중동·북아프리카·남아시아 출신으로 채워 지역색을 강화했다.
참여 갤러리와 작가 모두 엄격한 선별 과정을 거쳐 선정됐다. 현대미술의 단골 소재인 성(性)적 표현, 도발적인 이미지는 철저히 배제했다. 대신 카타르는 갤러리들을 파격적으로 지원했다. 부스 대여비는 유럽·미국 아트바젤 행사의 10분의 1 수준인 1만5000달러(약 2000만원) 선. 참여 작가에겐 QM이 항공료와 체재비를 지원했다. 현장에서 만난 노아 호로위츠 아트바젤 최고경영자(CEO)는 “모든 작품은 판매를 전제로 하지만 형식만큼은 비엔날레를 지향했다”고 설명했다.
그 덕분에 행사장에는 중동과 관련한 수준 높은 작품이 즐비했다. 글로벌 화랑인 데이비드즈워너는 현대미술 거장 마를렌 뒤마의 ‘벽에 맞서’ 시리즈를 출품했다. 2008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을 주제로 한 작품이다. 한국 갤러리 중에서는 바라캇컨템포러리가 김윤철 작가의 작품을, BB&M이 임민욱 작가의 설치 작품을 소개했다. ◇자생력 확보가 관건
현장은 전통 의상을 입은 현지인과 서구 컬렉터로 붐볐다. 다만 국제 정세가 발목을 잡으면서 미국 측 컬렉터의 참여가 예상보다 저조했다. 한 갤러리 관계자는 “미국과 이란 사이의 긴장 때문에 미군 기지가 있는 카타르 방문을 꺼리는 큰손이 많았다”며 “미국에서 오는 일부 직항 노선이 취소되기도 했다”고 했다.
판매 실적은 가격대별로 엇갈렸다. 중동 작가들의 10만달러(약 1억4600만원) 미만 작품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하지만 수백억원대 작품 판매 소식은 듣기 어려웠다. 갤러리들이 평소와 달리 고가 작품의 판매 실적을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술계 관계자는 “중동 지역 부자들은 비밀 거래를 선호한다”며 “다만 하우저앤드워스가 들고나온 필립 거스턴의 100억원대 작품을 비롯해 고가 작품 판매가 꽤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행사에 대한 평가는 엇갈렸다. 현장에서 만난 미술계 관계자들은 전시의 격조와 예술성에 호평을 보냈다. 다만 매출 등 상업적 규모는 ‘오일 머니’에 대한 기대에 못 미쳤다는 평가가 많았다. 현지에서 만난 한국인 컬렉터들은 “중동 미술을 집중적으로 감상할 수 있어 즐거웠지만 내년에 다시 찾아올 만큼의 매력이 있는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도하=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