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철 삼성물산 건설부문 사장은 취직만 생각하던 평범한 공대생이었다. 석·박사 학위나 해외 유학 경험도 없이 1985년부터 직장 생활을 했다. 이후 리비아를 시작으로 오랫동안 타지를 떠돌았다. 1997년 외환위기 때는 정리해고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지금도 그에게는 해외에서 ‘저개발국가 출신’ 노동자 취급을 받으며 서럽게 일한 기억이 상처 가득한 훈장으로 생생하게 남아 있다. 오 사장은 그 경험을 자신을 단련시킬 ‘성장 기회’로 삼았다. “한 번이라도 좌절하고 멈췄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겠지요.” 한 회사에서 41년째 몸담은 그는 2021년 사장으로 승진했다. 2015년 제일모직과의 합병으로 출범한 통합 삼성물산에서 경영이 아니라 기술직 출신이 대표에 오른 첫 사례다.
▷왜 건축학과에 진학했습니까.
“공학 계열로 대학에 입학해 2학년 때 전공을 정했습니다. 건축학과 학생이 제도용 T자를 들고 다니는 게 멋있어 보였어요. 기숙사를 오가며 교내 공사 현장에 건물이 쑥쑥 들어서는 모습도 흥미로웠습니다. 건설업이 국가 기간산업 역할을 할 때라 인기도 좋았죠.”
▷졸업과 동시에 취업했습니다.
“형제가 8남 1녀예요. 저도 형에게 도움을 받았고 동생들을 위해 빨리 돈을 벌어야 했어요. 건축과 졸업생 절반은 교수의 길을 택했지만 저는 건설 현장에 눈길이 갔습니다. 해외 근무 기회가 많다는 점도 흥미를 불러일으켰죠.”
▷언제 해외로 갔습니까.
“1985년 7월 리비아로 발령이 났습니다. 그때 처음 비행기를 탔어요. 해외에 나가니 그 자체로 설레고 좋았죠. 여행 자유화가 아니던 시절이라 출장을 가려고 해도 국가에서 정한 교육을 받아야 했어요. 비행기에서 담배를 피우던 때였습니다. 건설기술인이 가득 비행기에 탔는데, 리비아에선 술을 못 마시니 기내에서 술과 담배 잔치가 벌어졌어요.”
▷힘들지 않았나요.
“위기인 순간을 꼽자면 끝이 없습니다. 리비아에서 일할 때 한 번은 제가 담당한 외산 자재가 제때 들어오지 않아 전체 공사가 지연될 상황이었어요. 겨우 23세 신입사원이 감당하기엔 얼마나 큰 부담이었겠어요. 당시 스트레스로 심장이 조이고 치통까지 세게 앓았어요.”
▷외환위기도 겪었습니다.
“말레이시아 페트로나스 타워(지상 88층, 높이 452m) 현장에서 3년 반 근무하다가 들어왔을 때 외환위기가 터졌습니다. 지역 전문가로 루마니아를 갈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취소됐죠. 보직에서 빠져 있다 보니 오히려 정리해고 명단에 올랐어요. 회사 직원 3분의 1이 그만둘 때였습니다. 마침 말레이시아에서 일한 경험 덕에 싱가포르 신규 프로젝트 입찰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싱가포르는 어땠나요.
“저개발국에서 왔다며 무시를 많이 당했습니다. 더 힘들었던 건 IMF 체제라 본사에서 외화 자금을 받을 수 없었다는 점입니다. 싱가포르 현장에서 기성(공사가 일정 비율 진행된 뒤 지급되는 금액)을 받아 자금을 충당해야 했어요. 원래 60일 정도인데 한 달 내 받으려고 돈을 거의 구걸하다시피 했습니다. 생활도 넉넉하지 않았죠. 아침에는 토스트로 끼니를 때우고 밥과 짠지로만 식사를 이어갔습니다. 그래도 불만은 없었어요. 해외에서 한국을 바라보는 시각은 암울했고 저개발국 출신으로 취급받는 현실은 비참했죠. 하지만 한국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더 큰 고통을 겪고 있었으니까요.”
▷건설업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중동에 가면 정말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뿐이에요. 거기에 건설 근로자가 모여들면 오지에서 무언가가 만들어집니다. 말 그대로 기적입니다. 개인 성취감도 큽니다. 사무실에서 루틴한 일을 하며 적당한 삶을 사는 것과는 차원이 달라요.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기쁨을 느끼고 싶다면 건설업만 한 곳이 없습니다. 한 프로젝트의 처음과 끝을 경험하면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샘솟습니다.”
▷공대 인기가 예전 같지 않습니다.
“안정적인 고소득이 보장되는 의대 등에 쏠리는 것도 이해가 갑니다. 학생만 탓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사회가 공대, 인문대, 자연대 전공 학생에게 충분한 비전을 보여주지 못하는 게 근본 문제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국가가 나서서 공대 졸업생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건 인위적이고 임시방편입니다. 요즘 젊은 전문 인력이 외국으로 떠납니다. 성장의 기회와 보상이 있는 곳으로 인력이 몰립니다. 엔지니어 삶이 의미가 있다는 것을 선배가 알려야 하고 도전 의식을 심어주는 방향으로 사회 여건이 조성돼야 합니다. 젊은 인재가 기술이 주도하는 세상의 중심에 서도록 해야 합니다.”
▷명문 공대를 더 만들면 될까요.
“세계적 대학을 만들고 공대생만 늘린다고 혁신 기업이 나오거나 세상이 더 좋아질 수는 없습니다. 공학은 교실에서만 익히는 학문이 아니라 현장에서 부딪히며 배우는 실천 학문입니다. 산업계와 학교가 더 긴밀하게 협력해야 합니다.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을 눈으로 보고 몸으로 체험하며 느끼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기업도 인재 부족을 실감하나요.
“전기, 전자 등 첨단 기술과 관련한 전공 졸업생은 몸값이 높아 건설사에 잘 안 옵니다. 한국에 있는 외국 유학생이 인기를 끄는 이유입니다. 건축, 토목직도 젊은 인재는 건설업보다 다른 곳을 찾는 분위기라 안타깝습니다.”
▷첨단산업이 아니라는 인식 때문일까요.
“건설 분야에도 친환경 인프라, 스마트시티, 데이터센터, 자동화 등 미래 성장 영역이 다양합니다. 단순히 건물을 짓는 데 그치지 않고 문제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해법을 제시하는 공학 인재가 많이 필요합니다. 산업 현장에서 나타나는 변화의 큰 흐름이 교과서나 진로 정보로 충분히 전달되고 있지 않아서인지 학생들이 공학의 중요성을 잘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공지능(AI)도 쓴다고 들었습니다.
“건설업 역량의 핵심은 경험 축적입니다. 사장이 된 후 ‘시니어 제도’를 도입한 것도 그 때문이에요. 알음알음 도제식으로 전해지던 선배의 경험과 지식을 직원 교육, 기록·자료화를 통해 조직 자산으로 구축했습니다. 방대한 기술·공사·계약 자료를 AI에 학습시켜 활용하고 있습니다. 건설은 더 이상 삽만 드는 산업이 아닙니다.”
▷안정이 최대 화두인 세상입니다.
“사장 취임 후 직원들에게 가장 먼저 강조한 말이 ‘잠들어 있는 야성을 깨우라’는 것이었습니다. 요즘 사회를 보면 불안한 도전보다 편안한 현재를 지키는 데 만족하고, 실패의 두려움 앞에서 신중함을 선택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젊은 세대 탓도 아니고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습니다. 신중하다는 것은 생각이 깊다는 것이고, 위험과 책임을 인식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다만 도전이 사라지면 혁신이 없고 우리 사회의 발전과도 멀어집니다.”
▷인식을 바꾸기 쉽지 않아 보입니다.
“예컨대 회사에서 선배가 지시와 통제가 아니라 권한 위임, 격려로 후배를 대해야 합니다. 후배가 치열하게 고민하고 판단해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계속 기회를 줘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후배는 도전하는 용기와 실력을 갖춥니다. 회사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이런 선순환 구조를 마련해야 합니다.”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지요.
“지금만큼 공학의 중요성이 커지는 시기는 없을 겁니다. 학생들이 세상을 보다 넓고 열린 눈으로 봤으면 좋겠어요. 건설업뿐만 아니라 모든 공학은 단순히 기술을 배우는 게 아니라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드는 비전 사업입니다. 특정 학과에 갔다고 그 프레임에 갇힐 필요도 없습니다. 학교를 마친 후가 더 중요합니다. 자기가 개척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많은 길이 기다립니다.”
■ 오세철 사장은…
△1962년 부산 출생
△1985년 서울대 건축학과 졸업
△1985년 삼성물산 건설부문 입사
△1994년 말레이시아 KLCC 현장
△1998년 싱가포르 JTC 사옥 현장
△2001년 아부다비 ADIA 현장소장
△2008년 두바이 EXHIBITION 현장소장
△2009년 중동 총괄 중동지원팀장
△2009년 건축사업본부 빌딩팀장
△2013년 글로벌조달실장
△2014년 플랜트PM본부장
△2015년 플랜트사업부장
△2021년 삼성물산 건설부문 대표이사 사장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