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오후 2시 주간 회의. 박 팀장의 눈앞에 기이한 광경이 펼쳐진다. 협업 툴 ‘지라(Jira)’에는 화려한 대시보드와 진척률이 찍혀 있지만, 회의실의 공기는 박제된 듯 고요하다. 팀원들은 리더의 눈을 피하며 기계적인 답변만 내놓는다. 박 팀장은 속으로 읊조린다. ‘요즘 애들은 왜 이렇게 주도성이 없을까? 나만 발을 동동 구르는 것 같군.’
이 장면은 대한민국 수많은 리더가 처해 있는 ‘성실한 리더의 역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우리는 그 어느 세대보다 정교한 KPI와 데이터로 무장했지만, 팀 관리의 공허함은 왜 나날이 깊어만 갈까? 실리콘밸리의 전설적인 코치 제리 콜로나(Jerry Colonna)는 이 문제의 칼날을 리더의 외부가 아닌 ‘내면’으로 돌리라고 조언한다.
<i># ‘자동 조종 모드’라는 이름의 정교한 은신처</i>
경영학에서 리더십은 흔히 ‘시스템 최적화 기술’로 오해받곤 한다. 새로운 툴을 도입하고 지표를 재설계하면 팀이 살아날 것이라고 믿는 식이다. 하지만 이는 리더가 마주해야 할 본질을 회피하게 만드는 일종의 ‘기술적 함정’이다. 특히 리더가 의식적인 선택을 멈추고 과거의 성공 방정식에 자신을 내맡기는 ‘자동 조종(Autopilot)’ 모드에 진입할 때, 이 함정은 더욱 견고해진다.
리더에게 자동 조종 모드는 사실 가장 달콤하고 안전한 은신처다. 숫자와 리포트 뒤에 숨어 있으면 팀원과의 감정적 충돌이나 자신의 밑바닥에 있는 불안을 직시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시스템에 따라 최선을 다하고 있다’라는 기능적 완벽함은 리더로서 마땅히 감당해야 할 인간적 책임과 불편한 대화를 외면하게 만드는 훌륭한 방패가 된다.
하지만 리더가 이 은신처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조직은 서서히 활력을 잃고 ‘영혼 없는 관성’에 침식당한다. 리더가 정답만을 지시할 때 팀원들은 진심을 꺼내는 대신 리더의 입맛에 맞게 가공된 정보만을 제출한다. 결국 리더는 존재하되 리더십은 부재하는 ‘리더십 공동화(Hollowing out)’ 현상이 발생하며, 팀원들에게 리더는 ‘통과해야 할 결재 라인’으로 전락하고 만다.
<i># ‘합리화의 챗바퀴’에서 내려올 용기</i>
이런 위기 상황에서 리더의 뇌가 가장 먼저 가동하는 본능은 외부로 화살을 돌리는 것이다. 시장 상황, 예산 부족, 혹은 MZ세대의 특성을 탓하며 정교한 논리를 만들어낸다. 이를 ‘합리화의 챗바퀴’라 부른다.
스탠퍼드 대학의 그레이엄 위버(Graham Weaver) 교수가 지적했듯, 똑똑한 리더일수록 이 챗바퀴는 더 빠르고 정교하게 돌아간다.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외부 요인 뒤로 숨는 순간, 리더는 잠시 심리적 안도감을 얻을지 모르지만 상황을 변화시킬 유일한 열쇠인 ‘자기 통제권’은 영영 포기하게 된다. 챗바퀴를 멈추는 유일한 질문은 “이것은 누구의 탓인가?”가 아니라, “지금 이 환경을 만드는 데 나의 지분은 얼마인가?”라는 불편한 직면이다.
<i># 불편한 직면: 나는 어떻게 이 상황에 공모했는가?</i>
제리 콜로나가 제시한 리더십 방정식은 명확하다.
리더십 = 실무 기술(Practical Skills) + 급진적 자기성찰(Radical Self-Inquiry)
여기서 ‘급진적(Radical)’의 어원은 ‘뿌리(Radix)’다. 문제의 표면을 수선하는 것이 아니라 리더 자신의 행동 아래 깊이 박힌 근본 동기를 파헤쳐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리더들에게 가장 뼈아픈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 원치 않는다고 말하는 지금 팀의 모습에, 당신은 어떻게 공모(Complicity)했는가?”
- "우리 팀원들은 수동적이에요"라고 말하는 리더에게: 혹시 당신의 완벽주의가 팀원의 작은 실험조차 ‘실수’로 낙인 찍지는 않았는가? 리더가 모든 답을 제시하고 마이크로 매니징 할 때, 팀원은 ‘가만히 있는 것이 가장 경제적인 선택’임을 학습한다. 당신은 그들의 무기력을 설계한 공범이다.
- "보고를 위한 보고가 너무 많아요"라고 말하는 리더에게: 상위 경영진에게 무결해 보이고 싶은 리더 자신의 ‘불안’이, 팀원들에게 실질적 가치 없는 ‘가짜 노동’을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가? 팀의 에너지를 낭비하게 만든 지분은 리더의 결핍에서 시작된다.
자신의 지분을 인정하는 것은 무능의 시인이 아니다. 오히려 이 상황을 바꿀 힘이 나에게 있음을 선언하는 가장 강력한 ‘주권 회복’의 과정이다.
<i># 성찰하는 리더를 위한 세 가지 장치</i>
성찰은 결심이 아니라 ‘시스템’이어야 한다. 실무 현장에서 즉시 적용 가능한 세 가지 장치를 제안한다.
첫째, ‘생각의 요새’를 구축한다. 매일 단 30분이라도 성찰할 시간을 강제로 확보하자. 오늘 나의 어떤 판단이 팀의 흐름을 막았는지 자문하는 시간은 리더의 메타인지를 비약적으로 높여준다.
둘째, 분노 대신 ‘임상적 호기심’을 가진다. 팀원에게 화가 치밀 때 “이것 참 흥미로운데?”라고 읊조려보자. 이는 감정에 휩쓸리는 대신, ‘내 안의 어떤 방어기제가 작동하는가’를 관찰하는 호기심 모드로 전환하는 기술이다.
셋째, ‘내부 점수표’를 정비한다. 타인의 시선이나 직급이라는 ‘외부 점수표’에 의존할 때 리더는 취약해진다. 나만의 본질적인 가치에 기반한 내부 점수표를 가질 때, 리더는 비로소 가면을 벗고 팀원들과 진실한 소통을 시작할 수 있다.
리더십은 타인을 바꾸는 기술이 아니라, 나를 변화시켜 세상을 바꾸는 여정이다. 리더가 자신의 그림자를 직면하고 합리화의 성벽에서 내려올 때, 팀원들도 비로소 숨을 쉬기 시작한다.
지금 모니터 옆에 붙여보자. “팀원이 입을 닫았는가? 그 침묵을 설계한 나의 지분은 얼마인가?” 이 질문에 정직 해질 수 있을 때, 당신의 리더십은 단순한 ‘기술’을 넘어 ‘영향력’으로 진화할 것이다. 성찰은 고통스럽지만, 그 끝에는 반드시 자유가 기다리고 있다.
김현수 휴넷리더십센터 연구원