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 비트코인' 62만개 뿌린 빗썸…"은행이 위조수표 만든 꼴" [한경 코알라]

입력 2026-02-08 14:37
수정 2026-02-08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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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2위 암호화폐거래소 빗썸에서 직원 실수로 블록체인에서 발행되지 않은 62만 개 ‘유령 비트코인’이 장부상 생성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규모로 따지면 전 세계 비트코인 발행량의 3%에 육박하는 물량이다. 실제 비트코인 네트워크상 영향은 없었다. 하지만 거래소의 지급 능력을 수천 배 초과하는 자산을 장부상 만들어낸 점에서 “마치 은행이 위조수표를 만든 꼴”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사태를 둘러싼 5대 의문점과 논란을 정리했다. ①무슨 일이 있었나지난 6일 오후 7시 빗썸은 이벤트에 참여한 695명에게 1인당 2000∼5만원 상당 비트코인을 나눠주려다 실수로 비트코인 62만개를 지급했다. 현재 시세로 63조원이 넘는 규모다. 빗썸은 20분 뒤 사고를 인지하고 출금을 차단했다. 하지만 빗썸 내에서 잘못 지급된 물량이 거래되면서 비트코인 가격은 순식간에 8000만원대까지 추락했다. 같은 시각 다른 거래소에서는 1억원대에서 거래됐다. 빗썸에서만 비트코인 가격이 18% 폭락한 것이다.

잘못 지급된 비트코인의 99.7%(61만8212개)는 회수가 완료됐다. 하지만 시장에 매도된 1786개 가운데 약 125개는 아직 회수되지 못했다. 이벤트를 통해 지급받은 비트코인을 팔아 실제 인출된 금액은 약 30억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②어떻게 가능했나빗썸 측은 담당 직원의 실수라고 설명했다. 이벤트 리워드 수량을 입력하는 과정에서 단위를 ‘원(KRW)’이 아닌 ‘비트코인(BTC)’으로 잘못 설정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은행과 같은 일반적인 금융사에서는 거액의 자산이 이동할 때 여러 단계의 과정을 거친다. 빗썸은 특정 직원의 클릭 한 번으로 64조원 규모 자산이 즉시 집행되는 구조였던 셈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최소 2~3단계의 결재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이는 명백한 내부 통제의 문제”라고 말했다. ③비트코인이 발행된 건가블록체인상 비트코인이 새로 발행된 것은 아니다. 암호화폐거래소는 실제 암호화폐가 이동하지 않고 데이터베이스(DB)상 숫자만 바뀌는 ‘장부 거래’로 운영된다. 마치 은행 앱에서 송금할 때 실제 현금이 아닌 숫자가 오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이유로 빗썸 내 비트코인 가격만 폭락했을 뿐 글로벌 비트코인 시세에는 영향을 주지 않았다.

빗썸의 경우 회사 소유의 175개 비트코인과 고객 수탁분 4만2000여개를 합쳐도 줄 수 없는 62만개 비트코인 인출권(채권)을 뿌린 셈이다. 이는 은행이 금고에 현금이 없는데도 수조원짜리 위조수표를 발행해 유통한 것과 다름없다는 지적이다.

앞서 2018년 삼성증권 ‘유령 주식’ 사태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은 이 지점이다. 삼성증권 역시 현금 배당 과정에서 직원이 주당 1000원이 아닌 1000주를 입력하면서 발행 한도를 20배 초과하는 28억주(약 112조원 규모)의 가짜 주식을 전산상에 생성했다. 발행된 유령 주식은 예탁결제원이라는 공적 시스템과 연동돼 시장 전체에서 유효한 권리로 인정받았다. 삼성증권이 이를 수습하기 위해 시장에서 진짜 주식을 사 와야 했던 이유다. 빗썸은 장부상 숫자를 수정하는 방식으로 지급 물량 대부분 무효로 할 수 있었다.

④빗썸 내 실물 비트코인은 무사한가전자 장부상 숫자 입력 오류이기 때문에 빗썸이 보관하는 고객의 비트코인이 사라지거나 가치가 변할 일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가짜 수표가 발행된 것이지 금고가 털린 건 아니기 때문이다. 고객의 비트코인은 콜드 월렛(인터넷이 차단된 암호화폐 저장소)에 보관돼 있다. 빗썸 측도 “지갑에 보관된 코인 수량은 엄격한 회계 관리를 통해 고객 화면에 표시된 수량과 100% 동일하게 유지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이미 매도돼 외부로 유출되거나 소유권이 바뀐 125개 비트코인을 끝까지 회수하지 못하면 빗썸이 자기 자본으로 직접 시장에서 사서 채워 넣어야 한다. ⑤암호화폐거래소 믿을 수 있나이번 사태를 계기로 암호화폐거래소의 신뢰 문제도 도마 위에 오를 전망이다. 거래소가 보유한 실물 자산과 장부상 수치가 언제든 괴리될 수 있다는 구조적 취약성이 확인돼서다. 전날 금융위원회는 권대영 금융위 부위원장 주재로 긴급 점검회의를 열어 향후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권 부위원장은 이번 사태에 대해 “가상자산의 취약성과 리스크가 노출된 사례”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가상자산 보유현황 의무 점검, 거래소 무과실 책임 등 담긴 디지털자산기본법 제정에도 속도가 날 것으로 예상된다.

조미현/서형교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